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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넷플릭스 '지옥' 주제 간결해…뭐가 어려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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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배우 유아인의 분량은 길지 않다.

넉넉히 계산해도 제1~3화 러닝타임(48~53분) 중 출연 분량은 최대 12분씩을 넘지 않는다. 형사 경훈 역의 양익준, 민혜진 변호사 역의 김현주 분량이 차라리 더 길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드라마 '지옥'의 핵심 인물로 '정진수 새진리회 의장'을 열연한 유아인을 꼽는다. 극중 정 의장만이 '신의 의도'를 해석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 듯하면서 모든 걸 간파해버린 듯한 눈(眼), 무엇도 설득하려 들지 않으면서 모든 걸 굴복시켜버린 듯한 그의 말투는 드라마 전체를 끌고 간다. 3일 영상 인터뷰로 그를 만났다.

"다른 인물은 땅에 발을 붙이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정진수만이 땅에 떠 있는 인물이잖아요. 그런 차이를 가져가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옥' 줄거리는 이렇다. 서울 한복판에서 '지옥행 시연'이 벌어진다. 거대한 얼굴을 한 존재가 지옥행을 예고하고, 고지된 시간에 사자(死者) 무리가 나타나 고지받은 자를 태워 죽인다. '신의 의도'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린 정진수는 신흥 종교 수장이 된다.

드라마가 공개된 이후 '지옥'은 넷플릭스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신념과 믿음'에 관한 수많은 해석을 낳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지옥과 천국은 수도 없이 해석된 영원불멸의 소재잖아요. 하지만 지옥이란 소재를 무겁게만 보는 게 아니라, 오락성 짙은 작품 속에서 간결하게 메시지를 녹여낸 작품이라고 봤어요. 사실 배우로서는 평가하게 되니 정상적인 감상이 불가능한 편인데, 이번 '지옥'은 저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 '몰아보기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었어요."

정진수 의장 캐릭터를 두고 유아인은 사이비 종교로 일컬어지는 교단 교주들의 실제 영상을 참고로 했다. "극 전체에 마수를 뻗치고 있는 인물을 고민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교주라고 알려진 분들 영상을 참고삼아 보니 소위 말하는 '믿습니까!' 하는 분들은 없었어요. 차근차근 이야기하지만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가졌더라고요. 저는 분량이 적은데 '지옥'의 전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인물이잖아요. 즐기면서도 '못 해내면 어쩌지' 하는 부담이 없지 않았어요."

유아인은 어디서나 암약하는 맹신에 대한 은유가 '지옥'의 핵심 키워드라고 봤다. "넷플릭스에 '지옥'이 공개된 뒤 1시간도 안 돼 마치 6부작을 다 본 듯한 설명으로 악플을 단 분들도 계시더라고요(웃음). 한 번 스쳐 지나간 것, 주워들은 한 줄의 정보로 모든 걸 다 아는 양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분들이요. 그런 현실이 작품과 겹쳐 보이기도 했어요."

유아인의 연기 고민과 달리 드라마가 공개된 후 그의 연기를 극찬하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는 '세계 무대에 소개할 한국 배우로 유아인이 제격'이라는 댓글에 "너무, 기분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사실 연기는 갈수록 어려워져요.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듯한 관객의 칼날 같은 시선도 느껴져서 정신을 바짝 안 차리면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웃음). '배우 유아인' 이미지를 저마다 가지신 분들, 또 이제는 외국 관객 분들께 어떻게 깨끗한 표현을 전달해야 할지 고민도 되고요."

'지옥'이 넷플릭스 세계 1위를 기록한 점에 대해 그는 "1등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점점 치열해지는데, 세계 관객들의 반응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다만 세계시장을 위한 연기와 내수시장을 위한 연기는 다르지 않아요. 연기의 핵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확신해요."

뒤주에 갇혀 울부짖는 사도세자(영화 '사도'),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찾아 뛰는 종수(영화 '버닝'), 세상 사람들을 깔보면서 어이 없어하는 조태오(영화 '베테랑') 등 유아인은 다양한 영화에서 전혀 다른 연기를 선보였다. 이번 드라마로 유아인은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또 하나의 완벽한 인물을 필모그래피에 박아 넣었다.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해 큰 사랑을 받으면 그게 한편으론 그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다른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거쳤는데 정진수를 연기하면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인물의 '레벌업 버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성장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더 '큰 틀'에서 제 연기를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웃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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