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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세계+] 한 사람을 위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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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해진ㅣ소설가

세월호 민간 잠수사를 다룬 김탁환의 장편소설 <거짓말이다>(북스피어)를 최근에야 읽었다. <거짓말이다>는 소설로서의 허구화를 거치긴 했지만 작가가 직접 만나고 취재한 여러 사람의 육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르포의 성격도 갖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세월호 잠수사에 대해 아는 거라곤 부끄럽게도 피상적인 수준이었다. 서른명도 되지 않는 잠수사들이 활약한 덕분에 시신 대부분이 수습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중 누군가는 현장에서 사고로, 또 한명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 그 정도….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거짓말이다>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은 이렇다. 그들은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해타산 없이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것, 문자 한통으로 무례한 철수 명령을 받기 전까지 시신 한구라도 더 수습하기 위해 위험한 잠수를 반복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의 헌신과 노동은 고액 일당 계약이라든지 당시 정부와의 협잡이라는 잔혹한 오해로 희석되었다는 것, 실제 그들은 짧은 기간 잠수를 반복한 탓에 투석이 필요한 신장병이나 골괴사 같은, 다시는 잠수사로 돌아갈 수 없는 후유증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무상 치료는 지속되지 않았고 심지어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진두지휘한 공우영 잠수사는 동료 잠수사의 죽음에 과실치사로 기소되었다는 것(무죄판결은 났지만 애초에 잠수사들에게 구조를 떠맡긴 정부의 무책임을 상기할 때, 기소 자체가 세월호 잠수사들을 좌절하게 했다), 그런 사실들….

<거짓말이다>를 읽는 동안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그들이 온몸을 밀착하여 포옹한 자세로 시신을 인양했다는 묘사를 읽을 때 특히 그랬다. 고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 소설 속 나경수는 말한다. “시야는 10센티미터에서 45센티미터 불과한데, 부유물은 떠다니고, 조류에 선체까지 흔들려서, 확보한 통로마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아이가, 아이들이 부르니까, 마치 그들이 먼저 다가오는 것만 같아서, 앞뒤 안 가리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아이들은 대개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있거나 한데 엉켜 있었다고,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도록 데려오려면 포옹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마워, 와줘서”라는 말을 속삭이면서.

소설을 읽고 나자 지금도 세월호 잠수사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고 그들을 둘러싼 나쁜 소문이 남아 있는 현실이 괴로웠다. 인간적인 진심 하나로 무작정 맹골수도 한가운데로 내려가 자신의 건강이나 미래는 제쳐둔 채 바닷속으로 뛰어든 그들에게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가. 냉정했던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란 결국 선하고 무고한 사람을 제도적으로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아닌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원래 차선이라 여기며 마음으로 표를 줄 후보를 결정했지만 최근에 다시 부동층에 속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척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후보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죄를 변호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실 내게는 ‘환각만을 사랑하는’(김윤식, <김윤식 서문집>, 사회평론) 비현실적인 면이 많다. 그러나 해당 후보가 카메라 앞에서 무심한 말투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얼버무릴 게 아니라, 피해자를 찾아가 진심을 다해 사죄한 뒤 이제라도 피해보상을 해주어야 절반의 참정권을 가진 여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릴 수 있다는 건 안다, 너무도 현실적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지 않도록 보듬는 대통령을 나는 환대로 맞이하고 싶다. 대선을 바투 앞두고 갖는 이 소망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무척이나 슬픈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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