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몽골의 게르가 둥근 이유를 아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웃, 몽골 유학생 마르가트씨
한국 드라마 많이 봐서 한국문화 친숙
게르의 둥근 모양, 잘 어울려 지내라는 뜻
"BTS 등 한국은 세계와 잘 어울리는 문화 가진 듯"

한국일보

몽골 유학생 보양네메흐 마르가트씨가 몽골식 의상을 입고 대구대학교 교정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광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름답다'란 말이 몽골어로 '열다섯 살'을 뜻하는 '아르반 타브 타이'에서 나왔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대구대에 유학,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하는 보양네메흐 마르가트(22)씨. 그는 2019년 9월에 한국으로 왔다. 몽골에서 10달 정도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생활도 겨우 2년 반 남짓이지만 한국어가 원어민 수준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한국어가 친숙한 것도 있지만 한국어와 몽골어 사이에 비슷하거나 서로 연결되는 단어가 많다"고 했다.

"'아름답다'는 말이 그래요. 몽골인들이 아름다운 몽골 공주를 소개하면서 '아르반 타브 타이', 즉 열다섯 살이라고 했는데, 고려인들이 그 말을 '아름답다'로 듣고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했다는 거죠. 몽골의 옛 노래 중에 15일에 뜨는 보름달은 열다섯 살 아가씨처럼 아름답다는 내용을 담은 것도 있어요."

'쪽'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국어사전에는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몽골도 같은 의미로 똑같이 '쪽'이라고 쓴다. 마르가트씨는 이 단어에 대해 "'쪽'이란 단어는 늘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라면서 "유목민의 말이 정착 생활을 하는 농경민들에게 스며들어 정착한 셈"이라고 말했다.

"배우면 돈은 알아서 날아온다고 생각"


드라마와 교류의 흔적이 남은 '말'들 덕분에 처음부터 한국이 낯설지 않았다. 2019년 겨울, 친구와 함께 김해공항에서 내려 경북 경산에 있는 대구대학교로 버스를 타고 왔다. 이미 해가 져서 깜깜한 데다 기숙사로 가는 길을 몰라 헤맸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옛날에 살던 동네에 온 기분이었다.

지난해 겨울 학우들과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는 '진짜 몽골'을 만났다. 몽골식 전통 가옥인 '게르'를 발견한 것. 흙과 돌, 나무로 만든 집이었지만 전체적인 모양이나 불피우는 자리 등 '게르'와 구조가 똑같았다.

"한국에 온 첫날 느꼈던 감정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어요. 오랜 교류로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서적으로는 너무도 친숙했지만 모든 일이 일사천리는 아니었다. 특히 공부가 힘들었다. 첫 학기에 교수님을 찾아가 "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김수정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줬다. 마르가트씨는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큰 힘이 됐다. 한국에서 만난 분 중에 가장 감사한 분"이라고 고백했다.

마르가트씨는 공부에 진심이다. 공부하러 와서는 줄곧 일만 하는 유학생도 적지 않지만 그는 공부가 우선이다. 어머니가 학교 선생님인 영향도 있겠지만 "배우면 돈을 알아서 날아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당장의 경제적 현실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다.

한번은 몽골 친구와 팀이 되어서 발표를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아직은 한국말이 서툴 때여서 이미지 자료로 승부하기로 했다. 자료를 제대로 만들자니 시간이 부족했다. 패딩에 핫팩 두 개를 챙겨서 학교 작업실로 갔다. 자료를 만들면서 밤을 꼴딱 새웠다. 고생한 덕에 해당 과목에서 A플러스 성적을 받고 그 학기에 장학금도 탈 수 있었다.

"몽골 속담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게 있어요. 한국과 똑같죠? 고생했더니 좋은 학점이 오더군요. 석사, 박사까지 모두 밟은 후에 꼭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요."

한국일보

마르가트씨가 지난 1월 전공서 앞에 적어놓은 문구. '아무리 힘들어도 넘어가면 힘든 게 아니라 좋은 추억과 경험으로 남는다' '나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데' 등의 구절이 적혀 있다. 김광원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은 잘 어울리는 문화를 가졌어요"


마르가트씨가 최근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게르'다. 게르를 무대 디자인과 연결해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어릴 적 여름이면 시원한 게르에서 생활했다. 그만큼 게르에 익숙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둥그스름한 게르의 모양에는 어디에 가든 사람들과 잘 어울리라는 조상들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요. 정말 그래요. 게르에서 같이 생활하면 둥글게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사이가 좋아지거든요."

한국의 전통인 '사랑방'에 해당하는 '게르'도 있다고 했다.

"시골에 가면 부유한 가족들은 게르를 2~3개 만들어요. 그중 하나는 손님을 위한 게르예요. '사랑방 게르'인 셈이지요. 그렇게 이웃과 나그네들과 어울리며 살아왔어요."

김수정 교수에게도 '게르'를 배웠다. 마르가트씨는 "교수님이 평소 '사회에서 제일 필요한 사람은 서로 도와주고 협업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하시는데, 그게 바로 게르의 의미"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BTS와 '기생충', '오징어 게임' 모두 세계에 통했다"면서 "한국은 세계와 잘 어울리는 문화를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몽골의 15살 아가씨와 한국 사람들의 미에 대한 감각이 만나서 '아름답다'는 말이 탄생했어요. 만나고 어울리고, 풍성해지고 그래서 더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이 그걸 훨씬 잘하고 있지만 '게르' 문화를 가진 몽골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요. 몽골과 한국이 더 자주 만나고, 그래서 더 많은 '아름답다'는 감탄사가 탄생하길 바랍니다!"

한국일보

마르가트씨가 한국으로 오기 전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사진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마르가트씨는 한국에서 석사와 박사를 모두 마친 뒤 한국기업에 취업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마르가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