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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메타버스로 고관절 수술 훈련하고, 챗봇이 의료 상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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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오소 VR이 9월 4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정형외과학회(AAOS)에서 ‘외과수련 오소 VR 플랫폼’을 시연하고 있다. / 오소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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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큘러스(Oculus) 헤드셋을 쓴 외과의사가 가상현실(VR) 수술실에서 수술을 집도한다. 동료가 건네는 메스의 차가운 온도가 촉각을 느끼게 해 주는 장갑을 통해 전해지고, 환자의 뼈와 관절을 잘라내는 감각도 그대로 느껴진다. 미국 바이오·헬스 스타트업인 오소(Osso) VR이 그리는 외과수술 학습용 VR 콘텐츠의 미래 모습이다. 외과수술 학습용 VR은 이미 쓰이는 기술이지만, 현재와 같은 게임 수준을 넘어 실제 수술 집도할 때의 상황을 반영한 고도화된 기술이 미래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오소 VR은 2016년 미국 팰로앨토에서 설립된 의료 VR 플랫폼 개발 업체다. 인체를 수술실에서 가상으로 구현해, 의료진을 훈련시키고 평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면서 주목받았다. 이 플랫폼으로 훈련받은 한 외과의사가 고관절 수술 시간을 종전 3시간에서 1시간 45분으로 단축시킨 사례도 나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가상 세계에서 손과 몸을 움직여 현실처럼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웨어러블(착용형)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PC나 스마트폰 화면 안에만 있었던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를 의료에 접목시키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의료 현장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규제가 많아 변화에 느리다. 지난 10여 년 동안 교육용 VR이 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왔지만, 병원 수술 현장에 VR이 도입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의 단초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에서 찾는다.

세계적인 의료 미래학자로 꼽히는 버탈란 메스코(Bertalan Mesko) 메디컬 퓨처리스트 연구소 창립자는 11월 22일 조선비즈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의료 기기 산업은 물론이고 병원에서도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로 이런 변화는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수차례 봉쇄를 겪으면서 환자들 사이에서 ‘의사에게 직접 진찰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졌고, 의료진도 환자를 직접 만나는 시간을 줄이면서 진료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 분석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원격 의료 시장은 2019년 455억달러(약 55조원)에서 2026년 1755억달러(약 208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트렌드에 올라탄 원격 의료 서비스 기업은 의사와 환자를 연결하는 모바일 플랫폼을 선보이며 고속 성장 중이다. 미국 최대 원격 의료 기업 텔라닥 헬스(Teladoc Health)는 플랫폼 이용자가 5200만 명에 달하고, 지난해 매출은 10억9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선정 2021년 세계 최고 스마트병원에 오른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은 팔찌형 헬스케어 기기 등으로 환자의 건강 데이터는 물론 음식 칼로리와 운동량, 수면 상태, 알레르기 반응 등 일상적인 생활 정보를 수집해 관리하고 있다.

환자 건강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스크리닝’을 통해 암, 심혈관 질환 등을 진단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웨어러블 기기의 헬스케어 혁신은 “집에 있든, 여행 중이든 환자가 있는 곳이 진료 장소가 돼야 한다”는 메스코 창립자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삼성전자와 애플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혈압·심전도·체성분·부정맥 등을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의 종합병원에서는 의사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달래는 방편으로 의료 상담용 AI 챗봇(대화 로봇)을 도입해 효과를 봤다. 환자들은 챗봇에서 대화하는 상대가 진짜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대화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의료진을 보조하는 도구로 챗봇을 주목하고 있다. 데이비드 류(David C. Rhew) MS 글로벌 최고의료책임자(CMO)는 “AI를 활용해 환자와 의사가 나누는 대화를 텍스트(활자)로 바꿔서 의료 기록으로 저장하고 통합하는 것은 이제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존의 병원이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병원들이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비용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환자의 개인 정보가 포함된 건강 데이터를 다루는 문제도 헬스케어 혁신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환자의 의료 정보가 해킹을 통해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우려에 메스코 창립자는 미국 정부가 ‘건강 보험 양도 및 책임에 관한 법(HIPAA)’을 통해 환자 동의 없이 개인 정보를 공유할 수 없도록 한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환자 정보를 활용한 솔루션 개발을 고민하는 의료기관이라면, 미국의 HIPPA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환자 정보 활용과 보호는 ‘헬스케어’ 육성을 고민하는 각국의 정부가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란 뜻이다.

한동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산업혁신기획단장은 “바이오헬스 분야는 각국의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는 분야지만, 또 반대로 각국의 경쟁도 치열한 분야”라며 “글로벌 추세를 선도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lus point

진화하는 백신, 주목받는 차세대 기술은

“mRNA 부작용 줄이고 암까지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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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제(왼쪽) 아이진 기술총괄대표(CTO)와 윌리엄 헐 이뮤노믹 창립자. / 조선비즈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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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은 1796년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에 의해 최초로 발명된 후 오늘날까지 계속 발전해 왔다. 최초의 백신은 우두(소의 천연두) 바이러스를 직접 인체에 주입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약독화 백신, 불활화 백신 등이 개발돼 부작용을 줄이고 다양한 질병을 퇴치했다. 현재 최신 기술은 지난해 코로나19 예방용으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만든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이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업계는 그 너머 기술 선점을 노리고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 아이진은 ‘지방나노입자(LNP)’ 대신 ‘양이온성 리포솜’을 쓰는 국산 코로나19 mRNA 백신을 개발 중이다. 백신의 주성분인 mRNA는 외부 환경에 취약해 몸속에서 쉽게 분해된다. mRNA를 보호할 캡슐(약물 전달체)이 필요한데,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엔 LNP가 사용된다.

조양제 아이진 기술총괄대표(CTO)는 “LNP를 신체에 주사하게 되면 주사 부위뿐만 아니라 폐나 뇌, 간, 신장 등 모든 장기에서 단백질이 나타난다”고 했다. 아이진은 LNP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양이온성 리포솜을 약물 전달체로 사용했다. 아이진은 올해 10월 호주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수탁(CRO) 계약을 맺었고, 내년 1월 당국의 임상 승인을 받는다는 목표다. 내년 3월에는 필리핀에서 임상 승인을 받아 2분기 안에 중간 분석 결과를 내놓을 방침이다. 내년 3분기엔 글로벌 단위의 후기 임상을 진행하게 된다.

감염병 백신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 윌리엄 헐이 이끄는 미국 제약사 이뮤노믹은 암을 치료하는 항암 백신에 도전하고 있다. 항암 백신은 화학 약물로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현재의 항암 치료법과 달리, 인체의 면역 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바이러스가 몸속에 침입할 경우 이에 맞서는 면역 성분을 만드는 일반적인 백신의 원리를 암 치료에 응용한 것이다. 아직 항암 백신이 상용화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낮은 효과(면역 활성) 때문이다. 기존의 백신들이 세포의 일부분인 ‘주조직 적합 복합체(MHC)’ 그룹1과 그룹2 중 하나를 자극해 면역 성분을 만드는 것과 달리, 이뮤노믹은 둘 모두를 자극해 면역 활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른바 ‘램프(LAMP) 백신’은 현재 1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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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maeng@chosunbiz.com);김윤수 기자(kys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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