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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전두환의 마지막…민주화 세력 서사의 엔딩 [Law談-권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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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

지난달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기에 앞서 작성한 방명록의 문구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를 느닷없이 소환해서 뭇매를 맞았던 윤석열 후보는 경선을 통과하고 광주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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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0일 광주 북구 5·18민주묘역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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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지키든, ‘반듯이’ 세우든, 1980년 5월 광주는 아직 채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헌정 사상 가장 참혹한 역사다. 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이듬해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공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합동수사본부로 연행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택에 연금됐다. 모든 정치 활동과 옥내·외 집회가 금지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드높아진 민주화의 열기를 잔인하게 진압한 신군부는 5공화국을 세웠다.

총칼로 무참하게 짓밟힌 5월 광주는 80년대 학생 운동권 세력 발흥의 이유였다. 민주화 세력들은 미국이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부의 이동을 묵인 내지 승인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군부독재 종식을 목표로 한 민주화 세력의 이념은 급진화됐다.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상정했고, 냉전 체제에서 미국을 대항할 우군을 찾아 사회주의를 이념적 목표로 삼았으며, 식민지 한반도의 공동 운명체인 북한을 우군으로 삼아 민족주의적 성향을 키워갔다.

80년대 학생 운동권 세력은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 없는 교정에 상주하는 정보 경찰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직원들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비합법 조직 활동 방법을 터득했다. 엄혹한 독재와 맞선 벗들이 분신하고, 강제징집 당하고, 감옥에 가고, 노동 현장에 투신하며 세력을 키웠다. 87년, 운동권 민주화 세력은 마침내 직선제를 쟁취해 내고 군부독재 정권을 종식시켰다.

87년 체제 직선제 헌법으로 들어선 6공화국 민선 첫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학살’의 원흉으로 지목된 신군부의 일원, 노태우 민주정의당 총재였다. 87년 민주화 항쟁은 미완의 항쟁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도 그러한 미완의 혁명들이었다.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몰락의 세계적인 민주화 물결을 선도했던 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도 소장파 장교들의 무혈 쿠데타였다. 카네이션 혁명으로 40년간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와 마르셀루 카에타누의 독재 체제를 종식시킨 소장파 장교들이 좌파 사회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은 한국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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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이 진행되는 모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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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87년 체제가 들어서고 군부독재 세력이 물러난 직후, 89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다. 동구 사회주의 세력도 순차적으로 붕괴했다.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됐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대립했던 세계 체제의 경쟁에서 공산주의와 권위주의 정권의 패배가 확정됐다.

후발국 독재 정권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반공 이데올로기도 힘을 잃었다. 독재 정권의 ‘적’이 사라지자, 독재 정권도 허물어졌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도 연이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군부독재 정권이 사라지자, 독재 저항의 무기였던 급진적 이데올로기도 갈 곳 잃고 방황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경도돼 혁명을 주창했던 세력이 부르주아 헌법의 자유주의를 수용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마르크시즘의 대체 이념으로 북구 유럽 복지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가 고려됐다. 유럽 사민주의는 강력한 노조 조직률로 담보된 이념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전쟁과 군부 독재를 겪어 온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화해 사회 운동의 주역으로 부상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0% 남짓의 형편없이 낮은 노동 조직률로 대기업 자본가들과 사회적 대타협의 협상을 주도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외환위기와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대기업 중심 복지국가 스웨덴의 사민주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대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의 선전 도구로 차용됐을 뿐이다. 외환위기의 거대한 구조조정 속에서 노동 시장에서 퇴출당한 노동자들은 세계화 시장에 편입되지 못한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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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민중화 항쟁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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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입은 계층도 대기업 노조의 울타리 밖에 위치한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다. 이들 계층은 서민경제 시장에서도 퇴출당하고 있다. 가속화하는 양극화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친 위험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은 자유주의 이념으로 보수를 견인할 수 없었다. 동구 공산주의와 다른 혁명적 좌표를 제시하며 노동조직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국가를 선도해 갈 수도 없었다.

민주화 세력이 사회 선도 세력의 지위를 유지할 이념적 돌파구는 협소했다. 민주화 세력이 허구적 민족주의에 매달리게 된 것도 필연적이었다. 독재와 투쟁한 민주화 세력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부채 의식을 인질 삼아 정권을 잡은 세력은 기득권 세력이 되고 부패하기 시작했다. 87년 민주화 항쟁의 훈장을 여전히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서. ‘조국 사태’는 민주화 세력의 이중성과 위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후보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이재명 후보는 공공의 권력으로 원주민의 땅을 헐값에 강탈하고 임대주택을 줄여서 천문학적인 분양 수익을 측근들의 배당수익으로 돌린 설계자라는 의심을 받는다. 민주화 세력 정권 재창출을 위한 귀착점이 부동산 약탈 사업의 설계자라니. 정권 교체뿐만 아니라 거대 양당 모두의 정치 세력을 교체하기로 작정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허물어져 있는 무주공산의 정당을 이용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야당 대선 후보로 정치 입문 4개월의 정치 신인을 세운 것이 그 출발이다. 이들의 진정한 뜻을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아는지는 곧 확인될 것이다.

■ Law談 칼럼 : 권경애의 로-노마드(law-nomad)

대한민국의 헌법 및 법률 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철학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와 정의의 역사 및 법적 가치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이해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법적 상상력은 무엇인지 사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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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변호사.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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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법무법인 해미르 변호사. 한국관광공사 법무팀장/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 활동/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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