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너희가 희망이구나…가슴 뭉클해지는 아프간 아이들의 ‘열공’ 사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아이들은 영어 공부

남은 아이들은 허름한 마을 교실서 수업

지난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함락되고, 20년간 힘겹게 버텨오던 친서방 민주정부가 무너졌다. 공포에 질린 아프간인들이 몰려든 카불 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까스로 빠져나간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하고 탈레반 치하에 남게 된 일들도 있다. 부모손에 이끌린 아이들의 운명이 엇갈리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혼돈의 상황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한 줄기 희망을 엿보이는 사진들이 최근들어 잇따라 공개됐다. 바로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이다.

조선일보

지난 9월 미 인디애나주 애터버리 미군기지에서 적응교육을 받고 있는 아프간인의 자녀들이 아프간 출신 미국 초등교사로부터 알파벳 철자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캠프 애터버리 기지 페이스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평범한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처럼 보이는 이곳은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미군기지인 캠프 애터버리다. 이 기지가 지난 9월 공개한 영어 수업 장면이다. 미취학 또는 초등 저학년 나이정도로 돼보이는 어린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화이트보드에는 SCHOOL이라는 철자가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영어 시간이다. 이 아이들은 미군 군무원 등의 이유로 미국 입국 자격을 획득한 부모와 극적으로 아프간을 탈출해 미국으로 왔다. 새로 정착할 나라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영어 철자부터 배우는 중이다. 이렇게 영어 수업을 듣게 된 어린이들은 여자 아이 39명과 남자아이 38명.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교사 사라 잘랄 역시 이들과 같은 아프간 출신이다. 다섯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는 현재는 인디애나주 엘레츠빌의 엣지우드 초등학교에서 4학년을 가르치는 교사다.

조선일보

미국 인디애나주 애터버리 미군 기지에서 재정착 교육을 받고 있는 한 아프간 어린이가 수업시간에 색칠을 하고 있다. /애터버리 기지 페이스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족들과 있을 때는 아프가니스탄 공용어 중의 하나인 다리어로 소통을 했고, 그 덕에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영어의 철자에 대해서 가르쳐줄 수 있었다. 이 수업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관련해서 펼치는 최후의 작전이라고 할 수 있는 ‘동맹 환영 작전(Operation Welcome Allies)’의 일환이다. 20년간 치러온 아프간전을 끝내고 사실상 패퇴하면서 데려온 협력 현지인들과 가족을 재정착시키는 ‘작전’이다. 미 국토안보부는 최근 미국 재정착 대상 아프간인 7만 여명 중 2만5000여명이 재정착 교육을 끝내고 새 삶을 찾아 미국 각지로 이주했다고 발표했다. 나라가 없어졌다는 비애감과 불안과 두려움, 안도감 등이 혼재한 상황에서 낯선 땅에 도착한 이들은 전국의 미군 부대에 분산 수용됐다. 지금도 나머지 4만5000명이 애터버리 기지를 비롯해, 뉴저지주 맥과이어 딕스 레이크허스트 합동기지, 뉴멕시코주 홀로먼 공군기지, 텍사스주 포트 블리스 기지, 버지니아주 포트 피켓 기지,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 기지, 위스콘신주 포트 맥코이 기지 등에서 재정착 교육을 받고 있다. 작전명이 ‘환영’이라고는 해도 고달픈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선일보

미 인디애나주 캠프 애터버리 기지에 도착한 아프간인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캠프 애터버리 페이스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 입국하기 전에 이들은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 소속 테러전문가들까지 총망라된 입국심사요원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다. 신종 코로나와 홍역, 소아마비 등을 포함해 예닐곱가지의 백신도 맞아야 했다. 아이들의 수업 장면은 적어도 아이들이 부르카를 두르고 집안에 갇혀있다시피 지내지는 않게 될 것임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이들은 새로 정착한 땅의 낯선 환경과 혹여나 있을지도 모를 배타적 혹은 동정어린 시선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조선일보

아프가니스탄 여학생들이 천막에서 두눈을빼고 전신을 가린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유니세프 아프가니스탄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 떠나지 못하고 남은 아이들이 모여앉은 교실에서도 모여앉아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조심스럽게 키워간다. 유니세프 아프간 지부가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이다. 허름한 천막에서 10여명의 여자 어린이들이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다. 교사는 거의 부르카 수준으로 두 눈만을 빼놓고 전신을 가린 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유니세프는 이 사진을 소개하면서 지난 석 달간 자신들이 지원한 5350곳의 마을 단위 교실의 하나로 소개했다. 이 교실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어린이들은 14만2700명에 달한다고 했다. 이 사진은 희망과 절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비탄의 땅에서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교육이 어렵게나마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와 동시에 여자어린이들이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돼있다는 암울한 현실 말이다. 유니세프는 400만명의 어린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그 절반 이상이 여자 아이들이라고했다. 그래도 아래 사진에서 보듯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 회관 등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아이들이 한데 모여앉아 수업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조선일보

아프간 자불주의 한 마을 교실. 남녀어린이들이 교실에 모여앉아서 수업을 듣고 있다. /유니세프 아프가니스탄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미래는 어찌될까. 탈레반은 지난 3일 여성의 권리에 관한 특별 포고령을 발표했다. 6개 항으로 이뤄진 특별 포고령은 여성은 소유물이 아니고 고귀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며 누구도 결혼을 강요하거나 타인에게 넘길 수 없다고 명시한다. 또, 남편이 숨졌을 때 재혼을 강요할 수 없고, 숨진 남편 등의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내용 등도 있다. 이런 내용이 포고령으로 발표됐다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여성에 대한 탄압이 만연했음을 방증해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아프간에서는 경제난 등과 맞물려 조혼과 매매혼이 만연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갖고 있는 여성의 교육과 직업권 보장에 대한 내용은 아예 있지도 않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의 직접적 제재로 자금줄이 막힌 탈레반이 최근 잇따라 내놓는 유화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탈레반을 정당한 집권세력으로 용인하는데 머뭇거리는 양상이다.

조선일보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삶은 힘겹게 이뤄진다. 한 아프간 여성이 국제구호단체의 도움으로 두번째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유니세프 아프가니스탄 인스타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4일 유엔 자격심사위원회가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 대표자로 인정할지에 대한 결정 여부를 유보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자격심사위원회는 올해 2월 민간정부를 무너뜨린 미얀마 군부와 8월 20년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한 탈레반을 정당한 합법성을 지닌 집권세력이자 유엔대표로 인정할지를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여성 인권 문제를 개선시키겠다는 탈레반의 주장이 전혀 현실화되고 있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지섭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