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식당 테러... 피해 사장 10명 중 7명 이상이 여성 [열린 문 -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열린 문 - 여성 자영업자 폭력 보고서 ⑥]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 이건 시스템이다

단순 업무방해, 주취폭력이 아니다. 이것은 젠더폭력이다. 여성 자영업자 102명을 만났다. 여성 자영업자 대상 범죄 판결문 287건을 집중 분석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열린 문'의 공포였다. 가게의 문은 가해자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마음먹으면 언제고 그 문을 열고 침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도 법도, 열린 문을 막아설 안전장치가 되지 못했다. <오마이뉴스>는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젠더폭력 실태를 최초로 분석·보도한다. <편집자말>

"오른팔, 상체, 목 부분 화상으로 입원합니다. 테러 당했어요 ㅠ_ㅠ 치료받고 깨끗이 나아서 돌아올게요."

지난 9월 대구 한 호떡집에 붙은 안내문이다. 피해 업소 사장은 앞서 가해자가 펄펄 끓는 기름에 호떡을 던지는 바람에 인공 피부를 붙이는 수술을 할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다. 호떡을 잘라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벌인 짓이었다.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일부 언론은 손님의 행위를 '갑질'이라 명명했다. 혹자는 가해자를 두고 '진상'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표현으로는 사건의 본질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갑질이나 진상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손님'이 상대적 약자인 여성 자영업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었다.

판결문 217건 중 피해자 여성인 경우... 161건
오마이뉴스

▲ 오마이뉴스는 망원동 여성자영업자 102명을 만났다. 이 사진은 실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들고 촬영에 응한 것이다. ⓒ 권우성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행위로 피해를 입는 여성 자영업자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한 국가 통계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피해자 유형이 세분화돼 있지 않은 경찰청 범죄 통계나 대검찰청 범죄 분석 통계로는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업무방해, 협박, 손괴, 폭행, 상해, 성추행, 강간, 살인미수, 살인 등 범죄가 어느 정도 발생하고 있는지 그 실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관련 논문이나 각종 보고서를 통해서도 여성 자영업자들에 대한 폭력 범죄 규모는 확인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폭력'. <오마이뉴스>는 그 실태를 일부라도 파악하기 위해 '식당' 업종을 대상으로 판결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각종 키워드를 조합하여 2021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선고된 사건 중 식당 자영업자가 피해자인 경우의 판결문들을 추출했다. 판결문을 통해 피해자 성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경우만 모아보니 모두 217건, 하루에 적어도 1.2회 이상 식당 자영업자를 상대로 발생한 폭력 범죄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그 중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판결문 217건 중 여성 식당 자영업자 피해 사건은 161건(74.2%)이었고 남성의 경우는 56건이었다. 식당에서 발생하는 폭력 범죄 피해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여성 자영업자라는 이야기다.

판결문에 나타난 피해자들의 고통과 공포는 단순히 '업무방해'라는 법률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사건 : 전주지법 2020고단○○○○ 업무방해

2020년 7월 5일, 가해자는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행패를 부렸다. 법원은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지만 가해자는 다시 피해자를 찾아갔다. 같은 해 8월 1일 오후 6시 35분 경, 사법적 처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달도 되지 않아 식당에 나타난 가해자는 피해자와 손님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소란을 피웠다. 손님들은 식당을 떠났다. 피해자의 저녁 영업이 망가졌다. 가해자는 같은 달 24일에 또 다시 문을 열고 식당에 들어섰다. 오후 7시 33분경,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술을 달라고 했다. 이를 거절하자 가해자는 또 다시 행패를 부렸고 심지어 피해자가 있는 주방으로 침입하려고 했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가해자를 귀가 조치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찰이 떠나고 가해자가 다시 식당에 나타난 시간은 오후 8시 10분. 다시 욕설을 하고 웃통을 벗는 등 행위로 피해자를 위협했고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재판이 열렸다.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오직, 가해자가 다시 저를 찾아오지 않길 바랍니다."

비슷한 폭력의 반복
오마이뉴스

▲ 여성 자영업자 폭력보고서. ⓒ 권우성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1회성 폭력'으로 끝나지 않고 동일 가해자가 여러 차례 같은 곳에 찾아가 피해자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경우로 확인된 것은 판결문 217건 중 26건이었다. 26건 중 22건(84.6%)의 피해자가 여성 식당 자영업자였다.

"피고인은 2020년 8월 29일 21:00경부터 23:55경까지 서울 ○○구 B에 있는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술에 취하여 피해자에게 'X녀야, X년, XX년아'라고 큰소리로 욕설하고, 바닥에 침을 뱉고, 식당에 있는 손님들에게 시비를 거는 방법으로 행패를 부렸다... (중략)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무려 4번이나 거듭 찾아와 영업을 방해하고는 도망갔다가 다시 나타나 112신고만도 6회나 됐던, 집요하고도 폭력적인 것이었다." (서울서부지법 2020고단 ○○○○ 판결문 중에)

여성 식당 자영업자는 '아는 남성'의 폭력에도 취약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여, 55세)와 약 2년 전 2개월 가량 교제하다가 헤어진 사이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행위로 인해 재판을 받고 피해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2019년 8월 23일 04:00경 피해자 운영의 식당에 찾아갔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XX년, 개 같은 X아. 어차피 나는 교도소에 가야 돼, 내가 교도소 가면 혼자 갈 줄 아나...' (중략) 욕설을 하면서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 팔, 다리 등을 수회 때리고..." (대구지법 서부지원 2019고단○○○○ 판결문 중에)

가족, 남편, 애인, 동거남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괴한으로 돌변했다. 괴한으로 변하는 남성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건물주, 종업원, 이웃 상인 등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들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와 식당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이런 경우가 확인된 것은 31건, 피해자는 모두 여성 자영업자였다. 반대로 '아는 여성'에게 남성 자영업자가 폭력을 당한 경우는 전체 판결문 217건 중 나타나지 않았다.

시스템의 문제

허민숙 국회 입법사무처 조사관은 "'직장에 전화하겠다', '상사 앞에 나타나겠다', '네 사업장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겠다'는 등 모두 피해자가 극도로 꺼리는 상황"이라면서 "여성 자영업자의 경우는 이런 상황을 우려해 문을 닫거나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에 훨씬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허 조사관은 대구 호떡집 사건을 예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자리에서 보복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상대가 저항해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일을 저지르는 거다. 이런 일을 한 여성이 겪는 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유형의 경험을 갖고 있다면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허 조사관은 "가해자들은 처음 사건을 저지를 때만 해도 '괜찮을까?' 걱정하고 불안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상대는 더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확 올라가는 것"이라면서 "사실상 1차 범행을 저지르고 사회로부터 '너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인 약속을 받아낸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여성 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폭력이 1회성에 그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국가가 초래한 위험"이라는 설명이다.

161만9000명.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따르면 2020년 8월 기준 자영업자는 555만5000명이다. 그중 여성 자영업자 숫자는 161만9000명에 이른다. ◆

취재 : 이주연·이정환·홍하늘
사진 : 권우성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독립편집부 facebook.com/ohmyeum


독립편집부 기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기자 [시민기자 가입하기]
▶세상을 바꾸는 힘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