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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허경영의 평범한 공범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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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하늘궁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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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이 지면에서 '위험한 웃음거리, 허경영(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2005041137729933)'이라는 제목으로 허경영의 반사회성을 지적하는 글을 썼다. 시민사회가 그의 위험성을 묵과하고 코믹 아이콘으로만 여기는 바람에, 그의 반사회성이 질서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허경영의 국가혁명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0.7%를 득표했다. 이 끔찍한 결과를 보고도 시민사회는 계속 무신경하게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왔다. 대선 후보로 다시 출마 선언한 그의 지지율이 최근 4%대에 이르렀다. 아무리 정치 혐오가 심각하다고 해도, 정상적 사회라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이제 웃음을 거두고 모두 안색을 고쳐야 한다.

지금 SNS에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홍보 전화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처럼 떠든다. 주류 언론에서도 심심하면 그를 소환하고, 시청률과 청취율에 목맨 TV와 라디오에서 그에게 마이크를 수시로 쥐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무방비로 그에게 정서적 품을 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허경영은 그의 음습한 반사회성을 세탁하고, 주류의 유명인이 돼버렸다. 급기야 야당 중진인 안상수가 지난 8월 대선 경선에 참여하며 그와 나란히 서서 정치적 연대까지 선언했으니 말 다했다. 안상수는 허경영의 반사회성을 추인해 정치를 극도로 희화화하는 해당 행위를 했다. 국민의힘은 이런 그를 왜 징계하지 않는가?

허경영은 지난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교제·결혼설을 퍼뜨려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뿐인가. 부시 전 미 대통령과 찍었다던 가짜 합성 사진을 유포하고, 자신이 이병철의 양자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 보좌관이었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했다. 허언증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안색 하나 바꾸지 않는 그가 아직도 그저 '재미있는 아재'쯤으로 보이는가?

지난 주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허경영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고발했다. 그에게 전 재산을 갖다 바친 서민들의 피해 사례들이 소개됐다. 평생 모은, 피 같은 돈이다. 장흥에 있는 '하늘궁'이라는 정체 불명의 장소에서는 강의를 빙자한 유사 종교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우주 전체를 소유하고 있는 자야. 허경영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은 내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가라." 허경영의 이 말을 듣고 피식 웃고 넘기면 그만이겠으나, 그러기에는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추종자들은 허경영의 사회적 명성에 그루밍됐을 것이다. 그를 만나 짧은 축복의 메시지를 받으려면 100만 원, 천국행 티켓이라는 백궁 명패 1개를 사려면 300만 원을 내야 한다. 그리고 1억 원을 내면 대천사 칭호와 함께 메달을 준다. 지지자들의 돈으로 부동산을 계속 매입해 장흥 일대는 지금 허경영 왕국이 되고 있다. 자신을 신인(神人)이라 칭하는 그는, 전문가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영락없는 사이비종교의 교주다. 허경영의 '하늘궁' 사업은 서민의 재산을 갈취하는 정신적 보이스 피싱이다.

허경영은 정치판에서 만든 명성을 자신의 음험한 사업의 자산으로 삼고 있다. 부끄럽게도 그 명성은 다 우리가 만들어준 것이다. SNS에서 허경영 놀이하는 사람들, 심심하면 허경영 소환하는 언론인들, 정치 혐오를 부추기며 상대당 공격하면서 허경영 들먹이는 정치인들, 당신들 모두 허경영의 이 범죄적 행태의 공범들이다. 다들 정신차려야 한다. 그의 지지율이 악몽처럼 끔찍하다.
한국일보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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