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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로] 일곱 세대 후손과 마지막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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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이투데이

초등학생들에게 학교급식으로 과일 간식을 준다고 한다. 초등돌봄교실에 시범사업을 해보니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좋아하고, 이 정부의 공약이기도 했으니 내년 초등 6학년생부터 시작해 전 학년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수입 과일에 밀리고 있는 과수 생산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교원단체나 영양교사, 학교급식 관계자들은 현장을 모르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과일을 먹이는 것은 건강을 위해 바람직하나 식단 구성 변화, 전처리나 급식량 영향, 위생과 노동, 행정처리 문제 등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 학교급식이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아 온 것은 급식을 둘러싼 먹거리 체계가 어찌어찌 감당하며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으로부터 가공과 물류, 조리와 소비, 폐기에 이르는 체계가 꽉 짜여 지탱하고 있는데 공급 예산만 추가해 과일이 들어오면 급식 현장에서는 추가되는 노동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명의 조리사가 140명 아이들을 책임지는 학교급식 현장이니 충분히 나올 법한 목소리이다. 단순히 품목 하나를 추가하며 생색내는 정책으로는 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논의하며 우리 정부는 국제적 권고에 따라 2050년 국내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목표로 2030년까지 40%(온실가스 배출 정점인 2018년 대비)를 감축하기로 상향 조정했다. 조정 수치 지표가 되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지침을 따르고 있는데 크게 에너지, 산업공정, 농업, 폐기물 등 분야로 나누어 산정하고 있다. 먹거리 체계는 생산에서 운송, 소비, 폐기에 이르는 전 과정이 통합적으로 작동하여 수급되고 인류에게 생명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지만 산업화·상품화된 현대 사회체계는 이를 분화하여 에너지 사용을 따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산-소비의 관계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부분은 없는지, 먹거리 체계의 불균형, 불공정은 없는지 등 기후위기와 먹거리 체계의 관계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통합적인 먹거리 체계와 에너지 사용(곧 온실가스배출)을 평가하기 위해 먹거리 운송이나 음식 폐기 등 다른 분야에 숨어 있는 부분들을 따져 보니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가운데 먹거리 체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30% 수준에 이른다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산업화된 세계 먹거리 체계의 전환이 필요하고, 과다 확산된 탄소를 감축, 안정화하기 위해 토양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대열에 걸맞은 에너지 사용과 먹거리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는 농업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체 배출량의 2.9%로 추산하고 있다. 이렇게 낮은 이유는 21%로 계속 떨어지고 있는 곡물자급률, 즉 사료, 비료를 포함해 많은 먹을거리를 멀리서 수입해 먹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먹거리체계에 참여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식량주권을 확충하지 않고 이상기후로 더욱 불안정해지는 해외 곡물시장에 의존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내년 600조 원이 넘는 예산에서 농식품부 소관 예산은 2.8%에 불과해 비판을 받고 있다. 낮은 자급력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분만큼만 나랏일을 하겠다는 이 정부의 무심한 농(農) 인식, 나라보다 조직을 염려하는 농식품부의 관료스런 무소명감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 나아질까? 먹거리 체계의 전환을 얘기하는 생산자, 소비자, 농과 먹거리를 인식하는 농시민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지구 역사에서 소행성 충돌, 화산 폭발, 급격한 기후변화 등으로 발생한 다섯 차례의 대멸종은 대부분 최고 포식자의 멸종이지 지구의 멸망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구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체계이다. 학교급식에 과일 간식 하나 추가되더라도 새로운 사회체계로 변화하는 것이며 당연히 사회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물며 기후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 먹거리 체계의 대 전환이 필요하다.

간디가 ‘사람들의 기본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이 지구는 극히 풍요로운 곳이지만, 탐욕 앞에서 지구는 지극히 결핍된 곳’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구의 마지막 세대인 것처럼 살아가는 현대 인류에게, 과거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일곱 세대 이후의 후손이 거닐 숲과 사냥할 동물을 생각하며 자연을 이용하고 관계 맺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까?

[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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