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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미국, 베이징 동계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천명…미·중 관계 격랑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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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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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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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6일(현지시간) 내년 2월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정부 사절단을 일절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림픽에 선수단은 파견하지만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정부 관계자들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 카드를 빼든 것이다. 유럽 등 다른 서방 국가들도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초청도 하지 않았는데 불참한다고 발표하는 것은 ‘정치적 조작’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정상회담을 통해 ‘경쟁 관리’의 필요성에 의견 접근을 이뤘던 미·중관계에 당분간 거친 파도가 들이닥칠 것으로 보인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정부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외교 및 정부 사절단을 일절 파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신장 지역 인종학살과 인권범죄 그리고 다른 인권탄압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키 대변인은 “정부 사절단을 파견하면 중국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극심한 인권 탄압과 잔혹 행위에도 불구하고 이번 올림픽을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사키 대변인은 미국 선수단은 예정대로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 시절 중국이 신장 지역 무슬림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을 집단학살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의회와 인권단체들은 미국이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 등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베이징 동계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며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자 유럽 등 다른 서방 국가들도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랜트 로버트슨 뉴질랜드 부총리는 이날 “우리는 장관급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지난 10월 중국 측에도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등은 정부 사절단 파견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국의 인권 탄압 전력을 고려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관한 “공통의 접근법”을 동맹 및 우방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까지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회식 참석 의사를 밝힌 외국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일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대변인은 이날 “정부 당국자와 외교관의 참석은 각 정부의 순수한 정치적 결정이며, IOC는 정치적 중립성 차원에서 이를 완전히 존중한다”면서 사실상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 측에선 격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측에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한다. 미국에 엄정한 교섭(항의)을 제기했고, 앞으로 결연한 반격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국의 일련의 중요한 분야와 국제·지역 문제에 대한 대화와 협력에 해를 끼칠 것”이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앞서 류펑위 주미 중국 대사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 정치인들에게까지 초청장을 확대한 적이 없는데 난데없이 외교적 보이콧이 등장했다”면서 “이런 가식적인 행동은 정치적 조작이자 올림픽 헌장의 정신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차피 코로나19 때문에 대규모 정부 사절단 파견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미국이 의도적으로 올림픽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정치적 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는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고 대만 등 110개국을 초청해 9~10일 개최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 직전에 나왔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권위주의 정권의 인권탄압과 부패 문제 등에 공동으로 맞설 것을 강조할 예정이다.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직전 중국의 인권탄압을 이유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방침을 밝힌 것은 중국 견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취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은 이미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다짐해둔 상태다. 앞서 자오 대변인은 미국의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에 관해 “만약 미국이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반격하는 조치를 결연하게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중국이 202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하계 올림픽에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중국이 다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달 화상 정상회담에서 경쟁과 갈등이 예상치 못한 충돌로 격화되는 것은 막자면서 부문별 소통 채널 마련 등에 공감대를 이뤘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인권탄압 문제를 호락호락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중국이 이에 반발하면서 당분간 갈등의 골이 다시 깊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무슨 조치를 취하든 이미 악화된 미·중 관계를 더욱 긴장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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