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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문어로부터 탈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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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하늘 끝까지 올라 실바람을 끌어안고 날개 달린 천사들과 속삭이고 싶어라”라는 구절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30년 전에 발표된 ‘하늘나라 동화’다. 교육방송 라디오에서도 가끔 나오는데, 가락을 따라 부르다가 노래 속 어린이의 심정과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연이 있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나 외로움이 담긴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이 어린이가 어떤 이유로 고립되어 있었다면, 예를 들어서 아동 학대나 폭력의 감춰진 피해자였다면, 그래서 동산 위에 올라가 천사 얼굴, 선녀 얼굴을 그리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향신문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아동’이나 ‘어린이’라는 검색어를 넣고 뉴스를 검색해보면 어둡고 무거운 소식이 줄줄이 올라온다. 애통한 이야기들이어서 지면에 다시 옮기기가 어렵다. 어제도 태어난 지 29일 된 딸이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때려서 숨지게 한 친아버지에 대한 재판 결과가 보도되었다. 검찰이 구형한 형량은 징역 20년이었지만 재판부는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우발적인 범행”이라며 징역 7년으로 낮추어 선고했다. 아기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울음밖에 구조를 청할 방법이 없었던 이 생명을 곧 잊을 것이다. 2021년 10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펴낸 아동학대 피해기록 사례집 <문 뒤의 아이들>을 보면 학대행위자와 피해아동의 관계는 대부분 아이의 친부와 친모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까운 곳이 폭력의 발원지라는 것이다.

2016년 제출된 미국의 ‘아동 학대 근절을 위한 국가전략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에게는 아이들의 죽음에서 배울 의무가 있다. 매일 그 죽음을 생각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다 배우고 제대로 전략을 수립해야만 비로소 아이들의 다 살지 못한 삶을 존중할 수 있다.” 요즘 보면 우리 사회는 이 배움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린이의 죽음은 시일이 지나면 잊을 수 있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울어도, 사방을 둘러보아도 조력의 장치가 보이지 않을 때 어린이들은 동산으로 올라가 선녀의 얼굴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로 달레가 쓰고 스베인 뉘후스가 그린 <문어의 방>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이 책은 반짝반짝 빛나는 표정을 지닌 ‘금이’라는 어린이가 겪은 친족 성폭력의 경험을 다룬다. 처음에 금이는 가족이 저지르는 폭력적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랑 놀려고 방에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친밀함을 이용해 금이를 그루밍하고 사건을 숨기게 한다. 금이는 자신이 더 이상 금이 아닌 것 같고, 반짝이던 빛이 꺼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금이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폭력의 빨판을 떼어낼 수 없다고 느꼈을 때 금이를 구하는 것은 다른 가족의 이해와 상황 판단, 엄정한 제도의 힘과 공동체의 공감이다.

금이는 사건을 외부에 알린 뒤 벌어진 일을 “엄마는 누군가와 계속 통화해. 전화기 사이로 어른들 목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어… 금이도 해야 할 일이 있었어. 모르는 곳에 가서 소파에 앉아 이야기하고 대답했어”라고 설명한다. 금이의 엄마는 비밀로 해야 하는 줄 알았다는 금이에게 혼자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큰 비밀이며 너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금이 주위의 어른들은 입을 모아 “잘 말해 주었어. 참 잘했어. 이제 우리가 해결할 게”라고 믿음을 준다. 금이는 새로운 날들을 좋아하는 아이로 되돌아오고 건강하게 자란다.

이 그림책은 어린이가 상상하기에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해결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친족 성폭력을 겪거나 가정 폭력을 겪은 어린이 대부분은 자신이 하늘 아래 혼자라고 느낀다. 친족의 폭력을 터놓지 못한 어린이를 발견하고 살릴 구체적인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가 동산에 오른 어린이들의 천사 얼굴, 선녀 얼굴이 되어 주어야 한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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