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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바이든 압박에 산유국들 석유 증산 유지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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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의 전략비축유 방출에

OPEC+ “증산 철회” 반발했지만

美·사우디, 물밑 외교전 끝에 합의

바이든, 빈살만에 설리번 보좌관 등

고위 관계자 보내 관계 개선 메시지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 유지 수용

조선일보

조 바이든, 빈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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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인플레 공포로 몰아넣은 유가 동향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기존 방침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사우디가 석유 증산을 중단할 것이란 예상을 뒤집은 것이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악화됐던 사우디 왕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끈질긴 외교전을 펼친 결과로, “바이든 정부의 승리”(뉴욕타임스)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 회원국과 10개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2일(현지 시각) 화상회의 결과 내년 1월에도 지난 7월부터 석유 생산량을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해 온 방침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이 경우 하루 3000만 배럴가량을 생산하게 된다. 사우디와 러시아 등이 주축이 된 OPEC+는 “시장 상황이 바뀌면 증산 여부를 즉각 조정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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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지난 10월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국제 콘퍼런스의 개막식에 도착해 손을 흔드는 모습. 이 자리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특사 존 케리 기후특사도 참석했다. /사우디 왕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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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의 증산 지속 발표 직후 국제 유가는 공급 확대에 대한 안도감으로 배럴당 2달러 넘게 떨어졌다가 다시 오른 채 마감했다. 이날 미 서부텍사스 원유(WTI) 1월 인도분 선물은 전장 대비 1.4% 오른 배럴당 66.50달러, 북해 브렌트유 1월물은 1.16% 오른 배럴당 69.67달러에 체결됐다. 유가 반등은 ‘산유국들이 증산을 결정한 건 코로나 신종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확산이 세계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란 전망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날 사우디 등의 증산 결정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집은 것이다. 지난달 미국이 한국, 중국 등과 함께 전략비축유 방출로 유가 인하를 압박하자 OPEC+는 “증산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반발했었다. 더군다나 오미크론 확산으로 각국 국경 봉쇄 조치가 이어지며 경제 전망이 악화하자, 지난달 배럴당 80달러를 넘었던 국제 유가가 15달러 넘게 폭락했다. 석유 수출국들이 유가 하락으로 손해를 볼 공산이 커진 만큼 증산을 중단할 것이란 말이 나왔다.

OPEC+ 등이 증산을 유지한 큰 이유는 내부의 수익 전망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사우디와 미국이 급속히 밀착하면서 물밑 외교전이 가동된 결과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사우디의 증산 결정 뒤엔 바이든 정부의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매력 공세(charm offensive)가 있었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 후 전임 트럼프 정부와 사우디 왕실의 유착을 손보겠다고 선언, 1년여간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는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등 사우디 인권 논란의 핵심인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36)을 무시하고 명목상 통치자인 살만 국왕과 통화하는가 하면,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하며 압박했다. 그러나 양국 관계 악화 속에 원유 공급 부족에 따른 유가 상승으로 미 중산층이 타격을 받게 되자 바이든이 이런 기조를 재검토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바이든은 최근 빈살만 왕세자 측에 여러 대리인을 보내 원유 증산을 포함한 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냈다고 FT와 블룸버그 등이 전했다. OPEC+ 회의를 코앞에 둔 금주 초 달립 싱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돈 그레이브스 상무부 부장관, 아모스 호크스타인 국무부 특사 겸 에너지문제 조정관으로 구성된 미 대표단이 사우디를 방문, 빈살만의 이복형인 압둘아지즈 빈살만 사우디 에너지 장관을 만났다.

앞서 9~10월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 중량감 있는 바이든 정부 인사들도 사우디로 날아가 빈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빈살만이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 등 국제 무대로의 복귀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미국이 빈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임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은 사우디에 석유 증산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 역시 석유 증산 협조를 고리로 미국과 다시 밀착하면 중동의 맹주 자리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은 셰일오일 산유국인데도 여전히 사우디 등 중동산 석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의 탈석유·친환경 정책 때문에 국내 화석연료 기업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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