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폐교 위기 시골 학교에 ‘유학’ 온 서울 아이들…아이도 어른도 모두 반했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지난 10월 도전활동으로 지리산 성삼재에 오른 중동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 중동초등학교 제공


전남 구례에 자리한 중동초등학교는 1936년 간이학교로 문을 열었다. ‘산수유꽃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소문나 지리산 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던 때는 전체 학생수가 800명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올 1학기 이 학교의 전교생 수는 20명에 그쳤다. 입학생은 매년 줄고줄어 올해 1학년 입학생은 1명, 오는 2025년 입학예정자는 ‘0’명이다.

이대로라면 언제 폐교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지난 여름부터 교실과 복도, 운동장은 다시 시끌벅쩍한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차오르고 있다. 산골 중동초등학교로 ‘유학’ 온 10명의 도시 아이들 덕분이었다.

지난 여름 엄마와 함께 구례로 내려운 김온유양(5학년)은 당초 한 학기만 머물다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한 학기를 더 구례에서 보내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3일 중동초등학교에서 만난 김양은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지만 여기와서 친구들과 더 많은 체험을 할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여기서는 지리산을 등반하는 활동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학년별로 1~2학년은 둘레길 걷기, 3~4학년은 섬진강 강변길 인라인·자전거 도전, 5~6학년은 지리산을 등반하는 특별 활동을 한다. 5학년인 김양은 지난 가을 노고단 정상에 올랐고, 이제 천왕봉만을 남겨두고 있다. 전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3시간씩 악기수업을 받는 오케스트라 수업이나 승마교육 같은 경험도 서울에선 찾아보기 쉽지 않는 특별한 수업들이다.

경향신문

지난 10월 구례 중동초등학교 3·4학년 학생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섬진강변을 지나고 있다. 중동초등학교 제공


한적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다보니 자연히 가족관계도 좋아졌다. 김양은 “서울에서는 엄마가 직장을 다녀서 집에서도 이야기 할 시간이 부족했고, 코로나 때문에 산책을 다니기도 어려웠다”면서 “여기에서는 밖에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엄마가 회사를 다니지않고 함께 있으면서 같이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사방이 자연인 이곳에서 아이들은 옛날 어른들이 놀던 방식으로 놀이를 한다. 이 학교 2학년 김다혜 선생님은 “도시는 코로나 때문에 야외활동이 불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던져놓고 놀수 있는 환경”이라면서 “얼마전에는 한 학생이 ‘선생님 제가 개구리를 잡아서 상자에 넣어뒀는데 개구리가 탈출했어요’라고 말해 모두 크게 웃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는 손이 덜가게 되고 이런 기기들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대한 갈증도 줄었다고 한다. 김 선생님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뭐하고 놀지? 처음에는 고민하지만 여기는 할게 많다”면서 “대신 할 활동이 늘어나니 불평도 잦아들었다”고 말했다.

‘깍쟁이’ 서울 아이들이 어수룩한 시골 아이들을 골려먹을까 걱정했던 일도 기우였다고 했다. 막상 시골 아이들의 주 활동반경이 구례다 보니 초보인 도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시골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처음에 어색해서 선생님께 놀아달라 조르던 서울 아이들이 어느새 시골 친구들과 뭉쳐 노느라 정신이 없는 지경이란다.

김양처럼 지난 여름 중동초등학교를 찾은 서울 유학생은 모두 10명. 부모님 모두, 혹은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여섯 가족이 구례로 내려와 함께 지내고 있다.

도시에 사는 학생들에게 도심을 벗어나 자연속에 파묻혀 지낼 시간을 주고, 소멸위기 지방에는 새로운 인구 유입으로 생기를 불어넣는 ‘농·산·어·촌 유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2월 현재 전남 지역 17개 시·군, 37개 초·중등학교에서 모두 165명의 학생이 유학을 와 있다.

농·산·어·촌 유학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 사이 학생이 대상으로 가족과 함께 마을로 이사와 함께 지내는 ‘가족체류형’과 농가에 하숙하는 ‘홈스테이형’, 보호자 역할을 하는 활동가와 함께 생활하는 ‘지역센터형’이 있다. 각 체류 유형별로 지원금도 나온다.

이들 중에서 부모님과 함께 이주해와서 생활하는 ‘가족체류형’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데, 전남에서는 이들 가족들을 위해 9개 시·군 10개 마을을 유학마을로 지정, 운영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반응은 대만족이다. 전남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가 지난 7월 실시한 성과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정서적 안정과 올바른 인성 함양’에 도움이 되는지 묻는 항목에서 유학생들은 4.69점(5점 만점)을 줬다. ‘개별맞춤형 교육을 통한 학업능력 향상’(4.44점)가 ‘창의적 사고 역량’(4.31), ‘공동체적 역량 강화’ 등 대부분의 항목이 4점을 넘었다. 새로 유학생 친구들을 맞은 전남도 학생들의 경우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확장’(4.31점), ‘활발한 교류를 통한 의사소통 역량 제고’(4.59점) 등에서 높은 평가가 나왔다.

지난 여름부터 아이와 함께 구례에 내려와 지내고 있는 이지은씨(영어교육 프리랜서)는 “서울에는 아이들의 일과가 거의 비슷한테 여기는 집집마다 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보니 아이들끼리 서로 보고 배우고, 특히 선생님과의 관계가 친밀하다”면서 “코로나19로 너무 많은 제약이 있던 서울과 달리 이곳에서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줄 수 있어 아이들도 저도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 [뉴스레터] 식생활 정보, 끼니로그에서 받아보세요!
▶ [뉴스레터]교양 레터 ‘인스피아’로 영감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