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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근정전 5.16 여성위문공연과 전두환의 경회루 술파티 [取중眞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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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독재자가 경복궁을 대하는 자세... 왕처럼 군림하고픈 독재자 욕망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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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1980년 9월 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11대 대통령 취임식을 진행한 뒤 같은날 오후에 경복궁 경회루에서 1200여 명의 인사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가졌다. ⓒ 행정안전부 대통령 기록관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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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1980년 9월 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11대 대통령 취임식을 진행한 뒤 같은날 오후에 경복궁 경회루에서 1200여 명의 인사들을 모아 놓고 연회를 가졌다. ⓒ 행정안전부 대통령 기록관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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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 전두환씨 사망 소식을 취재하면서, 행정안전부 대통령 기록관에 올라온 1980년 9월 1일 대한민국 11대 대통령 취임식 날 영상을 확인했다. 전씨는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당일 오후 6시 30분 축하 연회에 참석했다. 이 연회가 국가의 보물인 경복궁 경회루 안에서 진행됐다.

해당 영상에서 전씨는,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 현수막이 걸린 경복궁 경회루 안으로 부인 이순자와 함께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걸어들어간다. 잠시 뒤 경복궁 경회루 안팎에 모인 1200여 명의 국내외 인사들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획득한 전두환에게 축하를 건넸다.

지금 기준으로야 국보 경회루에서 술잔을 들어 올린 파티가 크게 문제되지만 당시에는 불법이라 규정할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문화재청 역시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재의 기준으로 당시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평가를 망설였다.

그러다 취재 과정 중에 자문을 구했던 덕성여대 사학과 최주희 교수로부터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경복궁에서는 전두환 이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면서. 그가 건넨 사진에는 국가의 보물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수영복 수준의 무대의상을 갖춘 여성 3인이 하얀색 힐을 신고, 족히 500여 명에 달하는 군인들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 속 하단, 그러니까 무대와 손만 뻗으면 닿을자리엔 고위간부로 추정되는 인사들이 앉아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국가기록원에서 나온 1961년 5월 29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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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5월 29일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진행된 '5.16 참여군인 위문 공연'. 반라의 여성들이 군인들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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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 경복궁 근정전의 현재 모습.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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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가 건넨 사진 출처는 '국가기록원'. 실제로 국가기록원 정부기록사진집에는 "촬영일 1961년 5월 29일, 참석자:미상, 5.16 참여군인 위문공연 모습"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정부 기록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월 16일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지 불과 2주 후인 5월 29일 군사쿠데타에 참여한 군 장병을 위로한다고 국가 보물인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위문공연을 벌였다는 이야기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군사쿠데타 후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수백의 군인들을 모아 놓고 위문공연을 진행했던 박정희 정권은 불과 6개월 뒤인 1962년 1월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해 시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정확히 1년 뒤인 1963년 1월 박정희 정권은 경복궁을 사적문화로 등재해 보호할 것을 천명했다.

이후에도 박정희 정권은 경복궁 경회루에서 술잔을 들어올리는 파티를 벌이거나, 제대로 된 고증도 없이 경복궁과 어울리지도 않는 건축물들을 경복궁 안에 우후죽순으로 건설하기도 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위에 올린 법주사 팔상전을 본 뜬 모방 건물과 구례 화엄사 각황전을 모방한 건물, 김제 금산사 미륵전을 모방한 건물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최주희 교수는 "공화국을 표방하면서 군왕과 같이 군림하고자 하는 독재자의 욕망이 문화재를 대하는 인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 아니겠냐"라고 논평했다.

전두환 집권 후 매해 진행된 경회루 술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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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회루의 현재 모습.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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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대하는 군사독재정권의 몰이해가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 등장한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 박정희 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쏜 총탄으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같은해 하나회 신군부와 함께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은 정권을 탈취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 전두환은 체육관 선거를 거쳐 대한민국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후 글머리에 설명한 경복궁 경회루 술파티가 진행된다.

그런데 전두환의 경복궁 경회루 술파티는 1981년 3월 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1987년까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거의 매해 진행됐다. 전두환은 경복궁 경회루에서 국군의날 경축 연회와 외빈 초청행사 등을 열며 만찬 파티를 즐겼다. 아이러니한 점은 1985년 1월 전두환 정권이 경복궁 경회루를 국보로 지정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 역시 1940년대 말 경회루 연못 북쪽 변에 '하향정'이라는 정자를 세워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거나 낚시를 즐기기도 했다. 세간에는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6월 25일 오전에도 이 대통령이 이곳에서 낚시를 즐기다 북한의 남침에 대한 첫 보고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로 인해 최근까지도 '하향정'에 대한 철거요구 움직임이 이어졌다. 하지만 2013년 11월 문화재청은 "경회루와 연못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대통령의 휴게 공간으로 사용되는 등 근대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점을 들어 존치를 결정했다.

문화재청 누리집에는 경복궁 경회루가 "우리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 누각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라고 소개됐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경복궁 입구에 세워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 경복궁 복원에 속도를 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세자의 거처인 동궁을 비롯해 흥례문, 태원전, 명성황후가 시해된 건청궁, 함화당, 집경당 권역에 대한 복원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정부는 2045년까지 경복궁에 대한 복원사업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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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회루에서 하향정을 짓고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낚시를 즐기는 이승만 대통령 모습. ⓒ 자료사진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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