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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 의원, 향년 98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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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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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돌 전 상원의원이 지난 2013년 12월11일(현지시간) 세계식량계획(WFP)이 주최한 제12회 조지 맥거번 리더십에서 당시 바이든 부통령으로부터 맥거번 돌 리더십 상을 받은 후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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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낸 밥 돌 전 상원의원이 5일(현지시간)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CNN방송은 이날 돌 전 의원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트위터를 통해 그의 사망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돌 전 의원은 지난 2월 자신이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1923년 캔자스주에서 태어난 돌 전 의원은 2차 대전 기간이자 의사를 꿈꾸는 대학생이었던 1943년 현역 군인으로 소집됐다. 1945년 이탈리아 전투에서 포탄을 맞아 오른팔이 영구 불능이 됐고 왼팔은 최소한의 기능만 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어 3년 넘게 병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이후 정계에 입문해 1951년 캔자스 주의회의 하원의원이 됐고, 1961년부터 네 차례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 1969년부터 1996년까지 캔자스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을 맡았다. 1985년부터 1996년까지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내 사회보장 개혁, 장애인법 등 입법을 추진하며 초당적 협력을 끌어냈다. 뉴욕타임스는 “보수주의자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돌이 실용주의자로 발전해 저명한 진보주의자와도 정치 관계를 맺었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1993년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빌 클린턴 정부의 대북 협상 전략을 비판하며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중단 등 강경론을 주장했다.

돌 전 의원은 여러 차례 대선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로 러닝메이트로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1980년과 1988년에는 공화당의 당내 경선 문턱을 넘지 못했다. 1996년에는 최고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재선 도전에 나선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공직에서 물러난 돌 전 의원은 참전 용사와 전몰 장병을 기리는 사업에 전념했다. 1997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과 2018년 미국 최고 훈장 중 하나인 의회 명예훈장을 받았다. 2016년 미 대선 때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인사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 등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돌 전 의원과 상원에서 함께 정치 생활을 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돌 전 의원의 폐암 소식이 알려지자 병문안을 하며 초당적 우정을 보여줬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돌 전 의원을 “역사상 몇 안 되는 미국 정치가”라고 칭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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