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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흉기 등 치명적 공격 위협에도… 경찰 절반이 ‘맨몸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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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서울 경찰 물리력 사용 383건 분석

관절 꺾기·신체 미는 등 조치 그쳐

급박상황 테이저건 등 사용 소극적

권총 등 ‘고위험 물리력’ 대응 전무

직무수행 중 형사책임 감경 법안

국회 법사위 논의 중… 입법 속도

시민단체선 “물리력 남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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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절반 가까이는 현장에서 흉기 등 치명적인 공격 위협을 받는 경우에도 경찰봉 등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지난달 인천 흉기난동 부실대응 논란 이후 국회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경찰관 형사책임 감면 조항 신설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에서 시작됐다.

5일 한국형사정책연구 제32권 제3호에 게재된 논문 ‘대상자 특성이 경찰 물리력 행사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이창용 경찰인재개발원 인권리더십센터 교수 등 연구진은 2019년 12월∼2020년 11월 서울경찰청 소속 교통외근·지역경찰의 물리력 사용 보고서 383건(전체 1322건 중 피해 불명확 사례 938건·멧돼지 대상 물리력 사용 1건 제외)을 조사했다.

◆경찰 47%, 치명적 공격에도 ‘맨몸 대응’

이 중 대상자가 현장 경찰관이나 제3자를 상대로 흉기 등을 휘둘러 사망 또는 심각한 신체적 부상을 초래할 수 있는 ‘치명적 공격’으로 저항한 경우는 36건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관이 관절 꺾기나 넘어뜨리기 등 ‘저위험 물리력’으로 대응한 경우가 25%(9건), 신체 일부를 미는 ‘접촉 통제’ 사례는 22.2%(8건)에 달했다. 치명적 공격을 마주한 경찰관 2명 중 한 명은 ‘맨몸’으로 맞선 셈이다.

경찰봉·전자충격기 같은 ‘중위험 물리력’을 사용한 경우는 이보다 다소 높은 52.8%(19건)로 집계됐다. 하지만 대상자의 공격으로 상당한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급박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할 때,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경찰은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을 통해 흉기 등 치명적 공격에는 권총 등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해 제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실제 고위험 물리력을 사용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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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관련 규칙은 대상자가 주먹·발 등 강한 완력으로 경찰을 공격하거나 체포를 벗어나려는 ‘폭력적 공격’에 대해 중위험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정했지만, 실제 중위험 물리력을 쓴 비율은 10%도 되지 않았다. 폭력적 공격 사례 216건을 분석한 결과, 저위험 물리력 행사가 68.1%(147건)로 가장 많았으며 접촉 통제 22.2%(48건), 중위험 물리력 9.7%(21건) 순이었다.

◆‘경찰 형사책임 감경’ 법 개정 논란

최근 국회는 이 같은 현장 경찰의 소극적 대응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경찰관의 직무수행 중 형사책임 감경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현재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개정안에는 ‘경찰관이 범죄가 이뤄지는 긴박한 상황을 예방하거나 진압하기 위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그 직무 수행이 불가피하고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때에는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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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시민사회에서는 우려가 확산하는 중이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감면 대상 직무 범위와 피해 범위를 너무 포괄적으로 규정해 경찰의 물리력 남용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며 개정안 처리 중단과 사회적 논의 재개를 촉구했다. 이번 법 개정이 교육·훈련 부재로 일어난 인천 흉기난동 부실대응 사건의 엉뚱한 해법이라는 비판도 있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개정안을 의결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테이저건 쏴도 형사처벌 안 받게 하겠습니다. 열심히 뛰어주세요’라고 법을 만드는데, 실제 (인천 흉기난동 사건의) 경찰은 테이저건을 쏠 생각도 없었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꼬집었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미국의 경우 경찰의 과잉 진압이 자주 문제가 되는데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다만 미국도 최종적으로 경찰의 법 집행 적정성을 따지는 건 법원이다. 개정안도 ‘경찰을 무조건 면책한다’는 내용이 아닌 만큼 덮어놓고 걱정부터 할 사안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승환·구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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