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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와 그가 콕찍은 청년 3명...파리에서 특별한 피아노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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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파리에서 김홍기·김도현·박진형 등과 협연

피아노 4대로 모차르트·베를리오즈·라벨 연주

조선일보

피아니스트 백건우(맨 왼쪽)가 지난 3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박진형(25), 김홍기(30), 김도현(27) 등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인터뷰하고 있다. 이들은 6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백건우와 친구들'이라는 제목 아래 피아노 공연을 한다./연합뉴스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노 연주자 4명이 프랑스 파리에서 특별한 공연을 연다.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75)와 최근 유럽과 미국 무대에서 주목받는 김홍기(30), 김도현(27), 박진형(25) 등이 피아노 4대로 하는 협연이다. 50여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다른 세대의 피아니스트 4명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연주 프로그램도 특별하다. 6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라벨의 ‘라발스’ 등 4곡을 선보인다.

백건우는 함께 연주할 세 명의 피아니스트를 직접 지명했다. 이들의 연주를 음반과 인터넷 동영상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접했다고 한다. 그는 “듣기는 좋지만 치기는 어려운, 절대로 쉬운 프로그램이 아니라 짜놓고 나서는 ‘너무 욕심을 부렸나’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하지만 어려운 것을 알아도 계속 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음악을 가슴에 안고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했다.

따로 제자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백건우는 이날 처음으로 “전에는 그럴 겨를도 없었고, 생각도 못 했는데, 지금은 (제자를 키우는 것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엔 ‘백건우와 친구들(Kun-Woo Paik et ses amis)’이라는 수수한 이름이 붙었다. 지난 3일 파리 개선문 인근의 나폴레옹 호텔에서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백건우가 직접 지목한 3명…”유망 연주자 다 꿰고 있어”

이번 공연은 1년 전 백건우씨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공연을 기획한 이미나 에코드라코레 대표는 “백건우씨가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항상 보고 있고, 우수한 연주자들을 모두 꿰고 있더라”면서 “이들 3명을 직접 언급하며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신종 코로나로 인해 공연 준비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했다. 모바일 메신저에 단체방을 만들어 의견 교환을 했다.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일이 처음이다. 백건우씨는 “이제야 (서로 손발을 맞추는) 작업을 좀 해봐야 한다”고 했다. 공연장 무대를 빼면 4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갖다 놓을 연습 공간도 흔치 않다. 그는 “먼저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어제는 악보만 놓고 각자 곡에 대한 자기 의견을 얘기해 정리했고, 이제 오늘 소리를 좀 맞춰볼 예정”이라고 했다.

곡 선택은 쉽지 않았다. 백건우씨는 “4 피아노를 위해 쓴 곡이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고 했다. 우선 모차르트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가져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가 칠 수 있게 편곡했다. 이번 공연의 첫 곡이다. 그는 “환상 교향곡도 피아노 4대로 전곡을 하는 것을 무리가 있는 곡이라 딱 한 악장만 하기로 했다”고 했다. 2부의 시작은 라흐마니노프다. 그는 “이곡은 전적으로 세 사람에게 맡겨서, 총 3악장을 두 사람씩 맡아서 돌아가는 것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곡은 프랑스 관객을 고려해 라발스를 택했다. 백건우는 “일본 작곡가가 피아노 2대로 4사람이 연주할 수 있게 편곡을 해놓은 것이 있는데, 이를 피아노 4 대로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바꿨다”고 했다.

같이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들은 이번 무대가 세계적 피아니스트와 함께하는 공연이자, 오랜만의 유럽 공연이라는 사실에 기대를 드러냈다. 김홍기는 “코로나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연주자와 관객이 나이와 경력, 국적을 불문하고 다시 만나는 뜻깊은 자리”라고 했다. 김도현도 “갑자기 코로나 상황이 다시 나빠지는 와중에 이 자리에 다 같이 모인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면서 “관객과 함께 다 같이 즐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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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열리는 '백건우와 친구들'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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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육성 생각 열려 있어, 기회되면 자연적으로 될 것”

이번 공연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백건우의 생각이 드러나는 공연이기도 하다. 그는 15세부터 시작한 뉴욕 유학 시절 자신을 위해 아낌없는 친절을 베풀어준 선배 피아니스트들을 종종 생각한다고 했다. 박진형씨는 “백건우 선생님이 한국에 와서 나를 일부러 찾아서 ‘밥을 같이 먹자’고 하더라”면서 “만나자마자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묻고, 음악에 대한 서로 생각을 굉장히 많이 나눴다”고 했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마치 친구들하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고 했다.

굳이 젊은 피아니스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백건우는 “다들 자기의 세계를 표현하는 자기의 언어가 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점에서 서로 말이 통한다”면서 “이들의 연주를 듣고 나도 (이들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이란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건우는 이날 제자를 키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처음 밝혔다. 그는 “전에는 그럴 겨를도 없었고,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은 (내 마음이) 오픈 하우스다”라며 “그게 누구든지, 기회가 되면 자연적으로 되겠지요”라고 했다. 백건우에게 사사를 요청하는 피아니스트는 이미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아 대표는 “연주를 앞둔 젊은 피아니스트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로부터도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많다”고 했다. 어떤 중국 피아니스트는 악보 일부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이걸 어떻게 연주하면 좋을까요’라고 직접 메시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자기 연주에 만족 힘들어…음악에 겸허함 잃지 말아야”

백건우는 11세부터 연주를 했다. 올해로 65년째다. 그는 “(1972년) 뉴욕에서 라벨 전곡을 연주한 것이 (내 경력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6세, 그가 하고 싶은 것을 처음으로 발표했던 무대였다.

백건우씨는 “음악은 힘으로 하는 것은 아니니까, 90세까지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지만 지금 내 과거 연주를 다시 돌아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밖에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면서 “하지만 또 돌이켜 보면 그때만 할 수 있는 음악이 따로 있다”고 했다. “우리 연주에 스스로 만족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연주를 하면 할 때마다 다르고,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지 계속 고민합니다. 음악을 가슴에 안고 태어난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랑을 버리지 못해서 계속해서 하고, 어려워도 계속 도전하죠.”

백건우는 음악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100여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게 곡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측면에서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그 곡 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할 때 악보를 들어 보이며 자신이 아닌 악보에 박수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일화를 소개하며 요즘 음악계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이게 옳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더 중요한 거죠. 요즘은 세계적으로 음악계가 가벼워져서 탈이에요. 대중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음악, 컬러풀한 무대, 시선을 빼앗는 옷을 내세웁니다. 연주하는 사람 본인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젊은 음악가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무책임한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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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가 6일(현지시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백건우와 친구들'(KUN-WOO PAIK ET SES AMIS)이라는 주제로 젊은 피아니스트와 특별한 공연을 한다. 사진은 피아니스트 백건우(뒷줄)와 함께 공연하는 젊은 피아니스트들. 앞줄 왼쪽부터 김도현(27), 김홍기(30), 박진형(25). /연합뉴스


◇”음악은 음과 음 사이를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

백건우는 자신의 연주 스타일에 대해 “항상 자연스러운 것, 어떻게 해서든 이를 힘 안 들이고 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연주하려는 곡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했다. “이해를 하기가, 깨닫기가 힘듭니다. 그러러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음악은 두 음을 연결시키는 것, 음과 음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하는가가 과제죠. (곡에 녹아 있는) 그 로직(논리)이 안 서면 어렵습니다.”

백건우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이 결국 끝에 가서는 ‘인간’의 문제로 모인다”고 했다, “내가 인간이고, 듣는 사람이 인간이므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음악적 언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르는 음악을 처음 들어도 감동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것은 기교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는 “훌륭한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아무리 언어가 다르고 해도 그게 다 전달이 된다”면서 “얼마나 인간에 대해 깊이 깨달았느냐에 따라 음악도 깊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콩쿠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젊은 음악인들의 환경에 대해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라면서도 “콩쿨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이 성장하는 하나의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 자기 음악 세계를 찾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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