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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아빠를 잘 돌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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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단골 떡볶이집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안색이 좋지 않다며 걱정 어린 눈으로 안부를 물었다. “엄마가 안 좋으셔?” 떡볶이 장사를 오래 하면 점괘도 읽으시는 걸까. “엄마 말고 아빠요.” 자연스럽게 하소연이 시작됐다. 요즘은 아빠를 견뎌내기가 힘들다.

경향신문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불과 얼마 전까지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시던 분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의사소통이 어렵다. 배움이 짧거나 사회경험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냥 아빠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대화를 하다 보면 동문서답하기 일쑤고, 요일 감각이 둔해져 금요일에 시킨 택배가 왜 아직도 도착하지 않느냐며 보채기도 한다. 우렁찬 벨소리가 아니면 지척에 둔 전화가 울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노인이 지금 아빠의 모습이다. 청년의 마음에, 중년 못지않은 단단한 몸을 갖고 있다고 늘 자신하시지만 아빠는 누가 뭐래도 70대 노인이다.

가끔은 아빠의 무례함에 화가 나고, 가끔은 아빠의 노화에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싫어도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빠는 다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나이가 되었다. 누구라도 겪을 일로 생애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아빠를 받아들이려 노력해본다.

나의 업무 시간에 무턱대고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거나, 몇 번을 가르쳐드려도 와이파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만이 아빠의 전부는 아니다. 아픈 엄마를 몇 년째 옆에서 지키고 있는 헌신적인 배우자이며, 생선을 기가 막히게 굽고 엄마의 기저귀를 척척 가는 돌봄과 가사의 능력자이자, 수년에 걸쳐 병원과 주치의, 옆 침대의 환자가 계속 바뀌어도 꿋꿋하게 새 사람과 합을 맞추는 친화력 ‘만렙’의 사회인이다. 이렇게 아빠를 재발견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자꾸 아빠가 못하는 것만 눈에 들어온다. 아빠를 단편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아빠는 불쌍하게도 늙어버린 사람이 아니고 잘하는 것과 서툰 것이 수시로 생겨나고 또 바뀌는 상황을 겪고 있으며, 타인의 돌봄이 필요해진 것뿐이다. 지금 아빠의 부족함은 나와 내 친구들에게 똑같은 형태로, 다가올 것이며 그때의 우리는 속절없이 다른 이의 손길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마음과 달리 몸이 빠르게 움직여지지 않고, 어쩌면 내 손으로 대소변마저 처리하지 못할 그날에도 내가 존엄성을 지킬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적어도 저임금을 미끼로 특정인이 모든 것을 도맡거나, 효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갈아넣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 나를 돌볼 사람이 일상을 놓아버리지 않을 수 있어야 내가 건강한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약자에 대한 선의만이 돌봄은 아닐 것이다. 돌봄사회로 나아가려면 누구나 돌봄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음을 알고, 앞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돌봄을 주고받을 준비가 된 관계망 안에 우리 스스로를 포함시켜야 한다. 질병이나 나이듦이 비정상이 아니고 매 순간 변화하는 우리의 자연스럽고 다양한 모습 중의 하나임을 모두 기억해야 한다. 서로의 지금을 더 깊게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며, 유기적으로 돌봄의 관계가 얽혀있을 때 돌보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의 삶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 수 있다. 지친 그날의 나를 꼭 안아주던 떡볶이집 사장님의 넉넉한 품이 새삼 고맙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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