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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오늘과 내일/김용석]비호감 기업과 비호감 정치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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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정서는 사회 전반 불신에서 비롯돼

신뢰 회복해 일자리 해결 계기 만들어야

동아일보

김용석 산업1부장


대한민국엔 이른바 ‘반(反)기업 정서’가 있다. 한국인의 기업에 대한 반감은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높다. 한 경제단체가 2003년부터 조사했는데 해가 지나도 줄어들 기미가 없어 조사를 중단했을 정도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기업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최근 기업들은 주주, 구성원, 소비자는 물론 사회 전반의 이익 창출을 경영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 대한 반감을 호감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이다.

반면 유례없는 ‘비호감 대통령 선거’ 국면을 맞고 있는 정치권에서는 이를 고민하는 목소리를 들어 보기 어렵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참여하고 있는 경쟁의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은 눈앞 상대를 이기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진입장벽과 국경 없는 이종격투기장에서 절대평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세계 1위 일본 도요타를 이긴다고 해서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전기차 1위인 테슬라나 구글, 애플 등 이종(異種) 경쟁자가 수시로 등판한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상상을 자유롭게 실현해야 하는데 각 회사가 뿌리 내리고 있는 나라에서의 각자 다른 규제 환경이나 인재 확보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기업의 호감도는 규제나 인재 확보에 영향을 미친다.

이에 비해 정치 선거는 경쟁이 제한된 상대평가다. 후보 A는 경쟁 후보 B와 C를 이기는 게 지상 과제다.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있다 해도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일 뿐이다. 오히려 이를 승리에 활용한다. 많은 유권자들이 찍을 후보가 없다고 불평해도 A, B, C 외에 다른 대안은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기업과 정치에 대한 비호감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여러 연구를 보면 반기업 정서의 원인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 과거 특정 기업과 기업인의 잘못이 누적돼 신뢰를 잃은 탓이다. 둘째,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황인학 전 한경연 연구위원의 연구를 보면 정치인, 공무원, 법조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반기업 정서가 높다. 김수한 고려대 교수도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기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분석했다. 정부에 대한 반감이 기업에 대한 반감보다 우선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업 잘못에서 비롯된 반감은 기업이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사회 기여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불신에 따른 반감은 기업 혼자 극복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려는 이유는 여러 과도한 규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일부 반발을 무릅쓰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에 수조 원의 세금을 쏟는 건 국가 안보와 일자리를 위해서다. 하지만 국내에선 반도체 공장에 상수도 하나 설치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공당의 주요 인사와 고위 관료마저 “반도체가 일자리를 만드는 건 알지만 내 손으로 대놓고 삼성, SK 같은 대기업을 돕는 정책과 법을 만들 수는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저변에 깔린 반기업 정서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30, 40대 일자리가 부족해 경제 중추가 무너지는 상황을 공공 일자리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허상으로 드러났다. 자유로운 기업의 창의와 도전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상식을 되살려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상식을 되살리고 신뢰를 회복할 중요한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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