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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최영미의 어떤 시] [48]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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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랑 손이랑

깨끗이 씻고

자알 찾아보면 있을 거야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나는 일이

어딘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야

아이들이

보물 찾기 놀일 할 때

보물을 감춰두는

바위 틈새 같은 데에

나무 구멍 같은 데에

행복은 아기자기

숨겨져 있을 거야.

-허영자 (許英子·1938~)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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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딘가에 그게 있을까? 왜 내 눈엔 안 보이는 거지? 깜짝 놀랄 만큼 신바람 나는 일이 지금도 있을까. 중년을 지나 깜짝 놀랄 일은 누가 다쳤다든가 누가 암에 걸렸다든가 하는 슬픈 일이었다.

놀랍지도 신바람 나지도 슬프지도 않은 하루를 보내고 허영자 선생님의 ‘행복’을 읽었다. 친구를 앞에 두고 말하는 듯 구어체의 “눈이랑 손이랑” “자알 찾아보면”을 보며 웃음이 솟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잘’이 아니라 ‘자알’로 늘여 운율도 더 맞고 재미난 표현이 되었다. 간결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언어들. 1연 2연 5연이 “~거야”로 끝나고, “데에”로 끝나는 4연의 두 행은 2음절이 반복되어 리듬과 통일감을 주었다.

허영자 선생의 시는 운율이 강하다. 전통시의 운율이 살아있어 한 번 보았는데도 금방 외워진다. 요즘 우리 시에 리듬이 사라지고 있다. 말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시대,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말의 행복, 시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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