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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나는 강아지로소이다] 깜짝 놀라게 해준다더니 생일 선물은 황태뼈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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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개아범과 함께 전남 구례에 다녀왔다. 귀촌한 선배가 그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를 5시간이나 타고 가는 동안 개아범은 구례행이 내 첫 생일을 축하하는 여행이며 깜짝 놀랄 선물이 있다고 했다. 인간들이 먹는 맛있는 간식 같은 걸 주려나 보다 하고 내심 기대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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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 있는 그 집은 과연 기막힌 풍광에 둘러싸여 있었다. 기껏해야 아파트 앞 동 쳐다보며 짖다가 지리산을 마주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모름지기 수컷 개라면 이런 곳에서 호연지기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엔 순순이라는 암컷 포메라니안과 순돌이라는 수컷 개가 있었다. 순돌이는 시고르자브종이라고 했는데 나처럼 프랑스 출신인 줄 알았더니 ‘시골 잡종’이라고 했다. 세 살 먹은 순순이는 귀부인처럼 예쁘게 생겼지만 앙칼지고 사나웠다. 가까이 가려고만 하면 목에 닭뼈 걸린 것처럼 캑캑 짖었다. 레트리버 잡종인 순돌이가 오히려 한 번도 짖지 않고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

나는 본능적으로 순순이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그때마다 순순이가 짖어서 인간들이 시끄럽다고 성화였다. 개아범이 나를 안아다가 마당에 풀어놓으면 순돌이가 귀찮을 만큼 나를 따라다녔다. 다 크면 나보다 네댓배 커질 순돌이가 좀 무섭기도 했고 무엇보다 순순이가 궁금해서 나는 계속 순돌이를 피해 순순이한테 갈 궁리만 했다.

개아범 일행은 백숙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마당에 불을 피워 밤이 깊도록 놀았다. 깜짝 놀랄 선물은커녕 서울에서 가져간 사료로 저녁을 먹고 스르륵 잠이 들었다. 꿈인가 생시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순순이가 사나워서 근처에 가지도 못하네.” “동네 사람들이 순순이 새끼 데려가려고 줄을 섰는데….” “순돌이는 너무 커서 안 돼.”

좋은 공기를 쐬고 서울로 올라와 드디어 내 생일이 됐다. 개아범은 아주 맛있게 생긴 티라미수 케이크에 초를 꽂은 뒤 내 머리에 고깔 모자를 씌우고 노래를 불렀다. 티라미수라니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네, 하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개아범이 드디어 “앉아”라고 했다. 나는 앞발을 가지런히 하고 앉아 개아범을 쳐다봤다.

개아범은 포크로 케이크를 푹 떠서 자기 입에 넣더니 나에게 뭔가를 던졌다. 황태뼈였다. 이것이 개의 산삼이라 불리는 황태뼈란 말인가. 과연 강원도 인제 용대리의 비바람과 눈과 햇볕이 다 녹아있는 맛이었다. 황태뼈를 오도독오도독 씹으며 나는 혼잣말을 했다. 황태뼈라니 아이고 깜짝 놀라라, 하여튼 허풍은. <다음 주에 계속>

토동이 말하고 한현우 기자 적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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