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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990년대 이후 ‘좋았던 시절’ 보며 물가 상승 일시적으로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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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세가 심상찮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10월 전달 대비 0.8% 상승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30년 만에 최고치인 6.2% 올랐다. 우리나라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전년 동기 대비 3.2% 상승하면서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세계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금융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이 기준금리를 빨리 올리고 경제에 대한 하방 충격이 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연준은 이번 물가 상승이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일부 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 등 주요국 물가 상승률은 1980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1980년대 이후 물가 상승률이 지속적으로 낮아진 이유는 크게 여섯 가지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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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세계적인 자유무역 확대 때문이다. 1994년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고 지역별로 자유무역협정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값싼 물건이 해외에서 쉽게 수입될 수 있었다.

둘째 중국이 세계의 값싼 공장으로 등장했다. 중국이 1979년부터 소위 개혁·개방 정책을 확대 실시하는 한편, 2001년 12월 WTO에 가입하면서 저임금 노동력으로 만든 값싼 중국 물건이 그야말로 전 세계에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셋째 에너지 가격 하락이다. 1970년대 중동전쟁과 맞물려 두 차례 오일쇼크가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그런데 경기 침체에 따른 원유 수요와 OPEC(석유수출국기구) 증산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원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00년대 초반 원유 가격이 다시 상승하는 듯했으나 셰일오일, 셰일가스 추출 기술 발전으로 원유 가격은 다시 하락 국면을 맞았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급감에 따라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넷째 온라인 유통혁명이다. 2000년 닷컴 버블이 꺼졌지만 이후에도 아마존 같은 온라인 플랫폼들은 전통적 유통망과 달리 ‘제로’에 가까운 중간 마진으로 유통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늘려왔다.

다섯째 4차 산업혁명 즉 디지털 혁명 가속화로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3D 프린팅 등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생산성을 높였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 교섭력은 약화되는 한편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물가 상승 여력이 약해졌다.

여섯째 대부분 선진국에서 진행된 인구 고령화와 소득 양극화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새로운 상품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계화와 빠른 기술 발전에 따른 소득 양극화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저소득층은 더욱 가난해진다. 부자의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한계 소비가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인 수요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엄청난 돈을 풀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앞서 살펴본 요인의 현재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세계적인 자유무역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세계 GDP 대비 무역 비중은 2010년 이후 거의 정체 상태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지금까지도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이어지면서 예전과 같은 자유무역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 중국은 더 이상 값싼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지 못한다. 중국은 이제 개발도상국이라기보다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는 중진국이다. 이에 따라 임금을 비롯한 각종 생산 비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인의 소비 수요도 증가하면서 중국 내 물가도 상승하는 상황이다.

셋째, 에너지 가격이 계속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의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전통적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 친환경에너지원은 아직까지 생산 효율이 낮고 생산단가가 높아 에너지 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온라인 유통혁명이 물가 상승을 억제할지다. 앞으로도 온라인 유통혁명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온라인 유통 플랫폼 기업들이 유통마진이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유통 시장을 크게 확대해왔기 때문에 추가적인 물가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다.

다섯째,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생산비 하락과 임금 상승 억제 여부다.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초기 태동 단계를 지나 성장 단계에 들어섰다. 앞으로 성숙 단계까지는 최소한 10~20년은 걸린다. 따라서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 등이 더욱더 생산비 하락을 견인할 것이다. 아울러 인간의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력이 기계에 의해 더욱 빠르게, 그리고 많이 대체되면서 예전과 같은 임금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인구 고령화와 사회 양극화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인구 고령화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활발한 수요 증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물가 상승 압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종합하면 일부 변수는 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왔던 요인 대다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렇다면 지난해에는 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느냐 반문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소위 주식 같은 금융자산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즉,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런데 경제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소비 수요가 위축되면서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올 들어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수많은 국가들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소비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급망 경색도 나타나고 소비자물가 상승이 빠르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결국 최근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년 글로벌 경기는 올해보다는 악화되겠지만, 그래도 소비 수요는 지난해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편으로 돈은 시중에 그대로 풀린 상태라서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연준은 이제 막 시작한 테이퍼링을 앞당길 수 있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미국보다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들이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기준금리 상승은 신흥국 외채 부담을 높이고 자본 유출로 이어져 이들 국가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 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나 부동산, 주식 ‘영끌’ 투자자들은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할 상황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75%에서 1%로 올리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매경이코노미

[이현훈 강원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6호 (2021.12.01~2021.12.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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