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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누더기... 괴롭힘 당하는 병사들 어쩌나 [김형남의 갑을,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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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의 갑을,병정] 국회에서 군인권보호관 설치 입법은 어떻게 처참해지고 있나

"2명의 동기가 있는데 누구는 조금 성격이 강한 사람이고 누구는 성격이 약한 사람이야. 그런데 이 동기가 괴롭힘을 했다고 쳐요. 그러면 이것도 포함돼요?"

"동기가 조금 성격이 샤이(shy) 한 친구한테 약간의 성적 모욕을 했다면 그것도 인권침해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지난 11월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운영소위) 회의에서 군인권보호관 입법 논의 중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남긴 발언이다. 유 의원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설치될 군인권보호관이 군에 관여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이 아니냐는 문제 지적과 함께 군인권보호관이 조사할 수 있는 사건 범위에 사인(私人)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참고로 현행법상으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인 간 성희롱 피해를 조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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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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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의원 말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 성적 모욕을 했다면 당연히 인권침해가 맞다. 특히 폐쇄적인 군 조직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군 인권침해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법정에서 "장난으로 그랬다.", "악의를 갖고 한 게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행동이 굼떠서 등 피해자 탓을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해자가 저지른 '악의 없는 장난'은 누군가에겐 생의 불꽃을 꺼트리는 고통이 된다. 이유와 형태가 어떻든 이 세상에 인권침해를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누더기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군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몰이해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이들은 인권침해란 무엇인지, 군인권보호관은 왜 만들게 된 것인지, 이미 군에서 자식을 잃고도 군인권보호관 설치를 눈물로 호소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법안 심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난 11월 29일 운영소위는 군인권보호관 설치를 골자로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법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누더기'다. 군인권보호관을 설치는 하지만 조직과 권한이 받쳐주지 않아서 있으나 마나 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의원들이 군에서 어떤 메커니즘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군이 어떻게 이를 조작·은폐하는지 그 역사와 심각성을 오롯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방부에 휘둘려 만든 결과다. 운영소위가 의결한 법안은 운영위원회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 자구 심사를 받으면 본회의에 상정되어 통과될 전망이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4년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군에서 인권침해로 비참한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막겠다며 군인권보호관을 만들기로 여야가 결의안까지 내서 합의하고,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이 합의 내용에 기초해 첫 법안을 제출한 것이 2015년이다. 누더기 같은 법안이라도 상임위 소위원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그로부터 햇수로 7년 만의 일이다. 그사이에도 숱한 장병들이 인권침해로 신음하다 목숨을 잃었다.

7년 동안 국방부의 끈질긴 반대와 방해가 있었다. 국방부는 군인권보호관을 국방부 장관 밑에 두고 장관 지휘를 받게 해야 한다고 우겼다. 인권위에 설치하기로 한 여·야 합의도, 국회 결의도 별무신통이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자고 했다. 그러자 국방부도 전략을 바꿨다. 입법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한편, 인권위에 설치하는 건 받아들이되 권한을 줄이고, 지위는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로비를 전 방위로 펼쳤다.

군인권보호관에게 군부대 불시 방문 조사 권한 부여 반대, 수사 중 자료제출요구권도 반대, 수사 중 사건 조사도 반대, 국방부가 군인권보호관에게 사망사건 발생 시 의무적으로 통보하게 하는 것도 반대. 국방부는 원래 인권위가 가지고 있는 권한보다 한 뼘 더 나아간 군인권보호관의 권한은 모조리 반대해왔다.

그러고는 염치도 없게 '작전·임무 수행'을 핑계로 군인권보호관의 조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을 국방부 장관에게 부여해달라는 사족도 달았다. 군은 늘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니 사실상 아무 때나 조사를 거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심보다.

그런데 운영소위는 제출된 법안들을 수정 의결하면서 국방부 요구사항을 거의 100% 수용해줬다. 인권위도 이를 맥없이 다 받아들였다. 심지어 군인권보호관 직책을 새로 만드는 것도 막혀서 기존 인권위 상임위원이 군인권보호관을 겸직하는 해괴한 방안이 채택되었다. 새로운 권한과 업무를 가진 조사기관을 설치하면서 그 수장을 다른 일을 하는 정무직 공무원에게 겸직시키고 만 것이다. 공수처 설치하면서 공수처장을 검찰총장한테 겸직시키는 격이나 다를 것이 없다.

군은 열외?

군인권보호관이 갖게 될 권한도 모두 다 후퇴했다. 운영소위가 의결한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인권위가 군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땐 사사건건 국방부와 협의하여 진행해야 한다. 조사도, 자료제출 요구도, 사망사건 수사 입회도 '협의'하라는 규정을 꼼꼼하게 만들어놨다.

원래 군대도 인권위 진정 대상 기관이기 때문에 지금도 인권위 조사관들이 군에 들어가 조사를 할 수 있고, 하고 있다. 현행 인권위법에는 군부대 출입 문제를 제외하고는 군대만 콕 집어서 무언가를 협의해야 한다는 제한 규정 같은 것이 없다. 법률 상 군대도 국가기관 A, B, C 중에 하나 일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법을 바꿔놓으면 군만 특수한 조사 절차가 필요한 기관이 되어버린다. 인권위에 군인권보호관을 따로 만드는 건 군의 폐쇄적 조직 특성을 고려해 종전의 인권위 조사권을 강화하여 실효적 조사, 구제 기능을 담보하려 했던 것인데 거꾸로 군을 인권위로부터 해방시킨 셈이다. 세상천지에 조사 대상 기관의 동의와 협조를 구걸하며 조사권을 행사하는 옴부즈맨 제도는 없다.

군인권보호관은 껍데기만 설치해놨고, 새로 얻거나 강화한 조사권도 없는데 국방부 장관은 원래 없던 인권위 조사 중단 권한을 챙겼으니 국회와 인권위가 군인권보호관을 만든 것인지, 국방부를 인권위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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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에서 근조 화환을 실은 화물차가 출입 허가 후 정문을 지나고 있다. 국군대전병원에는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한 후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해군 여성 중사 빈소가 마련됐다. 2021.8.14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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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현재 인권위가 접수하여 처리한 사건 중 군 인권침해 사건이 약 8%에 불과하다며, 군인권보호관이나 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을 인권위에 신설할 필요가 있냐는 물음을 던졌다. 우려스러운 상황 인식이다.

지금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고, 별 문제없으면 왜 군대에서 나날이 인권침해와 성폭력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가? 인권위에 진정하면 조사 기간이 너무 길고, 전역할 때가 다 되어서야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장병들의 입에서 나온 지 오래다.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고, 실효성이 담보되면 더 많은 장병들이 인권위와 군인권보호관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이처럼 군을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외부에 상담하고 제보할 든든한 국가기관도 없는 상황에서 더 많은 피해자를 찾아내고, 구제하여 군인들이 인권침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복무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해 고안해 낸 제도가 군인권보호관이다.

그러나 국방부도, 국민의힘도 군인권보호관을 왜 만들기로 한 것인지, 만들어진 군인권보호관이 바꿔 낼 우리 군대의 풍경은 어떤 것인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군인권보호관을 만들어 군인 인권 옹호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인권위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7년 만에 만들어지는 법이, 이렇게 맥없이 누더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체 군대 상대로 옴부즈맨 하나 만드는 것이 무엇이길래

군에서 자식 잃은 부모들이 자식 사진을 들고 거리로, 국회로 쫓아다니며 만들어 낸 자리가 군인권보호관이다. 국회는 윤 일병이 맞아 죽었을 때 당장 만들자고 수선을 벌이다가 세 번의 국회 임기가 끝나는 동안 7년을 무심하게 지내고는 이 중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군인권보호관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러나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국방부의 반대를 넘어서 실효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절규는 공허한 외침이 되어가고 있다. 대체 군대 상대로 옴부즈맨 하나 만드는 것이 뭐 그리 국가가 뒤집힐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타협하고 물러서는 것인가.

군사법원법 개정도, 군인권보호관 설치도 모두 누더기가 되어간다. 이젠 수사로 끌어다 쓰는 누더기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둘 다 원통하게 세상을 떠난 장병들의 피로 만드는 제도다. 국회도, 국방부도, 인권위도 그만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가. 이대로는 안 된다.

김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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