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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두부로 터질 듯 채운 속… 이모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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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정동현의 Pick] 김치만두

21년 전 서울의 겨울은 지독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나와 아버지는 하루 종일 눈길을 헤치며 낯선 지하철과 버스를 오르고 내렸다. 그날의 종착지는 정릉 큰이모 댁이었다. 큰이모는 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몸을 뒤덮는 따뜻한 공기에 긴장이 풀렸다. 큰이모는 나를 보자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았다. “많이 춥지? 배고프지? 이모가 빨리 뭐라도 해줄게.”

큰이모는 질문과 답을 스스로 한 뒤 주방으로 향했다. “만두 괜찮지?”라는 이모의 말에 “예”라고 작게 답했다. 얼마 안 돼 큰이모는 커다란 접시를 상 위에 놓았다. 접시에는 내 주먹만 한 만두가 다섯 알 있었다. 상앗빛 만두피는 두꺼웠다. 만두피를 찢자 다진 김치와 두부가 보였다. 돼지비계도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숟가락으로 만두를 퍼서 입에 넣었다. 이모는 몇 번이나 만두를 접시 위에 채웠다. 만두 몇 개에 배가 불렀지만 그만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

조선일보

서울 마포 서강대역 근처 '옥정'의 만둣국./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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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파는 곳은 많지만 김치만두를 제대로 내놓는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 김치를 넣기보다 싼 김치양념으로 맛을 내기 때문이다. 김치 맛이 나지만 김치의 식감과 특유의 풍미는 완벽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그 맛을 찾으려면 우선 발품을 팔아 경기도 파주 문산 ‘밀밭식당’에 가야 한다. 시내에서 멀다 하여 방심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늦어도 어김없이 줄을 선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만두 빚는 테이블을 빼는 일이 없다. 가득 쌓인 만두 소와 피를 보면 만두 하나에 들어가는 노동을 짐작할 수 있다.

오이를 송송 썰어 올린 비빔국수는 면발이 굵고 탄탄했다. 매콤했지만 넉넉히 두른 참기름 덕에 불쾌하거나 먹기 힘들지 않았다. 사골육수에 김가루를 송송 뿌린 칼국수는 느리고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담겨 있었다.

다진 김치와 두부가 송송 박힌 김치만두는 피가 두꺼운 편이었다. 귀처럼 생긴 만두가 접시에 10개 남짓 올랐다. 입에 넣으면 도톰한 만두피와 김치가 함께 씹혔다. 맛은 순박했고 그 덕에 물리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만두가 반찬이나 간식이 아닌 식사로 먹던 그때의 맛이었다.

서울 영등포에 가면 ‘함흥냉면’이 있다. 1967년에 창업했다는 글자가 또박또박 박힌 이 집의 함흥냉면은 오장동 함흥냉면집들과 연식을 함께한다. 간재미를 올린 회냉면은 멍이 든 것처럼 시퍼런 고구마 전분 면에 참기름을 넉넉히 뿌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침이 돌았다.

투명에 가까운 피를 가진 만두는 김치와 고기로 나뉘었다. 국수 판에 올려 나온 만두는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에 얼굴이 비칠 것만 같았다. 두부를 잔뜩 넣고 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김치만두는 입을 잔뜩 벌려도 다 들어가지 않는 크기였다. 반으로 잘라 입에 풍덩 던지면 입안에서 넘칠 듯 풍성했다.

마포로 발길을 돌려 서강대역 근처에 가면 ‘옥정’이란 집이 있다. 이곳은 점심 영업만 하며 포장도 배달도 하지 않는다. 짧은 점심 나절 자리를 잡으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손님이 자석에 끌려드는 쇳가루처럼 쉴 틈 없이 몰렸다. 자리에 앉으면 백김치, 김치, 오이절임이 가지런히 놓였다. 김치는 흔한 겉절이가 아니라 잘 익어 있었다.

뽀얀 사골 육수에 만두가 둥둥 뜬 만두국은 김과 깻가루를 뿌려 마무리했다. 국물을 마시자마자 왜 사람들이 그 짧은 점심 시간에 줄을 서는지 이해가 됐다. 육수가 긴 노랫소리처럼 속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차돌처럼 반질반질하게 모양을 낸 만두는 마치 바느질을 한 것처럼 피와 소가 하나로 붙어 있었다. 만두 소로 쓴 김치는 반찬으로 나온 것과 같았다. 그저 맵고 짠 것이 아니라 김치의 신맛이 어우러져서 맛의 층위가 복합적이었다.

손님 누구 하나 만두를 남기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편법을 써서 만든 빠르고 쉬운 종류가 아니었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그때 먹은 만두도 그랬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큰이모. 큰이모가 돌아가시고 긴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소로 가득 찬 만두, 언 손을 녹이던 손길,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이 모두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밀밭식당: 만둣국 7000원, 비빔국수 7000원, 찐만두 7000원. (031)952-7152

#함흥냉면: 김치만두 8000원, 회냉면 1만1000원, (02)2678-2722

#옥정: 만둣국 9000원, 칼만둣국 8000원. (02)704-8920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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