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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기차 눈에 띄게 많아졌는데"... 차부품사 직원 4만명 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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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車부품업계 ◆

매일경제

경기도 화성에서 국내 완성차 업체의 프레스 금형을 제작하는 2차 부품 업체 A사는 지난 4월부터 법원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1992년부터 30년간 꿋꿋이 버텨오던 이 업체도 밀려드는 악재를 피해가진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품귀난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악재가 이어지면서다. 여기에 전기차 전환 흐름이 빨라진 것도 경영 악화에 결정타가 됐다.

전기차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는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전기모터와 전장부품 등을 제대로 만드는 부품 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올해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는 최악의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5일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10인 이상 고용된 국내 자동차 부품 회사는 지난해 기준 총 8966개로 이들의 고용인원은 23만5000여 명이었다. 올해 이들 업체의 고용인원은 22만5000여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새 1만명이 사라진 셈이다.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는 2010년부터 가파른 호황을 겪었다. 2010~2015년에만 고용인원 10만명, 업체 수 1700개가 추가됐다. 하지만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도입하는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가 크게 늘면서 2016년부터 부품 업계 기세는 확연히 꺾이기 시작했다.

전장부품 대신 내연기관차 엔진 등에만 집중해온 국내 부품 업계는 급격한 산업 격변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2016년 26만5000여 명에 달했던 부품 업계 고용인원은 올해까지 5년 새 4만명, 최근 1년 새 1만명이나 감소했다. 부품 업체 관계자는 "경영 사정이 어려워도 이를 대놓고 말할 수 없다"며 "정부 협조로 금융 지원을 받고 있는데 매출 부진을 말하는 순간 금융권이 대출을 회수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부품 수는 대략 3만개이지만 전기차에 들어가는 건 2만개도 안된다.

부품 축소 자체가 부품 업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 핵심인 전기모터 등 전장부품에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는 만큼 부품 업체가 이를 만들어내려면 이익의 일정액을 연구개발(R&D)로 재투자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미미하다. 지난해 기준 부품 업체 8966개 중 전기모터 등 미래차용 부품 생산이 가능한 기업은 총 210곳 정도로 전체의 2.3%에 그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중견 부품 업체는 2010~2015년에 벌어둔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다른 중소기업은 인력을 줄이면서 버티고 있다"며 "연간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R&D 비용을 투자하는 부품 업체는 국내 300개 미만이고, 이 금액을 3년 연속 투입하는 기업은 100곳도 안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車부품사 "반도체난에 원자재값 폭등까지…거의 죽기직전"

회생절차 신청한 내연車 부품사 가보니

코로나 덮친데 인건비도 올라
전기차 부품으로 전환했더니
구리·냉연강판 자재값 치솟아

업체 절반이 전기차 대응 전무
"재투자 엄두못내 생사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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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용 금형 생산 2차 부품업체 A사에서 직원들이 프레스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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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A사 공장에서는 귀를 파고드는 기계음이 쉼 없이 이어졌다. 자동차용 프레스를 생산하는 A사는 지난 4월 밀려드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만 넘기면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전체 직원 30명가량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2019년 120억원이었던 A사 매출은 올해 80억원 정도로 33% 줄었다. 이날 만난 A사 대표 장 모씨는 "반도체, 원자재, 인건비, 코로나19, 전기차까지 이건 삼중고가 아니라 사중고, 오중고"라며 탄식했다.

이 회사 경영난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단 반도체 품귀로 신차 출고가 늦어지면서 일감 자체가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3분기 새로 등록된 차는 40만7000대다. 2분기와 비교하면 7만1000대(14.8%)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못 오면서 내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인건비를 올린 탓이다.

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외국인 근로자는 전년 동기 대비 11.6% 줄었다. 장 대표는 "월 200만원 안팎을 급여로 주면 주변에서 '그런 회사를 왜 다니냐'고 하는데 자동차 업계에서 줄 수 있는 월급은 한정돼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부품업체 입장에서 전기차로 공정을 대폭 전환하는 일도 쉽지 않다. 다행히 프레스는 별도 공정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 A사의 전기차 전환은 빨랐다. 하지만 공정을 바꾸더라도 수익이 날 만큼 물량을 팔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밖에 없다. 부품 생산에 들어가는 재료 값 급등도 결정타였다. 부품 주요 원료인 냉연 강판과 구리 값 변동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1t당 715달러였던 냉연 강판 유통가격은 올해 5월 기준 1117달러로 급증했다. 구리 값 역시 같은 기간 6049달러에서 1만226달러로 2배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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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내연기관차의 주 원자재는 철이지만 전기차에는 유독 구리가 많이 사용된다. 전기차 생산에는 내연기관차 대비 4~5배나 많은 구리가 필요하다. 장 대표는 "과거 일반 철을 주로 사용할 때는 부품제작 비용 중 철이 50~60%를 차지했는데, 이젠 구리가 80~90%까지 늘었다"며 "팔아도 남는 게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부품업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인 오원석 코리아에프티 회장은 "올해 초에는 작년보다 적어도 20~30%는 매출이 오를 것이란 기대가 컸었는데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전년보다도 5%가량 감소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특히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엔진과 배기 등 관련 부품은 줄거나 사라질 상황이어서 당장 부품업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국은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높이고 유럽연합(EU)과 중국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발표했다. 오 회장은 "그간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들던 업체들이 앞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걸 제조해야 한다"며 "인력부터 시설 투자 등 모든 것이 필요한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전동화가 빨라지면서 그간 해왔던 부품업체 역할이 사실상 사라질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선두주자인 테슬라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중앙집권식 컴퓨터에 넣어 관리한다. 과거에는 각 부품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측면도 담당했다면 앞으로는 완성차 업체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품업체가 담당했던 소프트웨어 권한을 완성차 업체로 모두 이관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며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생존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국내 완성차 업체 3곳을 포함한 국내 차 부품업계 30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 8~10월 석 달간 면밀히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기업의 절반가량(46.7%)은 전기차 관련 분야 전환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그 같은 산업 재편의 파급 영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 대응하고 있다고 답한 업체 중에서도 전기차 분야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업체는 17.7%에 그쳤다.

특히 미래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33% 가까운 기업은 "아예 새로운 설비가 필요하다"는 답을 내놨다. 설비투자 중요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화성 = 이새하 기자 / 서울 =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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