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노학연대’ 노동운동의 선도자 이태복 전 장관 별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80년대초 전민노련으로 이후 노동운동에 족적

선진적 학생과 노동자의 연대 통한 반독재 노동운동 주창

김대중 정부에서는 청와대 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

광민사-동녁출판사로 한국사회에 영향준 저서 펴낸


한겨레

3일 별세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한겨레> 자료 사진


1980년대초 노학연대 노동운동의 선도자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3일 별세했다.

이 전 장관은 이날 오후 3시께 급성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들이 전했다. 향년 71세.

이 전 장관은 전두환 정권의 출범으로 노동운동의 암흑기에 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를 통한 노동운동을 주창해, 그 이후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던 1980년 5월 노동운동 조직인 ’전국민주화노동자연맹’(전민노련)을 결성해, 선진적인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하는 비공개비합법 노동운동을 도모했다. 전민노련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에 논의되던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과 결합해, 전두환 정권에 대해 적극적인으로 맞서는 선도투쟁론을 주장해 그 이후 학생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민노련과 전민학련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숨죽이던 민주화 운동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의 투쟁 노선은 당시 대학과 노동운동권에서는 실력을 키워서 군부독재에 맞서자는 ‘준비투쟁론’과 대비돼, ‘선도투쟁론’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특히, 이 장관과 전민노련은 선도적인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해서 독재정권에 맞서자는 '노학연대' 전술을 제시했다. 전민노련과 전민학련은 1980년대말 이른바 ‘학림’ 사건으로 공안당국에 의해 규정돼, 이 전 장관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한겨레

전두환의 5공화국 정권은 민주화운동의 새로운 양상인 ‘노-학 연대’를 막기 위해 81년 6월 이른바 ‘학림사건’으로 명명한 ‘전국민주노동자연맹’과 ‘전국민주학생연맹’ 사건을 동시에 터뜨렸다. 사진은 이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무기형을 살다가 88년 7월 특사로 풀려난 이태복 전 노동부 장관이 대전교도소 앞에서 어머니를 만나 기뻐하는 모습.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86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의해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고,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석방 탄원으로 1988년 가석방됐다.

충남 보령 출신인 고인은 예산중, 서울 성동고, 국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부터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을 시작해,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 의식을 쌓고,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대학생 때인 1971년 ‘위수령’으로 강제 징집됐다.

그는 용산 청과물시장에서 지게꾼을 하며 현장 노동과 노조를 경험한 뒤 1977년 7월 출판사 광민사를 설립해 한국 노동운동의 이론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가 펴낸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노동의 역사> <유한계급론> 등은 당시 학생운동권의 필독서였다. 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등 빈민과 노동 관련 문학서적도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석방된 그는 1989년 10월 <주간노동자신문> 등을 발행하며, 노동운동의 이론화와 대중화에 매진했다. 그는 1999년에 <노동일보>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말 이후에는 기존 노조운동이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에 빠졌다고 보고,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조합 운동’을 표방했다. 그는 노조와 무의탁 노인, 장애가정 등을 연결하는 등 노동운동의 복지 참여를 주장했다.

노동운동의 노선 전환을 주장한 고인은 김대중 정부에서 2001년 3월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 2002년 1월 보건복지부 장관에 발탁됐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그는 2007년 기름값, 휴대전화비, 카드수수료, 약값, 은행 금리 인하 등을 요구하는 ‘5대거품빼기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는 등 대중적인 국민운동을 발기하고 참여해왔다.

그는 숨지기 며칠 전인 지난 1일 수원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윤상원 열사 기념행사에 5·18 윤상원 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급서했다.

그가 설립한 광민사는 그 이후 동녁출판사로 바뀌어 수많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준 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유족으로는 노동운동가 출신 부인 심복자씨와 형제 이향복·이예복·이건복(동녘출판사 대표)·이화복·이영복(문화유통북스 대표)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구로병원 장례식장 201호실. 7일 오전 5시 발인이며, 장지는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이다. 문의 070-7606-4197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