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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1시간에 여성 6명이 사라집니다, 애인·남편 손에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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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유효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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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5일 여성 폭력 근절의 날을 맞아 파나마 대법원 앞에 놓여진 상징 구두들/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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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 있었냐면요

지난달 25일 영국 리버풀 도심에서 12세 소녀 아바가 말다툼을 하던 15세 소년들에게 칼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아바가 사망한 11월25일은 '세계 여성 폭력 근절의 날'. 영국경찰청은 "아바의 죽음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보여준다"고 성명을 냈어요. 같은 달 우리나라에서는 교제했던 전 연인을 1년 내내 스토킹하다가 살해한 남성 김병찬의 신상이 공개됐습니다.

1시간에 6명. 전 세계에서 전·현 남성 연인 혹은 남편에게 살해 당하는 여성의 수 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 2020 글로벌 성별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159개국 여성 3명 중 1명, 즉 7억여 명이 일생에 한 번 이상 남성 파트너에게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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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교제 살인'을 포함한 여성 폭력에 대한 논의 요구가 커지고 있어요. 이번주 [데이:트]에서는 매일 얼마나 많은 여성이 남성 파트너 혹은 모르는 남성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지 짚어봅니다.


더 들여다보면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여성에 대한 젠더 기반 폭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신체적, 성적 학대뿐 아니라 의식주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대한 차단, 감금, 의사소통 거부, 성희롱을 포함한 폭력.'

지난달 25일 유엔 여성기구가 낸 '팬데믹 기간 여성 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저소득 13개국 여성 2명 중 1명이 팬데믹 이후 폭력 경험을 경험했다고 답했어요. 이들 국가의 여성 10명 중 7명은 파트너에 의한 언어적 또는 신체적 학대가 더 빈번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은 코로나19로 늘어난 가정 내 활동이 '여성 폭력'을 심화했다며 '페미사이드(여성 살해)'의 세계적 팬데믹'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렇다고 소득이 높은 '선진국'은 다를까요? 2018년 기준 미국과 캐나다, 싱가포르, 서유럽 국가 등 고소득 국가의 여성 3명 중 1명이 15세 이후 남성 파트너 혹은 모르는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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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주요 고소득 국가 중 유일하게 '여성 폭력'과 관련한 공식 통계가 없는 나라가 있습니다. 한국입니다. 내년 3월에야 최초 공식 통계가 나올 예정이에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주축이 돼 한 국가의 여성 폭력 피해 수준을 파악하는 척도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친밀한 관계 폭력(IPV)' 지수를 냅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폭력 실태는 언론에 보도된 교제살인과 교제폭력 사건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의전화가 낸 통계를 통해 가늠할 뿐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언론 보도된 것만 97건에 달했습니다. 살인미수는 131건입니다. 이틀에 여성 한 명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당한 거죠.

가정 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에도 손실을 가져다 줍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원래 하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거나 더 나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죠. 유럽 '젠더 평등 연구소'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인해 유럽연합 경제가 연간 3660억 유로(487조7600억 원)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추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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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이죠

'이스탄불 협약'. 유럽평의회 주도로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약이에요. 법적 효력을 지닌 세계 최초 조약으로, 헌법에 성 평등을 의무화하고 가정 폭력 등 여성 폭력 예방과 교육, 지원 서비스 및 법 집행을 통해 여성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게 목표입니다.

스페인은 2004년 여성 폭력을 '젠더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보고 별도의 법을 만든 최초의 유럽 국가입니다. 1997년 스페인 TV에 출연해 40년 간 남편에 의한 폭력을 고발한 아나 오란테스가 방송 후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입법 변화가 시작됐어요. 스페인 내 '여성 살해'는 2007년 76명에서 지난해 45명으로, 유럽에서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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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스페인에서 열린 기념 시위/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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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살인을 다른 살인 사건과 법적으로 구분하는 국가는 소수입니다. 구분 조항과 처벌로 유죄 판결률이 높아지거나 범죄 자체가 감소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거란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 '사적인 일'로 치부돼 구제받지 못하거나 일상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확한 명칭과 법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이바나 밀로반노비치 세르비아 판사는 "여성 살해는 특정 범죄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성 살해의 근본 원인은 다른 유형의 살인과는 다르며 사회 내 여성의 일반적인 지위, 여성 차별, 성 역할, 남녀 간 불평등한 권력 분배, 젠더 고정 관념 등에서 비롯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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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선 '여성 살인'이란 명칭이 특정 성별을 가해자로 일반화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잇따른 '교제 살인'과 관련해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을 언급했죠. 이 대표는 "일반적인 사람은 고유정을 흉악한 살인자로 볼 뿐, 그가 여성이라고 젠더 갈등화하려고 하지도 않고 선동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숫자만 들여다 보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90%가 여성, 가해자의 99%가 남성이었습니다. '어떤 성별이 더 피해 입는다'는 말은 무의미해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남녀 대결적 시선'이 아니라 유난히 피해 입는 이들을 보호하자는 말일 것입니다.

임소연 기자 goatlim@mt.co.kr,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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