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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겨울엔 종로 숨은 골목길 나들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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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찰 볼 수 있는 서순라길 해설 프로그램

SNS 핫플 한국 최초 공예박물관부터 흥선대원군 별장 석파정까지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광화문 일대로 불리는 서울 종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조선시대에는 수도 한양의 중심축이었으며 근대화 과정과 그 이후에도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올 겨울 나들이는 조선시대 순라순들이 직접 들려주는 ‘순라군 해설프로그램’부터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이 절충된 한옥을 구경하며 우리의 멋과 전통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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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담장과 한옥의 조화가 돋보이는 서순라길.(사진=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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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라군은 야간에 화재와 도둑을 막기 위해 3~5명씩 조를 편성하여 한양을 돌며 순찰하는 경찰이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태종 시대, 거리에 도둑이 많아 백성들을 지키도록 명했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태종의 아들인 세종대왕은 황희 정승에게 한양에 도둑이 많으니 경수소 훈련을 강화하라 명했다는 기록도 있다. 경수소는 지금으로 생각하면 경찰 지구대나 파출소를 떠올리면 된다. 세조 시대에 이르면 한양에 106개의 경수소를 설치했다고 하니 꽤 큰 규모로 순라군이 운영됐음을 알 수 있다.

종로구에서는 11월부터 ‘순라길, 순라군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순라군 복식을 갖춰 입은 해설사와 함께 창덕궁과 종묘로 이어진 사잇길을 걷는 것이 특징.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해설사를 만나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앞에서부터 본격적인 해설 코스가 시작된다.

돈화문 앞길은 임금이 백성을 살피던 ‘어도’로 이 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전이 들어섰다. 북촌에는 양반, 서촌에는 중인들이 많이 살았다면 돈화문은 앞쪽에는 궁이나 종묘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악을 연주하던 음악가들이 많이 살았다. 그 명맥이 이어져 아직도 국악학원, 악기사, 한복집 등이 운집해있다.

돈화문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은 익선동, 왼쪽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가 나타난다. 단성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종로3가역 앞에 있는 금은방 거리를 통해 종묘로 간다. 종묘 서쪽으로 이어지는 담장을 따라 난 서순라길을 걸어 대각사로 향한다.

대각사는 1931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재산 몰수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해방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했을 때 환영회가 마련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대각사를 둘러본 후 서순라길을 따라 돈화문 앞에 있던 국악당으로 돌아오면 해설 프로그램이 끝난다.

최근 종묘 서쪽 담장 따라 걷는 서순라길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도상으로는 종묘가 궁궐 오른쪽에 위치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궁궐에서 왕이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을 중심으로 좌묘우사(왼쪽은 종묘, 오른쪽은 사직단)를 두었기에 서순라길이라 한다. 직관적으로 종묘 서쪽에 있는 길이라 서순라길이라고도 한다.

역에서 서순라길 쪽으로 걷다 보면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노포인 잔술집이 나타난다. 담장 위로는 종묘를 감싼 나무들이 가지를 뻗어 공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더하고, 거리에는 특색 있는 카페나 음식점, 눈길을 사로잡는 공방들이 이어진다. 주변 건물은 종묘 담장을 넘보지 못하도록 높이가 2층으로 제한돼 있다. 담벼락과 조화로운 경관을 이뤄 아늑함마저 든다. 아직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서울의 다른 명소에 비해 비교적 거리도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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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로 만든 화각함.(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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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공립 공예박물관인 서울공예박물관 방문도 추천한다. 옛 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해 건축한 박물관은 2만여 점의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박물관이 들어선 장소는 과거 세종대왕의 아들인 영응대군의 집터로 알려져 있다. 조선 말에는 마지막 왕인 순종의 혼례를 위해 이곳에 안동별궁을 만들었다. 별궁은 왕실의 가례 준비를 위한 장소로 활용되다 이후 풍문여고가 들어섰고 70여 년간 학교로 사용되다 현재는 공예박물관으로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상설 전시는 장인의 기술과 전통 공예품에 관한 이야기부터 조선 말 근대화 속에서 하나의 산업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예 역사 전시’와 다양한 자수와 보자기 작품을 소개하는 ‘직물 공예 전시’로 진행된다.

석파정은 조선 후기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홍근의 별장이었다. 삼계동이라고 새긴 커다란 바위 아래에 집이 있어 삼계동정사라 불렸는데, 고종이 즉위한 후 이곳의 풍경과 주변 정취에 마음을 빼앗긴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별장으로 삼으면서 그의 호인 석파(石坡)를 따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석파정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서울미술관 통합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1층과 2층에서 전시 관람을 한 후 3층을 통해 야외로 나가면 된다.

석파정은 원래 8채였으나 현재는 안채, 사랑채, 별채, 석파정만 남아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인 별채에 걸터앉으면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의 계곡에 안긴 듯 자리한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종 황제가 석파정을 찾았을 당시 묵었던 방도 별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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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단풍이 가득한 석파정.(사진=서울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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