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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매경포럼] 지방 소멸위기, 국가 공멸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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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마늘의 고장, 컬링의 메카로 통하는 경북 의성군은 인구 감소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해 말 2만1478명으로 전체 군민의 41.5%를 차지했다. 사망자는 924명으로 출생자 227명보다 4배나 많다. 의성군은 전국 고령화율 1위와 지역소멸지수 2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의성군은 3년째 청년 창업과 주거단지를 지원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150여 명의 청년을 유입시켰다. 인위적으로 청년들을 시골에 정착시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 사례다. 의성군은 재정 지원으로 청년들을 간신히 끌어모았지만 이들이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른다.

인구 늘리기가 쉽지 않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추모공원, 교도소 등 기피시설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피시설이 고용 창출, 유동인구 증가 등으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인구가 7만명대로 추락한 전북 남원시는 법무부와 교정시설 신축 사업 협약을 맺었다. 폐광 지역의 대체 산업을 찾고 있는 강원 태백시는 2026년까지 재소자 1500명 규모의 교도소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 경북 상주시 함창읍 나한2리는 주민이 30명에 불과해 존폐 위기에 놓이자 상주시의 공설 추모공원을 유치했다고 한다. 인구 감소를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지방 소멸이 현실화된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지자체들은 전입자를 유치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각종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출생률 대비 높은 사망률로 자연적인 인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그동안 출산장려금, 아동수당, 귀농귀촌 서비스, 정착지원금 등으로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오히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런 위기감을 반영해서 올해 인구감소지역으로 89곳의 지자체를 선정했다. 전남과 경북에서 각각 16곳, 강원 12곳, 경남 11곳, 전북 10곳 등으로 전국 지자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인구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 소멸의 잣대 중 하나인 인구 3만명 미만 기초지자체도 경북 영양군, 전북 장수군 등 18곳에 달한다. 인구감소지역은 교육, 주거, 산업, 일자리, 재정자립도가 점차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내년부터 10년간 매년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하고 이와 별도로 52개 총 2조5600억원 규모 국고보조사업도 벌인다. 하지만 기존 방식처럼 단순한 재정 지원만으로는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 숙원사업을 여야 후보들의 대선 공약으로 끼워넣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지역 표심을 의식한 여야 후보들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허황된 공약을 검증 없이 공약집에 올려놓고 있다. 재탕, 삼탕 공약들도 수두룩하다. 새만금 개발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은 1987년 대선 때부터 등장한 단골 메뉴다. 대선 공약들은 대부분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사업들이어서 지방 소멸에 대한 올바른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내년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이라는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 지방 소멸은 지방자치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국가 공멸로 가는 길이다. 여야 후보들은 천편일률적인 인프라 투자보다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해야 한다. 청년들의 농업 일자리 창출을 위해 스마트팜을 집중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시민의 농어촌 살아보기, 제2의 고향 등 지역과 인연을 맺고 머무르는 일본의 '관계인구' 정책도 검토해볼 만하다. 인구감소지역의 지자체와 인접 지자체 간의 행정 통합도 피할 수 없는 현안인 만큼 미뤄서는 안 된다.

[윤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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