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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백화점식 아트페어 아닌 '명품관' 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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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아트페어 '솔로쇼'

5일까지 강남구 원에디션

50세이상 중견작가 개인전

엄선된 14갤러리 차별적 전시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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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아트페어의 고정된 형식을 탈피하고 기획전시의 성격을 더해 출범한 대안적 아트페어 ‘솔로쇼(Soloahow)’가 오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원에디션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지난 2018년 10월 서대문 영천시장의 리노베이션 중인 낡은 원룸 건물에서 16개 갤러리가 참여해 첫 선을 보인 ‘솔로쇼’는 이듬해 이태원 경리단길 부근의 폐업한 호프집에서 ‘종이 작업’을 주제로 열렸고,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에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관객과 소통했다. 일반적인 아트페어가 대형 컨벤션 공간에 가벽설치로 구획을 나눠 전시하기에 변화가 제한적인 반면, ‘솔로쇼’는 기존 화이트큐브(출입구를 제외한 사방이 막힌 전시공간)이 아닌 곳을 찾아다니며 매번 변신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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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 같은 부티크 아트페어
지난 2일 공식 개막한 올해 ‘솔로쇼’는 50세 이상의 중견작가 개인전 형식을 콘셉트로 택했다. 독일의 쾨닉, 에스더쉬퍼 갤러리 등이 참가해 국제적 협력도 시도했다. 기존의 백화점식 아트페어에서 벗어나 힙한 편집샵 느낌의 아트페어로 존재감을 자랑해 온 ‘솔로쇼’가 이번에는 ‘명품관’으로 변신한 듯하다. 전시장 원에디션은 미술컨설팅 및 교육기관인 에이트인스티튜트(ait institute)가 운영하는 곳으로, 아파트분양사무소 겸 모델하우스로 만들어져 현재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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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관’에 비유되는 이유는 화려한 출품작가들 때문이다. 입구 첫 화랑은 가나아트가 기획한 부스로, 한국 미니멀 추상조각의 선구자 박석원(79)을 선보였다. 최근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이 처음으로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접목해 기획한 ‘야금’전에 그의 1968년작 ‘초토’가 선보여 주목받고 있지만, 현대조각의 중추로 일찌감치 입지를 다진 작가다. 재료를 가공해 기교를 보여주는 것보다 재료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둔다. 그 반복으로 인한 율동감이 멋스러운 평면작업, 입방체나 원기둥을 쌓아올려 만드는 대표작 ‘적(積)’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 옆 PKM갤러리는 창호지를 뚫고 들어온 은은한 빛을 보여주는 듯한 서승원(80)의 작품들로 전시장에 온기를 더했다. 서승원은 1962년에 기하학적 추상의 밝은 색면회화를 처음 선보였고, 비구상 미술운동을 전개한 ‘오리진(Origin)’과 전위미술의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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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가 선보인 김용익(74)은 삶과 미술의 경계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작업을 통해 드러낸다. 정체된 채 권위만 내세우는 1990년대 초반 모더니즘 미술을 비판한 그의 대표작이자 일명 ‘땡땡이’로 불리는 평면작품이 주목을 끈다.

그 맞은 편의 아트사이드갤러리는 섬세하고 반복적인 붓질로 바다를 묘사하는 오병욱(63)의 최신작들을 소개한다. 평온한 바다, 해 뜨기 전의 바다, 해 진 바다, 바람부는 바다 등 다채로운 바다 풍경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마음의 바다’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점묘로 표현한 바다가 우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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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처음 참가한 독일 베를린의 에스더쉬퍼갤러리는 루마니아 작가 플로린 미트로이(1938~2002)의 초상화 연작부터 종이 드로잉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평생 교직에 몸담으며 현재 활동하는 루마니아 예술가 대부분을 가르쳤기에 ‘루마니아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트로이는 평생 단 한번의 개인전만 열었을 뿐 작품을 잘 보여주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작가 사후에 숨겨뒀던 8만점의 작품이 발견됐고 이는 루마니아 전후(戰後) 예술의 중요한 기록으로 미술사적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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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학고재갤러리는 순진무구하고 자유로운 화법의 오세열(76)을 선보였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어린시절의 감각을 재료료 구성한 그의 반(半) 추상 화면은 꼭 칠판에 분필로 낙서한 그림처럼 친근하면서도 초월적이다.

대구의 갤러리신라는 기하학적 조각으로 유명한 일본작가 다카시 스즈키(64)의 최근작을 소개했다. 스즈키는 2007년부터 적색과 청색의 단색조 변형캔버스 작업으로 공간에 긴장과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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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독일의 쾨닉 갤러리는 지난 10월 열린 키아프 서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카타리나 그로세(60)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회화란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그로세는 색을 칠하는 대신 뿌리거나, 흐르고 스미게하는 등 ‘다른’ 방식의 회화를 추구한다. 전시장 바닥, 건물 외벽, 야외 도로 등을 가리지 않고 작업하는 작가의 거침없는 에너지가 캔버스와 종이 위 강렬한 색채에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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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비슷한 재료들을 사용하지만 결과가 천차만별인 게 예술을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나란한 조현화랑의 작가 윤종숙(56)은 전통 동양화를 다루는 부친의 영향을 받은 까닭인지 독일·영국에서 유학하고 유럽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지만 동양적 정감이 느껴진다. 전통 수묵화와 독일 추상표현주의가 뒤엉켜 붓질 뿐인 화면에서 산등성이, 굽은 길, 정자, 개울, 달 등이 보인다. 줄곧 해외에서만 활동하다 조현화랑과 손잡고 내년에 국내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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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빛이 뿜어나는 듯한 진 마이어슨(50)의 신작들은 갤러리2 부스에서 만날 수 있다. 인천에서 태어나 5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마이어슨은 미술을 전공하고 1990년대 후반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 입주를 인연으로 한국을 자주 오가며 아시아 지역으로 무대를 옮겼고, 지금은 서울에 작업실을 두고 있다. 주요 미술관 컬렉션, 대형 갤러리 전시 참가 등 이력이 화려하다. 들끓는 무의식을 담아낸 듯 자유로운 화면이지만 언뜻 구상적 형태가 감지되면서 상상을 자극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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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쇼’ 아트페어는 한 층 위로 이어진다. 찍어바른 물감들이 찬연(燦然)하게 어우러진 대형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구체적으로 잡히는 형태는 아니지만 올려다본 가을 하늘, 물에 비친 꽃그림자 마냥 ‘이야기’를 풀어낸다. 갤러리현대가 선보인 작가 도윤희(60) 작가의 미공개 신작들이다. 정밀묘사의 연필화 초기작, 문학적 영감이 드러난 작품 등 서정성이 강했던 작가가 처음으로 붓 등의 도구를 내려놓고 손으로 직접 작업했다. 신체성이 담아낸 미세한 감각과 충동적인 질감이 탁월하다. 내년 초 개인전의 예고편이라 할 만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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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단색조 회화를 일컫는 ‘단색화’의 맥을 이어 ‘후기 단색화’의 대표주자로 활동중인 남춘모(60)의 작품들을 리안갤러리 부스에서 만날 수 있다. 예전 작가들이 선을 활용한 여백과 공간을 표현했다면 그는 선(線) 그 자체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무모한 도전’에 평생을 천착해 왔다. 삼베에 합성수지를 발라 굳힌 후 다양한 형태로 접고 배치해, 밭고랑 같은 선들이 넘실대는 ‘부조회화’는 빛과 만나 공간감을 이루고 그림자까지 가세해 다양한 풍경을 연출한다. 선과 획을 탐색한 평면작업은 단일한 색조이나 강렬하다. 적색, 청색 작업들과 함께 금빛 신작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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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쇼’에는 참여화랑이 14곳 뿐이지만 작품 경향과 매체적 특징이 각양각색이라 지루하지 않다. 갤러리조선은 건축공간과 빛의 관계를 탐구해 온 미디어아티스트 정정주의 작품을 소개한다. 빛덩어리라 할 수 있는 LED막대를 직조해 만든 대형 조각, 빛과 나(감상자) 뿐인 공간에 초대받은 듯한 분위기를 만드는 영상작품 등 기술을 통한 서정성이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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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은 국제적활동이 가장 왕성한 중견 작가 중 하나인 이수경(58)의 도자기 연작과 드로잉을 내놓았다. 깨진 도자기 파편을 금으로 연결한 그의 ‘번역된 도자기’ 연작은 국내외 주요미술관 뿐만 아니라 런던 대영박물관에까지 소장돼 있다. 지난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선보였듯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는 대형 작업을 주로 전시하지만 이번 ‘솔로쇼’에는 소품들도 다양하게 출품했다. 작가 자신의 안정과 치유를 목적으로 시작한 ‘매일 드로잉’은 보는 사람에게도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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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쇼’ 아트페어는 갤러리스트 연합조직인 ‘협동작전(COOP)’이 기획하고 있다. 협동작전의 정재호 갤러리2 대표는 “그간 힙하고 멋진 부티크 아트페어로 ‘솔로쇼’에 대한 시선이 고정되는 것을 벗어나고자 50세 이상의 중견·원로작가 전시를 통해 변신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김인선 윌링앤딜링 대표는 “이번 ‘솔로쇼’의 전시 제목은 ‘복덕방’으로 원래 집을 거래하는 개념을 가진 이곳 원에디션의 공간성을 고려해 예술로 활력을 더하고자 했다”면서 “다양한 공간을 활용하면 대형 컨벤션센터 대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에 부스비용을 줄여 참여갤러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준수 갤러리조선 실장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자 도록을 제작하지 않는 대신 홈페이지에 그간의 전시 아카이브, 작가에 대한 기록를 쌓아가며 대안적 아트페어의 역할을 구축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5일까지

글·사진=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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