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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車부품사 "반도체난에 원자재값 폭등까지…거의 죽기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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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車부품업계 ◆

매일경제

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용 금형 생산 2차 부품업체 A사에서 직원들이 프레스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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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A사 공장에서는 귀를 파고드는 기계음이 쉼 없이 이어졌다. 자동차용 프레스를 생산하는 A사는 지난 4월 밀려드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만 넘기면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전체 직원 30명가량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2019년 120억원이었던 A사 매출은 올해 80억원 정도로 33% 줄었다. 이날 만난 A사 대표 장 모씨는 "반도체, 원자재, 인건비, 코로나19, 전기차까지 이건 삼중고가 아니라 사중고, 오중고"라며 탄식했다.

이 회사 경영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단 반도체 품귀로 신차 출고가 늦어지면서 일감 자체가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3분기 새로 등록된 차는 40만7000대다. 2분기와 비교하면 7만1000대(14.8%)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못 오면서 내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인건비를 올린 탓이다.

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외국인 근로자는 전년 동기 대비 11.6% 줄었다. 장 대표는 "월 200만원 안팎을 급여로 주면 주변에서 '그런 회사를 왜 다니냐'고 하는데 자동차 업계에서 줄 수 있는 월급은 한정돼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부품업체 입장에서 전기차로 공정을 대폭 전환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다행히 프레스는 별도 공정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 A사의 전기차 전환은 빨랐다. 하지만 공정을 바꾸더라도 수익이 날 만큼 물량을 팔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밖에 없다. 부품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 값 급등도 결정타였다. 부품 주요 원료인 냉연 강판과 구리 값 변동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1t당 715달러였던 냉연 강판 유통가격은 올해 5월 기준 1117달러로 급증했다. 구리 값 역시 같은 기간 6049달러에서 1만226달러로 2배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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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내연기관차의 주 원자재는 철이지만 전기차에는 유독 구리가 많이 사용된다. 전기차 생산에는 내연기관차 대비 4~5배나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 장 대표는 "과거 일반 철을 주로 사용할 때는 부품제작 비용 중 철이 50~60%를 차지했는데, 이젠 구리가 80~90%까지 늘었다"며 "팔아도 남는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부품업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인 오원석 코리아에프티 회장은 "올해 초에는 작년보다 적어도 20~30%는 매출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컸었는데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전년보다도 5%가량 감소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특히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엔진과 배기 등 관련 부품은 줄거나 사라질 상황이어서 당장 부품업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은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높이고 유럽연합(EU)과 중국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발표했다. 오 회장은 "그간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들던 업체들이 앞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걸 제조해야 한다"며 "인력부터 시설 투자 등 모든 것이 필요한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전동화가 빨라지면서 그간 해왔던 부품업체 역할이 사실상 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선두주자인 테슬라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중앙집권식 컴퓨터에 넣어 관리한다. 과거에는 각 부품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측면도 담당했다면 앞으로는 완성차 업체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품업체가 담당했던 소프트웨어 권한을 완성차 업체로 모두 이관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며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생존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국내 완성차 업체 3곳을 포함한 국내 차 부품업계 30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 8~10월 석 달간 면밀히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기업의 절반가량(46.7%)은 전기차 관련 분야 전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그 같은 산업 재편의 파급 영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 대응하고 있다고 답한 업체 중에서도 전기차 분야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업체는 17.7%에 그쳤다.

특히 미래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33% 가까운 기업은 "아예 새로운 설비가 필요하다"는 답을 내놨다. 설비투자 중요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화성 = 이새하 기자 / 서울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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