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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데스크 칼럼] 의사과학자 못 키우면 K바이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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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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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 웰트의 강성지(35) 대표는 의사과학자다. 강 대표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갤럭시워치 시리즈에 들어갈 디지털 헬스케어 기능을 개발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11월 11일 조선비즈가 주최한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 2021′에 연사로 참석한 강 대표는 의료와 과학에 전문성을 가졌던 자신의 이력이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신희섭(71) 기초과학연구원(BIS) 명예연구위원은 대한민국 1호 국가과학자이자 대표 의사과학자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남들처럼 의사의 길을 걷지 않았다. 미국 코넬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기초의학자로 진로를 바꿨다. 국내 최초로 뇌 연구에 유전학을 도입한 신 명예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BIS 단장 퇴임식에서 “내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산업계와 연계해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와 달리 의사과학자는 질병의 메커니즘을 연구해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한다. 의사과학자가 없었다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불가능했다. 미국 화이자와 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한 터키계 독일인 부부 우우르 샤힌과 외즐렘 튀레지는 의사과학자다. 이들은 혼인신고를 하자마자 실험실로 달려갔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인재가 의대로 몰려가고 있지만 매년 배출되는 3300명의 의사 중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사람은 30명 미만에 불과하다. 1%도 채 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의대 졸업생의 약 4%가 의사과학자로 양성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09년 의학전문대학원과 한국연구재단이 의학전문대학원 내 ‘의사과학자(MD-PhD)’ 과정을 신설하면서 의사과학자 양성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2010년 서울대와 연세대 등이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다시 의과대학으로 회귀를 선언, 한국연구재단이 관련 지원금을 중단하면서 의사과학자 과정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의사과학자를 키우기 위한 체계적인 양성 체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의대생들이 의사과학자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불투명한 미래, 전문성에 대한 사회 인식 부족, 금전적 보상 부족 등의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국내 의대 한 기초의학 연구교수는 “교수로 30년 넘게 재직했는데 연봉은 1억원대다”라며 “교육, 연구, 학교 행정까지 도맡아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뻔히 아는 학생이 기초의학자를 선택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바이오의약품을 비롯한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조달러(약 2200조원)에 달한다. 44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시장보다 훨씬 크다.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와 함께 바이오헬스는 대한민국 3대 성장동력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의사과학자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K바이오의 미래는 없다.

때마침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관계부처와 의료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범부처협의체가 지난 10월 1일 발족했다. 5개 과제별 실무회의를 거쳐 이달 말 구체적인 추진전략이 나온다고 한다. 의사과학자가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창환 정보과학부장(ch2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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