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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47명과 3000명의 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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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바나나 학살
한국일보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1956년 작 '영광의 승리(Gloriosa Victoria)'. 모스크바 푸시킨박물관 소장. art-for-a-chan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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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국적 농업기업들이 중남미 '바나나공화국'을 지배한 메커니즘은 단순했다. 뇌물로 현지 권력자를 매수해서 토지 독점권을 획득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부려 바나나나 사탕수수 등 단일 작목을 대량 재배, 세계시장의 독점적 지배력으로 폭리를 취하는 구조. 미국 정부, 특히 국무부와 CIA는 해외 기업의 든든한 파수꾼이었고, 유력 정치인들이 기업 뒤에 포진해 있었다. 바나나공화국은 자본·정치·공권력의 동맹이었고, 동력은 착취와 부패였고, 최대 피해자는 현지 노동자 인권과 국가 경제와 민주주의였다. 1928년 콜롬비아 산타마르타 시에나가의 바나나농장 노동자 학살은 이 사슬의 잔혹함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농업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UFC)'의 바나나농장 노동자들이 1928년 11월 12일 파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노동자 하도급 금지, 부상자 보상, 급여 인상, 주 6일제(일요일 휴무) 보장, 돈이 아닌 쿠폰 급여 폐지 등을 요구했다. UFC는 파업 주동자들을 '빨갱이'로 치부하며 콜롬비아 군사정부 개입을 요구했다. 미 국무부도 원조 중단과 미 해병대 파병 등으로 군사정부를 압박했다.

러시아 혁명 직후였고, 사회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치솟던 때였다. 콜롬비아 정부와 의회가 만든 'Law 69'는, 좌파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집단행동 전반을 탄압하기 위한 법이었다. 노조 집단행동도 당연히 불법이었다. 2년 뒤 총선에서 자유당과 좌파 정당과 대결해야 했던 보수 정부로서도 사태 조기 진압이 필요했다.

12월 6일 일요일, 기관총으로 무장한 콜롬비아 군대는 성당을 다녀온 뒤 시에나가 광장에 가족과 함께 모인 파업 노동자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했다. '5분 내 해산' 명령을 내린 직후였다. 희생자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군당국은 47명이 숨졌다고 공식 발표했고, 현지 자유주의 언론은 최소 2,00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학살사건 1년 전에 태어난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서 3,000명이라 썼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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