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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닮은 이영애와 김혜준의 결정적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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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47] JTBC <구경이>의 경이와 이경

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말>

JTBC <구경이>는 독특한 분위기의 드라마다. 섬뜩한 느낌이 들다가도 어이없는 웃음이 터지고,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밝고 경쾌하다가도 갑작스레 기괴스러워진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특별한 건 주인공인 두 여성 캐릭터다. 경찰 출신의 알코올 중독자 구경이(이영애)는 둔탁한 몸짓으로 범죄와 맞선다. 기본적인 자기 돌봄조차 못하고, 몸싸움에서도 매번 밀리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예감은 잘 맞아 떨어진다. 드라마 홍보 문구처럼 정말 세상에 없던 탐정이다. 경이가 그토록 잡고자 하는 '케이' 송이경(김혜준) 역시 세상에 없던 살인자다. 나쁜 놈들만 골라, 자신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전혀 들키지 않게 없애 버린다. 다른 드라마의 살인자들이 어두운 표정과 섬뜩한 눈빛을 지녔다면, 이경은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살의를 표현한다(나는 이경이 웃을 때 정말로 소름이 끼친다).

이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 있다. 경이와 이경이 자꾸만 겹쳐 보이는 것이다. 탐정과 살인자, 잡고 잡혀야 하는 두 사람이 닮아 보이는 내 마음이 처음엔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8회까지 마무리된 지금. 나는 확신한다. 둘은 닮은꼴인 동시에 거울에 비친 상처럼 서로 반대인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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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이와 이경은 서로 매우 닮았지만 그 방향은 반대인 '거울쌍'인 인물들이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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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와 이경은 닮았다

경이는 남편의 자살을 계기로 많은 것이 달라진 인물이다. 남편이 죽기 전 경이는 깔끔한 차림새의 경찰이었다. 아마도 의심 많은 성격만은 그대로였을듯 싶은데 이는 경찰로서는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의심이 남편을 향하게 되고, 그녀가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는 동안 남편은 자살을 한다. 경이는 이에 심한 죄책감을 갖는다. 그녀가 게임과 술에 중독돼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이 괴로운 마음을 잊기 위함일 테다.

이토록 힘든 일을 겪은 후에도 경이는 의심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팀원조차 잘 믿지 못하는 그녀를 움직이게 하는 건 스스로의 직감이다. 그리고 그 직감을 뒷받침해줄 증거들을 오감에 의지해 찾는다. 그 어떤 사람의 말이나 증언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직감과 오감만을 따르는 경이가 신뢰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어릴 적 미국에서 자란 이경은 부모가 산에서 부부싸움을 하다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을 겪는다. 이 때 이경은 산에서 실종되었다 구조되고, 그후 이모 정연(배해선)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자라난다. 그러던 이경은 어릴 때부터 나쁜 사람을 보며 "깜깜한"(4회) 마음을 느낀다. 아마도 이경은 그 깜깜한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쁜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경이 나쁜 사람을 선정하는 근거 역시 오직 자신의 마음이다. 누군가가 원한을 품고 있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을 했을 때 그녀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긴다. 이경 또한 믿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뿐인 셈이다. 이처럼 경이와 이경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는다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경이와 이경은 다르다

그런데 둘의 '자기 자신밖에 믿지 못하는 마음'이 향하는 방향은 거울에 비친 상처럼 완전히 반대다. 경이는 자신의 의심을 타인을 돕는 데 이용하지만, 이경은 남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 나는 이 둘의 차이가 서로 다른 심리적 상태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대상관계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편집-분열 자리'와 '우울자리'로 구분했다. '편집-분열 자리'는 무엇인가가 나를 파괴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하는 데 한 번 나쁜 느낌을 준 상대가 있으면 그 사람 자체를 나쁘다(all-bad)고 인지한다. 즉 이들에겐 나쁜 것 아니면 좋은 것이 존재할 뿐이다. 나아가 자신을 지키고자 나쁜 것을 파괴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이경은 이 '편집-우울자리'에 있는 인물이다. 심하게 다투는 부모와 살면서 이경은 늘 자신이 부모의 분노에 의해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며 웅크린 채 지내야 했을 것이다. 당연히도 이경은 자신을 향한 위협에 극도로 예민했을 것이고, 좋고 나쁨으로 가리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그녀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더해진다. 때문에 그녀는 "죽이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을 죽어 마땅한 나쁜 사람으로 간주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반면, 자신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이모 정연(배혜선)은 모든 것이 좋은 사람이 된다. 이모는 그녀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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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경찰 구경이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중독자로 살아간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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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자리'는 '편집-분열 자리'에서 한 단계 성숙한 심리적 상태다.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되면서 양극단으로 사고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은 때로는 죄책감을 유발하는데 이는 우울함을 유발한다. 그래서 클라인은 이 자리를 '우울자리'라고 불렀다.

경이는 '우울자리'에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그녀는 남편을 의심했던 자신의 행동들을 돌아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의심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오직 자신의 마음만을 믿지만, 그 마음만을 근거로 옳고 나쁨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함을 알고 있기에 자기 생각의 객관적인 근거를 찾으려고 애쓴다. 믿음과 정보가 일치하지 않을 땐 가설을 수정하고 잘못을 인정할 줄도 안다. 때문에 경이는 남을 해치지는 않지만, 스스로가 괴롭다.

이 둘의 이런 차이를 6회 경이는 이렇게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나라고 죽이고 싶은 놈 하나 없었는 줄 알아? 근데 나한테 그 필수 요소가 없더라고. '멍청함과 오만함'. 사람 죽이려면 그 두 개가 필요한데, 나한텐 없는 거지."

'편집-분열 자리'의 이경은 자신의 느낌으로 좋고 나쁨을 정하기에, 구체적인 사실과 정보를 무시하는 멍청함과 오만함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경이는 이 자리의 위험을 알고 있는 '우울 자리'에 있는 인물이기에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경이와 이경이 건강해지려면

그렇다면 경이와 이경이 좀 더 심리적으로 건강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클라인은 편집-분열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절한 돌봄이 행해져야 한다고 했다. 적절한 돌봄을 통해 만족이 지연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님을 알아갈 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함을 이해하게 되고,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경에겐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만, 한편으로는 야단도 쳐주는 그런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우울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자신이 파괴한 대상에 대한 죄책감을 극복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의 진실된 마음을 통해 미움보다 사랑의 힘이 큼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경이에게는 주변인들의 따뜻한 도움에 마음을 여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결국 이 둘에게 필요한 것은 돌보고 도와주는 따뜻한 관계다. 이런 관계 경험들을 통해 사람은 모순된 모습을 함께 지닐 수 있으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잔뜩 웅크린 채 파괴적 충동에 시달리거나(편집-분열자리),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자리(우울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도움을 주는 대상을 믿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드라마 속 세상은(어쩌면 현실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6,7회 등장했던 고담(김수로)과 그를 둘러싼 맥락들은 믿을 수 없는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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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 송이경은 '나쁜 일'을 한 사람 자체를 '나쁜 사람'으로 간주하고 교묘하게 없애버린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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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가 진짜 고담을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으면 그냥 놔두는 게 낫지 않나요? (고담을) 경찰에 신고해도 처벌도 제대로 안 받을 거예요. "

6회 산타(백성철)의 이 말은 이경과 경이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회의 시스템 자체를 믿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살 길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것이 타인을 짓밟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돌보고 돕는 이를 믿는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도 마찬가지 아닐까? 산타의 말이 솔깃하게 와닿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분명 세상을 온통 위협으로 간주하고 남을 파괴하는 또 다른 '이경들'과 죄책감 속에 괴로워하는 수많은 '경이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경과 경이의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신뢰로운 사회 시스템 구축은 절실해 보인다. 드라마 <구경이>는 매우 독특하고도 은밀한 방법으로 이를 알려주고 있다.

송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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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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