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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S등급 5번 받아야 사는 임기제공무원…오세훈의 ‘공정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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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인사과 ‘임기제 인사운영 개선계획’ 발표

재고용 기준 ‘5년 평균 A→S등급 5번 이상’

“오세훈, 임기제 악마화…노노갈등 유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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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용히 살아갈테니 그만 좀ㅠ 눈치 보여서 출근하겠습니까ㅠ 부서에서 날 다 싫어하나 싶어서 공황장애 올 거 같아요ㅠ

지난달 17일 한 임기제공무원이 서울시 행정포털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2013년 계약직공무원에서 이름이 바뀐 임기제공무원은 2∼3년 단위로 계약해 근무하는 비정규직이다. 자율차주행 등 최신 트랜드가 반영된 정책이나 특화사업 등을 담당한다. 전문성이 필요한 교통·상수도 등 분야 인력은 임기제공무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또 시민들에게 친숙한 코로나19 대응 의료진이나, 시립병원 물리치료사·간호사, 서울대공원 사육사·수질연구사·박물관 학예사 등 상당수가 임기제공무원이다. 전문성·경력이 필요한데다 자리가 비거나 정원이 늘어날 때만 선발하기 때문에 공개채용하지만 일반공무원 채용 때처럼 채용시기·규모·직렬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1780명(본청 전체 공무원의 16.5%, 올 11월 말 기준)에 이르는 서울시 임기제공무원 가운데 상당수가 “파리목숨이 됐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뒤 바뀐 시정방침 때문이다. <한겨레>가 임기제 공무원들을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오세훈 “임기제가 도처에 포진” 발언 뒤 ‘파리 목숨’

발단은 오 시장이 “지난 10년간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의 에이티엠(ATM·현금인출기)로 전락했다”, “시민단체 다단계” 같은 날선 발언을 쏟아낸 9월13일 ‘서울시 바로세우기-비정상의 정상화’ 회견이었다. 당시 오 시장은 “(지난 10년간) 시민단체 지원이 소위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운영되었다.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임기제공무원으로 서울시 도처에 포진해 위탁업체 선정에서부터 지도·감독까지 관련 사업 전반을 관장했다”고 말했다.

한달쯤 뒤인 10월17일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는 “임기제공무원들도 서울시에 여전히 수백명이 있다. 사표 쓰고 나간 이들도 있지만 90% 이상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이런 상태에서 개혁작업을 한다는 게 용이할지… 그래서 스스로 하루에도 몇번씩 ‘나는 아직 시장이 아니다, 나는 아직 반쪽 시장이다’라는 말을 되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기제공무원을 시정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힌 셈인데, 이를 두고서는 갸웃하는 반응도 나온다. 서울시 임기제공무원의 90% 가까이는 6급이하 실무자들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조직 특성상 위계가 명확하고, 임기제공무원도 상급자 지시를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데 이들 때문에 시장직 수행이 어렵다는 것은 엄살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오 시장 발언에 발맞춰 임기제공무원들에게는 ‘감원 삭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지난 10월1일 서울시 인사과는 ‘임기제공무원 인사운영 개선계획’(임기제 개선계획)을 발표했다. 임기제 직위를 유지할지 엄밀하게 따져 줄여가겠다는 게 개선 방향의 기조다. 먼저 계약연장 심사대상 선정 때 조직담당관의 (해당 임기제 보직이 필요한지) 정원승인을 받는 기간을 기존 5년에서 2∼3년으로 단축했다. 이 방침은 예고기간 없이 즉시 시행돼 그간 평가결과와 상관없이 갑자기 정원조정 통보를 받은 사례도 나왔다.

또 계약직 근무실적 평가 때 에스(S) 등급 부여는 수상이력 등 구체적 사유를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임기제공무원 1780명 가운데 5년 이상 근무자 705명(39.6%)은 고용불안이 코앞에 닥친 셈이다.

아울러 재고용 심사대상을 1년에 두번 실시하는 근무실적 평가 ‘평균 에이(A) 이상’ 혹은 ‘3번 이상 에스(S)’에서 ‘5년간 에스(S) 5번 이상’으로 강화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계약직은 전체의 5%가량으로 추정된다. 또 근무실적 평가 때 에스(S) 등급 부여는 수상이력 등 구체적 사유를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본청의 임기제공무원 ㄱ씨는 “5년간 에스 5번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같은 부서에 같은 급수가 5명 이상 돼야 에스를 받을 수 있기에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더라도) 에스를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며 “최근엔 5년간 에스를 5번 받은 분이 소속 부서에서 재고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스스로 서울시를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에스를 5번 받았다고 재고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임기제의 문제점을 근거로 왜 전체 임기제를 다 싸잡아서 적대시하는지 모르겠다. 또 청년·민주주의 분야 등에서 일하는 일부 시민단체 출신 임기제공무원들은 전문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마치 채용비리라도 있었던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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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갈등 유발…일부 일반직 “듣보잡 어공 늘어”

‘임기제 개선계획’은 “온정주의에 따른 실적평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일반직공무원들의 근무의욕 저하 및 예산낭비 발생” 등 임기제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7급 임기제 연봉은 일반직 7급 14호봉과 같다’며 “임기제 공무원의 근무기간을 연장할 경우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일반직공무원의 근무의욕이 저하된다”고 임기제공무원들을 특혜를 받는 존재들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기제공무원 ㄴ씨는 “지방공무원 보수지침에 따라 지급될 뿐인데, 승급이 제한된 임기제와 일반직을 단순비교하면서 뭔가 부당하게 많은 돈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있다. 시가 대놓고 노·노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 행정포털 게시판에서는 조직에서 소수인 임기제공무원들을 비난, 매도하는 글들도 올라오고 있다.

‘현직 공무원도 박사가 많다. 임기제도 6급 말고 7급으로 채용하자.’

‘본인(임기제)이 경쟁력이 있는지부터 돌아봅시다. 철밥통이라고 근무평가 받을 시기가 아니라고 대충 일한 적 없는지 먼저 반성하세요.’

‘전임시장 때 듣보잡 어공(어쩌다 공무원), 갑공(갑자기 공무원)이 갑자기 늘어서 경험해보지 못한 고담시가 시작됐다.’


3년 전엔 고용안정 강조… “행정연속성은 어디에”

임기제공무원 ㄷ씨는 “임기제 정원 조정을 5년에서 2∼3년으로 앞당기면 시장이 측근들 채용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예측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지, 이렇게 시장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바꾸는 것이 서울시의 행정 연속성 측면에서 타당한가”라며 “10년 전에 오 시장이 평가 하위 3%를 모아서 ‘현장시정추진단’ 꾸려서 표적으로 삼았던 ‘3% 퇴출제’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3년 전에 내놓은 임기제공무원 관련 개선계획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보다 안정적인 고용환경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일반임기제공무원 근무기간 연장제도를 개선하여 장기근무 여건을 마련코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민수홍 서울시 인사과장은 “그간 각 사업부서들에서 임기제 평가·재계약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임기제 제도는 기회의 공정 차원에서, 재계약 때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오비이락으로 볼수도 있겠지만, 오 시장의 발언과 상관없이 그동안 제도 개선을 검토했던 사안이고 시민단체 출신 임기제가 몇명인지도 따로 파악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상한 행정국장도 “임기제공무원들이 일반직이 할 수 있는 일까지 업무까지 하고 있다. 5년 일하고 5년 더 재고용할 때 심사가 약해진 상태다. ‘임기제가 일반직원들보다 상전이냐?’하는 불만이 많다”며 “임기제를 모두 쫓아낸다는 것이 아니라 5년이 지나면 정확한 재채용을 절차를 밟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이나 당사자들 의견청취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 시장과 서울시의 이런 기조는 시의회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김용석 시의원은 지난 2일 행정국 행정사무감사 때 이번 개선계획과 관련해 “오 시장의 임기제공무원 관련 발언을 보면, 정치인 오세훈과 밥그릇만 챙기려는 공무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

민간위탁노동자공대위 노동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 열린 오세훈표 반시민·반노동 예산 반대 민간위탁 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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