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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내가 잠못 이루는 이유...유럽 흔드는 'K황소' 'K장벽' 'K드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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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일 밤 시간 대 유럽 빅리그 경기 몰려 있어
손흥민·황희찬 EPL 활약...팀내 득점 1위 꿰차
'괴물' 김민재 터키인 사로잡아...빅리그 옮기나
이강인·황의조 보러 라리가·리그앙 찾아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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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21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와 브렌트포드의 경기에서 토트넘의 손흥민(아래)이 골을 성공시킨 뒤 팀 동료인 세르히오 레길론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손흥민은 레길론의 패스를 이어받아 골문을 흔들었다. 이날 토트넘은 2대 0으로 승리해 리그 6위로 올라섰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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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월요일도 잠은 다잤어."

회사원 이모(43)씨는 '축구광'이다. 그는 5일과 6일 이틀 동안 아예 잠을 잘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기가 밤과 새벽 사이 죄다 몰려 있기 때문이다.

경기 일정을 살펴보자. ①5일 오전 12시(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울버햄튼의 '황소' 황희찬(25)이 출격하는 데 이어 ②오전 2시 30분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20·마요르카)이 그라운드를 누빈 뒤 ③이날 밤 11시엔 EPL의 '월드 클래스' 손흥민(29·토트넘)도 나선다.

6일 새벽에도 두 경기가 잇따라 치러진다. ④이날 오전 1시부터 터키 프로축구 페네르바체의 '괴물' 김민재(25)가 출전 대기 중이고, ⑤오전 4시 45분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에서 활약하는 황의조(29·보르도)도 기다리고 있다.

아, 어찌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요즘처럼 우리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라리가(스페인)·분데스리가(독일)·리그앙(프랑스) 등 유럽 빅리그에서 맹활약한 적이 있었던가. 선발 출장을 하든 안 하든 한국 선수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삶의 낙이 된 사람들이 있다. 혹시 당신도 그런가.

'적응왕' 황희찬이 사는 법...'한국문화 전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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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울버햄튼의 골키퍼 조세 사(오른쪽)가 혀를 내밀고 달고나 뽑기를 하고 있다. 옆에 황희찬도 게임에 정신이 없다. 이들은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했다. 울버햄튼 공식 유튜브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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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가짜야. 난 한국 '달고나' 원해. 진짜 달고나 가져와."

울버햄튼의 수비수 로맹 사이스는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본 게 틀림없다. 그는 10월 울버햄튼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울브즈 게임(WOLVES GAME)'이라는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울버햄튼의 막시밀리언 킬먼, 사이스, 존 러디, 황희찬, 조세 사 등 선수들은 나란히 앉았다. 이들은 달고나에 찍힌 울버햄튼 로고를 뽑기 위해 바늘을 들고 안간힘을 썼다. 황희찬도 달고나에 고개를 파묻고 도전했지만 로고가 부러지면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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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울버햄튼 선수들이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패러디를 하고 있다. 이들은 달고나 뽑기 게임을 했다. 왼쪽부터 막시밀리언 킬먼, 로맹 사이스, 존 러디, 황희찬, 조세 사. 울버햄튼 공식 유튜브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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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의 조세 사는 역시 '오징어 게임'의 애청자였다. 달고나를 받자마자 한 행동은 바로 혀 내밀기. 드라마 속 기훈(이정재)처럼 혀로 달고나를 녹여 뽑기 게임을 하려던 것이다.

9월 황희찬의 임대 이적 후 울버햄튼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울버햄튼은 이번 시즌 '기름친 근육' 아마다 트라오레의 저돌적인 기습 공격이 먹히지 않으면서 골 가뭄에 허덕였다. 이적료가 무려 5,000만 파운드(약 780억 원)에 달하는 그였지만, 끝 마무리 즉 골이 터지지 않아 답답한 경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황희찬은 달랐다. EPL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리는 등 현재까지 팀 내 득점(4골) 1위를 달리며 매 경기 선발 출장하고 있다. 그가 울버햄튼 10월의 선수로 선정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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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울버햄튼 소속 황희찬(왼쪽)이 동료 선수들에게 '나는 바보입니다'라는 한국어를 알려주며 웃고 있다. 울버햄튼 공식 유튜브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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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팀 내 입지를 보여주듯 울버햄튼은 황희찬에 관심이 많다. 지난달에는 아예 '한국어 배우기' 영상도 올렸다. 한국어 선생님은 다름 아닌 황희찬. 그는 사이스, 러디, 킬먼, 사에게 한국어를 알려줬다. 이들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밥 먹었어?' '희찬한테 공 줘' '나는 바보입니다' 등 다양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특히 '밥 먹었어?'를 똑같이 발음해 칭찬받은 사는 "난 한국사람이었어"라며 농담도 했다. 이들 영상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자막이 떴다. 한국팬들을 배려한 서비스다.

3년여 동안 지켜봤다며 황희찬을 영입한 브루노 라즈 감독은 그를 꾸준히 선발로 출전시키고 있다. 바로 직전 라이프치히에선 출전 기회조차 없었던 황희찬. 그러나 그의 등장으로 트라오레는 주전에서 밀려 이적료가 반토막난 상황. 그러다 보니 울버햄튼 팬들도 황희찬의 골을 기다리며 응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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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새벽 영국 울버햄튼 몰리눅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2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울버햄튼과 번리 경기에서 황희찬이 골을 다루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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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공을 잡을 때면 '황희찬 응원가'도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울버햄튼 팬들은 "히 이즈 코리언~ 히 이즈 황희찬~"을 부르며 그를 응원한다. 선수 교체로 그라운드를 나설 때도 팬들은 응원가로 격려해준다. 그는 2일 새벽 번리 경기까지 5경기 연속 골이 침묵하고 있다. 울버햄튼과 국내 팬들은 5일 새벽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그의 5호골을 기원하고 있다.

유럽은 지금 'K장벽' 김민재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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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 더선이 1일 공개한 '토트넘의 베스트 11' 그래픽에 손흥민과 김민재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토트넘이 터키 페네르바체에서 뛰고 있는 김민재를 영입하려 한다고 보도했다. 더선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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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당장 토트넘 베스트 11에 들어갈 선수"

영국 일간 더 선은 1일(현지시간) 흥미로운 내용을 보도했다. 손흥민과 김민재를 포함한 베스트 11을 발표한 것. 현재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토트넘에 김민재가 영입 대상에 올랐다는 보도였다. '3-4-3' '4-3-3' 포메이션 가동 시 두 사람이 들어간 그래픽도 넣었다.

이탈리아 출신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이 원하는 5명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더 선은 "25살의 괴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민재는 후방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터키 포토스포르는 한술 더 떴다. 콘테 감독과 김민재가 비대면 면담을 가졌으며, 그 사이에서 손흥민이 통역을 맡았다는 보도였다. 빅클럽들의 내년 1월 겨울 이적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이른바 '카더라'성 보도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나오고 있지만, 꿈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팬들이 많다.

김민재의 진가는 최근 '이스탄불 더비'에서 확인이 가능했다. 지난달 22일(한국시간) 새벽 터키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로 꼽히는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의 경기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이 경기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도 아닌 김민재였으니 그의 이름이 이적시장에서 오르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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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네르바체의 김민재(오른쪽)가 9월 터키 이스탄불의 수크루 사라코글루 경기장에서 열린 2021-22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D조 조별리그 2차전 올림피아코스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해 뛰고 있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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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이날 그야말로 '원맨쇼'를 펼쳤다. 골로 연결될 크로스를 차단했고 강력한 슈팅을 온몸으로 막았다. 악명 높은 갈라타사라이 홈팬들의 '물통' 세례도 받았다. 그럼에도 꿈쩍않는 김민재의 모습은 상대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골을 넣은 선수보다 김민재가 페네르바체 선정 '최우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이날 갈라타사라이가 펼친 초대형 '오징어 게임' 캐릭터 응원전은 오히려 독이 됐다. 한국 드라마를 활용한 응원은 한국인 김민재를 위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결국 페네르바체 팬들은 이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팬들은 페네르바체 공식 트위터를 통해 "갈라타사라이가 경기 전 '오징어 게임' 응원전을 했는데, 그들은 김민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나 보다" "한국인과 오징어 게임을 한 결과" "역시 한국인이 있으니 오징어 게임을 잘하네" 등 반응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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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네르바체(오른쪽)와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이 지난달 21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경기에 앞서 입장하고 있다. 이날 갈라타사라이 팬들은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캐릭터를 이용한 응원전을 펼쳤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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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터키 팬들은 'K장벽'을 보여준 김민재를 극찬했다. 이들은 "절대 못 뚫는 벽"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훨씬 큰 벽이야" "벽을 넘을 수는 없는 법" "인간이 어떻게 벽을 뚫나" 등 글을 남겼다.

페네르바체의 팬들은 현재 '김민재 사랑'에 푹 빠져 있다. 행여라도 그가 이적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득하다. 손흥민에 맞먹는 '월드 클래스' 수비를 극찬하면서도 EPL 등 다른 팀으로 갈까 봐 걱정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 많은 빅클럽 스카우터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이적은 시기만 정해지지 않았을 뿐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라리가-리그앙도 찾아봐...환상 드리블·골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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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데 바예카스에서 열린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라요 바예카노 대 마요르카의 경기에서 마요르카의 이강인(왼쪽)이 드리블하며 전진하고 있다. 이날 마요르카는 1대 3으로 패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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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는 잘하는데 팀들이 문제네..."

축구 경기가 끝나면 중계 카메라는 활약이 컸던 선수들을 잡는다. 라리가에선 이강인이, 리그앙에선 황의조가 그 주인공이다. 현란한 패스와 드리블을 보고 싶으면 이강인을, 환상적인 골을 위해선 황의조를 찾으면 된다.

먼저 현란하면서도 정확도가 높은 패스 능력을 가진 이강인. 그의 재능은 지난달 28일(한국시간) 헤타페와의 경기에서도 증명됐다. 중앙을 휘젓고 다니며 상대팀을 흔들고, 골문을 향한 패스와 슈팅은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다. 이날 경기의 MVP도 가져갔다.

하지만 팀 성적은 참담하다. 이날 경기까지만 보면 무승부를 더해 7경기 연속 무승이었다. 스페인 마요르카데일리는 이날 경기에 대해 "이강인을 제외하면 마요르카는 상대 페널티 지역에서 창의력이 부족하다"며 이강인만이 빛났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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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스페인 발레아레스 팔마데 마요르카에서 열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와 헤타페 경기에서 마요르카의 이강인(가운데)이 슈팅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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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강인은 소속팀 운이 없는 편이다. 발렌시아에서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신동'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지만 정작 성인 무대에선 팀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방출되다시피 했고 마요르카에 터를 잡았다. 발렌시아에선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는 이곳에서 선발 출전하며 억눌렸던 기를 펴는 중이다.

그의 활약이 돋보일수록 발렌시아는 비난받고 있다. 최근 스페인 일간 수페르데포르테는 "발렌시아에서 이강인의 발재간은 남달랐다. 좌우로 길게 뽑아 주는 전환 패스나 다양한 패스 루트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며 "그러나 수비적인 전술을 쓰는 팀에서 이강인에게 알맞은 자리는 없었고, 패스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강인을 그냥 내쫓았다"고 일갈했다.

발렌시아도 배가 아프긴 할 듯하다. 그러나 마요르카의 경기력이 그의 능력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리그 성적은 현재 15경기까지 치러진 상황에서 마요르카는 14위로 하위권이다. 발렌시아도 예전의 영광을 찾지 못한 채 11위로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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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스타드 드 라 마이나우에서 열린 스트라스부르와 보르도의 경기에서 보르도의 황의조가 전반 7분 만에 골을 넣고 자축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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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의 경기력이 아쉬운 건 황의조도 마찬가지다. 10월 낭트전에서 부상을 당한 뒤 한 달여 동안 회복 기간을 거쳤던 그는, 2일 새벽 스트라스부르와 경기에서 '리그 5호골'을 작렬했다. 복귀 두 경기 만에 득점 맛을 본 것이다. 그러나 팀은 2대 5로 대패하고 말았다.

골 장면은 환상적이었다. 팀 동료 아들리가 띄워준 공을 백 헤더로 완벽하게 꽂아 넣었다. 그러나 팀이 도와주지 않는 상황이다. 사실 보르도는 리그앙 팀들 중 최다 실점 팀이다. 16경기 만에 37점이나 실점했다. 올 시즌 리그앙 최약체 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11경기 출전해 5골을 넣은 황의조의 집념이 대단할 뿐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의 골 결정력이다. 부상 때문에 11경기만 출전했지만 총 12번의 슈팅을 시도, 이 중 7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했다. 이 유효슈팅 중 5개를 골로 연결시켰으니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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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조가 활약하는 프랑스 리그앙 보르도 소속 선수들이 한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고 있다. 보르도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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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숫자가 적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르도의 수비조직력이 엉망인 상황에서 공격권을 갖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황의조는 최소의 슈팅 찬스를 골로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황의조의 부활은 한국 대표팀에도 청신호다. 조규성(23·김천상무)과 함께 든든한 골 결정력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보르도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 이 팀은 황의조의 활약에 한글 유니폼으로 한국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우리의 추석이나 한글날에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한글로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는 것이다. 마치 국내 K리그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팬들이 바라는 건 하나다. 황의조가 이번 시즌 하위권 성적을 낼 확률이 높은 보르도 대신 상위권 팀으로 이적하길 바라는 것이다. 올 시즌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면 그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만 세 번째 감독에 '카네' '모멜라'까지 이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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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과 리즈의 경기가 끝난 뒤 안토니오 콘테(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손흥민을 끌어 안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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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흥민의 '리그 5호골'이 터졌다. 3일 새벽 브렌트포드와의 경기에서 또다시 손흥민의 원맨쇼가 펼쳐졌다. 토트넘은 2대 0으로 승리했는데, 나머지 한 골도 손흥민이 자책골을 유도하며 관여했다. 이날의 최우수 선수는 당연한 결과.

그는 골을 넣은 뒤 영화 '스파이더맨' 속 주인공처럼 손을 이용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스파이더맨'의 배우 톰 홀랜드가 과거 토트넘의 팬임을 밝히면서 특히 손흥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손흥민도 이 영상을 본 모양이다. 어쨌든 토트넘은 공식 SNS에 세리머니 동영상을 올렸고, 이달 개봉하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역시 공식 SNS 계정에 이를 링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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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공식 SNS 캡처


하지만 국내 팬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올해만 무려 세 번이나 감독이 교체되서다. 4월 주제 무리뉴 감독이 경질된 뒤 두 달여 만에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을 맞았다. 그런데 산투 체제에서도 토트넘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달 새 사령탑으로 콘테 감독이 부임했다. 팬들은 '손흥민의 활용법'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날 경기 전 콘테 감독의 인터뷰 내용만 봐도 그렇다. 그는 "손흥민이 톱의 자리에서 몇 번 뛴 적이 있지만, 그가 '넘버 10' 혹은 현재 포지션에서 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넘버 10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인데, 손흥민이 플레이메이커로서 아래서부터 전진해 움직여주길 바라는 속내다. 해리 케인(28)을 붙박이로 놓고 공만 퍼다 주라는 얘기로 들린다. 콘테 감독은 경기 때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에게 공을 케인에게 주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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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 소속 해리 케인(왼쪽)과 루카스 모우라.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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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주변 동료들이 도와주지 않고 있다. 케인이 지난 여름 맨시티 이적이 불발되면서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루카스 모우라(29)도 손흥민과의 호흡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오죽하면 국내 팬들은 케인을 두고 '카네', 모우라를 '모멜라'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할까.

'카네'는 케인의 영문인 'KANE'를 발음 그대로 읽은 것으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일 때 붙는 수식어다. '모멜라'는 예전 토트넘에서 뛰던 에릭 라멜라(29·세비야)를 빗댄 조롱섞인 별명. 라멜라는 빠른 스피드의 역습이 장점인 토트넘에서 다소 느린 패스와 고집스런 드리블, 긴 볼 소유시간 등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현재 모우라의 경기 스타일이 라멜라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부진함은 손흥민의 실력만 부각되기도 한다. 영국 내 방송사 해설자들과 타 구단 감독들은 손흥민을 두고 "기복 없이 꾸준한(consistent)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콘테 감독도 지난달 한 이탈리아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늘 중요한 선수는 세 가지 자질을 지녀야 한다고 말해왔다"면서 "그것은 체력과 스피드 그리고 수비력이다. 손흥민은 그걸 모두 가지고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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