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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은 이 작품, 내 '인생영화'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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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틱, 틱, 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이렇게 시작되는 김광석의 곡 '서른 즈음에'를 나 역시 서른 즈음부터 들었다. 아스라한 김광석의 목소리가 첫 구절을 흐를 때부터 철렁 내려앉았던 그 마음, 아마도 살면서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 또는 아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여기 또 한 편의 '서른 즈음에'를 읊는 한 청년이 있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앤드류 가필드 주연의 <틱, 틱, 붐>의 주인공 존이다. 영화의 제목인 '틱틱붐'에서 '틱틱'은 시계의 초침 소리이다. 눈 앞에 다가온 서른은 마치 내 뒤를 쫓는 듯한 시계 초침 소리, 틱틱처럼 '강박적'으로 나를 옭아맨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될까? 조금 더 세상의 잣대에 맞춰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조나단 라슨의 서른 즈음에
오마이뉴스

▲ 틱틱붐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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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뉴욕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 이곳에 등장한 한 남자는 이제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있다고 말한다. 세상 인기없는 직업인 뮤지컬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 그는 지난 8년간 작업한 '슈퍼비아'라는 작품의 워크숍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 공연할 작품도, 배우들도 다 마무리되지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 곡을 작업하려 한 순간, 밀린 전기요금으로 인해 전기가 끊긴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함께 살던 연인 수잔(알렉산드라 쉽 분)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한다. 그녀의 선택은 그저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존과 함께 예술의 공간 소호에서 자신의 꿈을 찾으려 했던 그녀는 이제 '호구지책'을 위해 그 꿈을 접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자신과 함께 이곳을 떠나자는 그녀, 그녀의 제안은 존 역시 그녀처럼 이제 그만 '꿈'을 놓아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꿈을 놓고 떠나는 이는 애인만이 아니다. 죽마고우이자 룸메이트였던 마이클(로빈 드 지저스 분)은 배우의 꿈 대신 광고 회사를 선택했고, 그 결과물로 비싼 오피스텔을 얻었다.

말이 뮤지컬이지, '슈퍼비아'라는 그의 작품은 그가 사는 1990년대의 현실, 하지만 한 편의 과학 논문같은 난해한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그 따위가 무슨 뮤지컬이냐고 했지만, 존이 흠모하는 작곡가의 한 마디가 전위적인 그의 작품에 기회가 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작품만 생각한다며 애인이 그를 외면하고, 마이클에게 애걸복걸해서 광고회사 아르바이트 자리로 얻은 돈으로 원하는 세션을 만들고, 공연 당일 새벽 수영장에서 겨우 완성한 곡으로 시작된 공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전력질주로 서른 전에 어떻게든 결승점에 도달하려고 했는데, 공연을 마친 후 통화한 기획사 대표는 말한다. '계속 써'라고.
길을 잃었어/ 나는 숨고 싶었어/ 성공할 수 있을까?
- <틱틱붐> 중에서

정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전력질주해서 숨을 고를 시간도 없는데,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니. 그런데, 그래도 아직 달릴 기회가 있다면 다행일까? 존으로 하여금 '세상 속 삶'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마이클, 그 오랜 친구가 고백한다. 번듯한 직장, 멋진 오피스텔, 다 가진 듯 보였는데 에이즈 선고를 받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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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틱붐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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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인생의 아이러니는 <틱틱붐>의 실제 주인공 조나단 라슨의 삶이다. <틱틱붐>은 영화 속 틱틱붐처럼 조나단 라슨의 1인극이었다. 이 작품을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어번이 각색하여 브로드웨이에 올렸다. 왜 조나단 라슨이 아니고? 조나단 라슨이 더는 '생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슈퍼비아'를 워크숍에서 공연하고, 기획자로부터 '네가 잘 아는 이야기를 써'라고 충고를 들은 존.그 장면처럼 조나단은 가난과 꿈과 에이즈와 싸우는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의 나이 35세, 그가 뉴욕 소호 거리 식당에서 일하며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결실이 무대에 오르기 전 날, 대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틱틱붐>에서 무대 위에서 존이 홀로 하는 공연과 지나온 그의 시간이 맞물리듯, <틱틱붐>이라는 작품을 통해 서른 즈음에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 예술가의 모습과, 그런 그가 스스로 장담하듯 '뮤지컬의 미래'가 된 <렌트>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요절'한 조나단 라슨 생애가 엇물리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금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슈퍼비아'라는 실험적인 작품에 8년을 쏟아부은 젊은 뮤지컬 작곡가, 과연 그를 보고 우리는 어떤 생각을 떠올릴까? 그에게 <렌트>라는 명작의 작곡가라는 '월계관'이 씌워지지 않아도 그를 응원할 수 있을까? 그에게 다시 5년 여를 식당에서 일하며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만약, 8년을 매진한 작품이 공연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때 자신을 포기했다면, 조나단이란 사람은 안타까운 존재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을까? 많은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선뜻 '정답'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서른 즈음에'를 열창하던 김광석도, 또 다른 서른 즈음에의 주인공 <틱틱붐>의 조나단 라슨도 더는 우리 곁의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힘겹게 넘긴 서른 고갯마루의 유산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미생>의 한 장면,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걸 힘들어 하는 장그래에게 김동식 대리가 말한다. 우리는 그저 세상의 문을 하나씩 여는 것일 뿐이라고. 조나단 라슨이 서른 즈음에 포기하지 않고 힘겹게 연 세상의 문이 린-마누엘 미란다 감독을 통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청춘의 보편적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니 육십 즈음에도 여전히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듯, 인생은 늘 우리를 또 다른 문 앞에 세운다. 그런 의미에서 <틱틱붐>은 '인생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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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틱붐 ⓒ 넷플릭스




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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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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