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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어떤 기묘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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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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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나의 어머니는 리모컨인가 보다/ 내가 입만 뻥끗하거나 손가락만 까딱해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가도 쏜살같이 달려와/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해 준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정훈소 시인이 쓴 ‘어머니2’라는 시다. 그를 대신해 시를 낭송하다 나는 울컥했다. 이어서 회사를 은퇴하고 제주 한달살이 하러 온 명재님이 ‘달밤 백약이오름’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누군가 잔잔한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게스트하우스는 시와 음악이 흐르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허물어진 근사한 살롱으로 변신했다.

이곳은 제주 삼달리의 어떤 ‘다방’이다. 여느 다방과는 달라서 돈 받고 차를 팔지는 않는다. 대신 장애인과 비장애인, 탈성매매 여성, 아픈 사람, 건강한 사람들이, 구분 없이 어울려 지낸다. 소외된 이들의 비빌 언덕이며, 이들을 돕는 이들을 돕는 공간이다. 지친 사람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묵으며 쉬는 곳이기도 하다.

이 다방의 공간에는 장애인들이 이동할 때 장애가 되는 턱이 없다. 휠체어 목욕까지 고려한 넓은 화장실만 5개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의 논리로 보면 정말 ‘턱없는’ 공간이다. “중증장애인들이 제주에 오는 것은 일생에서 특별한 일이에요.” 이곳을 운영하는 오케이와 무심 부부의 말이다. 부부는 오랫동안 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워왔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지하철, 버스를 타는 지극히 ‘사소하지만 위대한’ 싸움을 거쳐, 이윽고 비행기를 타고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의 ‘특별한 시간’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게스트들은 절로 숙연해진다.

다방에서 만난 종욱씨는 스물한살, 만취 상태로 폭주 운전을 한 친구의 옆자리에 탔다가 사고로 중증장애를 입었다. 말투는 어눌했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제가 쓰레기처럼 살았어요. 사고 후 일년 반 정도 병원에 있으면서 비로소 사람이 됐죠. 지금이 더 행복해요.” 그의 환한 표정을 보니 과장이 아니란 걸 알겠다. 종욱씨와 함께 온 스물두살 발달장애 준호씨는 일년 전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제주 여행이 처음이라 긴장했는지 비행기 멀미로 머무는 내내 고생했다. 주인장은 음식 소화를 못하는 준호씨를 위해서 콩나물죽을,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종욱씨를 위해서는 바비큐를 정성스럽게 구워 냈다.

발달장애인 은혜씨는 그림, 춤, 노래 등 못하는 게 없다. ‘갬성 터지는’ 매력적 인물이다. 그녀의 에두르지 않고 내리꽂는 듯한 표현에 모두 깔깔대며 웃었다. 음악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리듬을 탈 때면 모두들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일찍 핀 동백꽃 한 송이를 꺾어 머리에 꽂고 춤을 추자 다른 게스트들도 일어나 몸과 마음으로 교감했다. 각자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서로의 세계를 품는 눈부신 순간이었다.

이 공간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오랫동안 ‘리모컨’으로 살아온 발달장애인의 엄마들이다. 서로의 고통을 마음껏 토로한다. “우리 아이들이 울고 떼쓰고 방방 뛰어도 이곳에선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아요.” 한 엄마가 말하자 다른 엄마가 잇는다. “어느 장애인 작가가 우리는 모두 부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라고 했는데,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몰라요.” 함께 웃다가 울었다.

나 같은 비장애인 게스트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저절로 일손을 거들게 된다. 무도 뽑고, 귤도 따고, 김치도 담그고, 청소도 했다. 매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다 보니 ‘식구’가 됐다. 익숙하지만 좁은 마을 공동체를 떠나 낯선 곳, 새롭고 기묘한 공동체에서 3주를 보냈다. 알지 못하던 세계, 다른 감각을 만났다. 그만큼 나의 내면도 한뼘쯤 자라고, 오감도 깊어졌기를.

절절하고 아름다운 시를 쓴 정훈소 작가는 여러 편의 시집을 냈지만 결국 절필을 선언했다. 시로는 도무지 바꿀 수 없는 세상에 절망한 탓이다. 장애인이 이동하려면 먼저 세상이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세상은 움직이지 않거나, 너무 더디게 이동한다. “장애인 문제를 ‘소수자’ 문제라고 좁히지 말아야 해요. 장애인이 자유롭게 다니는 세상이야말로 노인들, 유모차 끄는 엄마들, 아픈 사람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어요.” 주인장 무심의 말이다. 우리도 언제든 병든다. 언젠가 늙는다. 장애는 내 속에서 자라고 내 곁에서 다닌다. 더 많은 곳에 삼달의 다방 같은 곳이 생기길 소망한다. 그래서 세상이 조금씩 이동하면 좋겠다. 시인이 다시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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