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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삼성전자 기업가치는 왜 애플보다 낮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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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l 삼성전자


한겨레

2021년 10월2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제23회 반도체대전'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부스에서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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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의 ‘대장주’ 삼성전자 주가가 9만원을 넘어선 것은 2021년 1월11일이었다. 1년 전인 2020년 1월10일(종가 5만9500원)에 견주면 53%가 뛰었다. 이날 개인은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이 던진 삼성전자 주식을 무려 1조7천억원어치 사들이며 ‘9만 전자’ 시대 개막에 힘을 보탰다. 이례적인 매수세였다.

증권사들은 이날 일제히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아직 싸다! 12만원 거뜬’. 당시 보도된 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은 이랬다. ‘10만 전자’가 눈앞이라는 장밋빛 기대감이 증권가에 팽배했다.

애플과 TSMC 의 추월

그러나 바로 다음날부터 겨울이 시작됐다. 이튿날 하락세로 돌아선 주가는 1월13일 주당 9만원에서 4개월 뒤인 5월13일 8만원의 벽을 깨고 미끄러져 내렸다. 10월 들어선 끝내 7만원 선 아래로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고점 대비 3분의 1이 증발한 셈이다.

우리는 주식에 물리고서야 비로소 그 회사가 어떤 곳인지 살펴보게 된다. 2021년 상반기 삼성전자 매출액은 129조원이다. 전체 매출의 40%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발생했다. 반도체 32%, 가전제품 20%, 디스플레이 11% 등으로 뒤를 이었다. 영업이익은 22조원이었다. 반도체 사업 이익은 10조원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스마트폰 판매 이익은 8조원으로 3분의 1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와 생산은 물론 스마트폰, 가전, 노트북까지 수직계열화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여기까진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다. 하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시장의 투자자들이 미국 애플과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봤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10만 전자’에 올라서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삼성전자와 달리, 지금은 주가가 저 위로 훌쩍 올라가버린 글로벌 기업들 말이다.

전세계 투자자들의 이런 시선은 주가수익비율(PER)이라는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가수익비율이란 쉽게 말해 회사의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주식 1주의 가격을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과도 같다. 이 비율이 높다는 건 지금의 주가가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에 비해 너무 높거나, 투자자들이 앞으로 회사에 들어올 이익이 많이 증가하리라 예상한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의 2016년 주가수익비율은 13.2였다. TSMC(12.3)보다는 약간 높고 애플(13.1)과 비슷했다. 그러나 4년 만에 판도가 바뀌었다. 2020년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은 21.1로 올라섰다. 하지만 TSMC와 애플은 이 비율이 각각 31.7, 35.8을 기록하며 훨씬 큰 폭으로 뛰었다. 회사의 이익 증가 폭보다 주가 상승 폭이 두드러지게 컸다는 의미다.

이런 차이가 생긴 건 물론 각 기업이 상장한 시장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애플은 미국 나스닥, TSMC는 대만 증시에 각각 상장해 있다. TSMC의 경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해서 거래한다. 거래 시장의 규모가 현격히 차이 난다.

그러나 본질에서 기업의 주가는 미래 매출과 이익 증가를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비록 상장한 시장은 다르나 투자자 접근성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는 결국 투자자들이 애플과 TSMC보다 삼성전자의 성장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이야기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이전까지 엄연한 공생관계였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새로운 휴대용 음향기기 ‘아이팟 나노’에 삼성전자의 얇고 저렴한 낸드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탑재해 애플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삼성전자도 애플 일감에 힘입어 일본 도시바를 제쳤다. 애플은 2007년 내놓은 ‘아이폰’의 두뇌 격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생산도 삼성전자에 위탁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 성장과 스마트폰 ‘갤럭시’ 출시의 계기가 됐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다. 그 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급성장하며 둘은 갈라섰다.

애플이 삼성전자보다 우위에 선 발판은 애플만의 폐쇄적인 수직 통합 생태계다. 지금껏 애플 성장을 이끈 아이폰은 2015년 이후 사실상 성장이 정체된 상태다. 대신 자체 개발한 반도체칩과 독자 운영 체제(iOS 등), 고유의 플랫폼(앱스토어 등)을 통해 아이폰·아이패드·맥북 등 애플의 모바일 기기를 쓰는 소비자를 가두고 그 안에서 지갑을 열게 한다. 기존 기기와 호환되는 애플워치 등 신제품이 흥행하고 애플의 온라인 서비스 매출이 빠르게 불어나는 배경이다. 투자자들은 단순 제조업체를 넘어서는 애플의 ‘모바일 제국’으로의 변신 가능성에 베팅한다는 얘기다.

대만 TSMC는 삼성전자와 갈라선 애플의 손을 잡고 성장했다. 바로 여기에 이 회사의 강점이 있다. 바로 막대한 자본투자와 여기서 뒷받침되는 생산능력, 그리고 거래처 확보다. 사실상 대만의 공기업에 가까운 TSMC가 ‘다른 회사의 반도체를 대신 만들어준다’는 사업모델을 처음 앞세웠을 때만 해도 지금의 성공을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들과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가격경쟁을 벌일 때 안정적 전략을 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이 먹힌 건 반도체 제조 시설을 갖지 못한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의 성장과 빅테크(초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자체 칩 수요 급증에 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사훈을 만들고 인텔, 삼성전자 등을 껄끄러워하는 거래처를 대거 유치하며 반도체 분업 시대엔 외주업체도 ‘갑’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실제로 TSMC의 영업이익은 2015년 말 삼성전자의 44%에 불과했으나 2020년 말에는 64%에 육박했다. TSMC의 높은 주가엔 이 회사의 이익이 조만간 삼성전자를 따라잡거나 추월할 거란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셈이다.

모범생 삼성, 특기생으로 변신해야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모바일 사업 등에서 보여준 전략은 모든 과목을 다 잘하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사실 이런 성과를 만든 것 자체가 전무후무하다. 하지만 ‘9만 전자’를 넘어 ‘10만 전자’ 시대를 여는 열쇠는 모범생이 아니라 개성이 뚜렷한 특기생일 때 쥘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삼성이 쥔 현금이 130조원이다. 이 돈이 흐르는 방향에 주목하면 삼성이 마련한 답이 보일 것이다.

찬호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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