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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진주만 공습 직전... 히로히토 일왕, '전쟁 개시' 각오 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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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아사히신문, 당시 시종장 일기 공개
한국일보

1945년 9월 27일 히로히토(오른쪽) 일왕이 일본 도쿄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총사령부 총사령관과 나란히 서 있다. 같은 해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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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전인 1941년 10~11월 히로히토(1901∼1989) 당시 일왕이 측근들에게 전쟁 개시를 각오하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적힌 기록물이 공개됐다.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 문제나 당시 일본 지도자들의 의사 결정 과정을 새롭게 파악할 사료가 될지 주목된다.

5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당시 시종장을 지낸 햐쿠타케 사부로(1872∼1963)의 일기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시종장은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 고위직이다. 이번 기록물은 햐쿠타케의 유족이 도쿄대 대학원 법학정치연구과의 근대일본법정사료센터에 일기, 수첩, 메모 등을 기탁한 것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1941년 10월 13일 일기에는 “바짝 다가온 시기에 대해 이미 각오하신 것 같은 모습”이라는 얘기를 히로히토를 면담한 마쓰다이라 쓰네오 궁내대신으로부터 들었다고 적혀 있다. 기도 고이치 내(內)대신이 히로히토의 마음이 앞서가는 것을 우려하며 “가끔 선행(先行)하는 것을 만류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내용도 일기에 기록됐다.

이에 대해 아사히는 “만일 개전이 되는 경우 선전(宣戰·적국에 대한 전쟁 개시 의사를 선언하는 것)의 조칙(詔勅·왕이 발표하는 공식 문서)을 발표하게 될 것”이라는 히로히토의 발언이 같은 날 기도 내대신이 쓴 일기에 기재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히로히토가 “개전을 결의하는 경우, 전쟁 종결 수단을 처음부터 연구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도 얘기했다고 적었다.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인 야마다 아키라 메이지대 교수는 이 무렵 히로히토의 발언을 두고 “전쟁이라는 선택지가 천황의 안에서는 점차 유력한 것이 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햐쿠타케는 같은 해 11월 20일 일기에선 “폐하의 결의가 지나친 것처럼 보인다” “외상(외무장관)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평화의 길을 다해야 한다는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도록 부탁했다” 등과 같은 기도의 발언을 적었다. 당시 외무장관은 도고 시게노리(1882∼1950)였는데, 그는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회부돼 금고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병사했다.

자다니 세이이치 시가쿠칸대 교수는 “히로히토가 개전을 향해 경도되고 있는 것에 대한 측근의 우려가 드러난 상세 기록은 ‘쇼와텐노(히로히토를 의미) 실록’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사료에는 없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에 공개된 기록에 대해 “일본 지도자가 전쟁에 이르게 된 경위를 측근이 관찰해 기록한 중요한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패전 후 일본 전쟁 책임자들은 연합국 측이 주도한 도쿄재판으로 처벌받았다. 히로히토의 경우, “개전에 신중했고 평화를 원했으나, 정부나 군부의 진언으로 인해 마지못해 (전쟁 개시에) 동의하게 됐다”고 밝혀 기소되지 않았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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