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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0.76%의 길 "임원 되고 싶다면 책임부터 살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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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 대표, 윤정희 기자]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서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11년 0.95%였던 임원 승진 확률은 올해 0.76%로 더 낮아졌다. 그만큼 임원의 문턱이 높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임원에 오른다고 꽃길이 펼쳐지는 건 아니다. 직위에 따른 법적 의무와 책임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어서다. 이사진의 감시의무를 확대 적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판결도 이런 추세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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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법원은 이사의 감시의무를 확대 적용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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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앞두고 인사 시즌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임원 승진 발표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는 직장인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2030세대에서는 임원이 되기를 일찍부터 단념하는 '임포자'(임원 승진을 포기한 사람)'들이 생겼다고 한다. 기업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이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운 좋게 임원이 되더라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임원들의 법적 책임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임원들의 고액연봉에는 의무와 책임에 따른 일종의 위험수당이 포함돼 있는 셈이다. 앞으로 회사에서 대표나 이사를 맡으면 해당 직위의 법적 의무와 책임을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9월 우리나라 법원은 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한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와 대우건설 주주들이 대우건설의 전 대표와 다른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 재판에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8부는 피고인 대우건설 전 대표와 이사들에게 총 5억1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회사 측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사진이 4대강 사업 입찰 담합 등과 관련한 감시의무를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참고: 이사의 감시의무(duty of oversight)란 이사가 다른 이사의 직무위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업무집행을 감시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우리 상법에는 명문 규정이 없지만 학설과 판례는 이미 감시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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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대표에게만 책임을 물었던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나머지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감시의무의 책임을 모든 이사로 확장해 적용한 거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향한 세간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은 향후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확정한다면 준법경영의 기초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이번 판결이 이사들의 책임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한 나머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의 시선도 있다.

기업 이사진의 책임 범위를 넓혀서 해석한 판결은 또 있다. 지난 11월 11일 대법원 제3부는 동국제강 소액주주인 오모씨가 회사 이사를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 상고심에서 원고가 패소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동국제강에 흡수합병된 철강업체 '유니온스틸'의 주주였던 오모씨가 유니온스틸의 냉연강판 가격 담합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당시 이사진(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에게 청구한 소송이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이번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시민단체에서는 이를 두고 고등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감시의무를 게을리 한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하고 있다. 따져보면 이런 판결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2008년 신한은행이 고故 김우중 대우 회장과 ㈜대우 전 임원들을 상대로 낸 분식회계 관련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재판부는 "이사회 구성원들에게도 내부 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다"며 책임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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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1996년 케어마크 판결 이후 이사진의 컴플라이언스 구축 의무가 강화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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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사의 감시의무를 강화하는 추세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이사의 법적 책임을 엄격히 묻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미국 법원은 이사의 감시의무와 관련해 '소극적 감시의무' 원칙을 따르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3년 델라웨어(Dela ware)주 대법원의 그라함(Graham)판결이다. 이 사건에서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이사는 위험신호(red flag)가 있는 경우에만 임직원의 행위에 관해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그라함 판결에서 확립된 견해는 1996년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의 알렌(Allen) 판사가 내린 케어마크(Caremark) 판결로 뒤집혔다.

이 판결은 임직원들의 위법행위를 의심할 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이사는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구축할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사가 이를 위반했을 때 임직원의 위법행위로 발생한 회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당시 미국 법조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06년에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이사의 감시의무와 관련해 다시 한 번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바로 스톤(Stone) 판결이다. 이 판결은 이사들의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구축ㆍ운용 의무를 '법적 의무'로 승격시켰다는 점에서 미국 사법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6년의 케어마크 판결은 미국 법조계를 넘어 우리나라 사법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앞서 소개한 2008년 ㈜대우의 분식회계 관련 판결도 케어마크 판결의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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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비효과는 지난 9월 대우건설, 11월 동국제강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까지 이어졌다. 미국에서 60년 가까이 누적되고 발전해온 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한 법리가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정착하기 시작한 셈이다.

최근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컴플라이언스는 기업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 됐다. 이제 회사 이사들이 임직원의 위법행위를 소홀히 감시한다면 막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각오를 해야 한다. 담합과 같은 중대한 위법행위를 방치한다면 엄정한 법의 잣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사의 감시의무는 회사의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만약 회사에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경우 상법상 준법통제기준과 최근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발행한 ISO 37301 '컴플라이언스경영시스템' 국제표준을 참고하면 된다.

이사들은 회사와 임직원,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컴플라이언스를 당연한 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업무 분담과 관계없이 이사진의 모든 구성원이 해야 할 일이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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