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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소박한 풍경에서 위대한 사랑을 목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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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꽃이 져도 오시라

김주대 시인의 문인화첩

김주대 글·그림 l 한길사 l 25만원

“눈 먼 여자는 고막에 빛의 높이가 울린다고 했다. 몸으로 가지 못하면 눈으로 가고 눈으로 가지 못하면 마음으로 가자고 했는데, 출렁이는 빛을 들으며 눈 먼 여자와 나는 이를 수 없는 곳을 걸어갔다. 나는 눈 먼 여자보다 더 눈 먼 여자에게 멀었다. 눈 먼 눈들이 정밀하게 허공을 복제하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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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시인이 그린 ‘등정’(그림)은 손을 마주잡은 남자와 여자의 뒷모습이 담겼다. 하얀 눈 위에 파란 하늘 아래 설산을 바라보는 둘만 존재한다. 그림 속 여자는 눈이 멀어 소리로 높이를 감각하고 이런 여자에게 눈 먼 남자는 이를 수 없는 곳까지 이를 의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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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대 시인의 문인화첩 <꽃이 져도 오시라>에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문인화’ 120장이 실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 화첩의 주제가 왜 ‘소박한 사람들의 위대한 사랑’인지 금세 알게 된다. 일상의 풍경은 담백한 여백들을 담아 어딘가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특히 노인들의 뒷모습이 밟힌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마른 장작 같은 발목”을 발견한 시인은 “어린 식구들”과 “칭얼대는 폐허”를 떠올리고, 병원 가는 노부부를 보며 “부부의 언어는 그렇게 세월과 함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서로의 극진한 데 이르고 있었다”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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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붓질은 이미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의 페이스북을 통해 작업 세계를 훔쳐본 이들이 허다하다. 그가 마주한 세상의 풍경과 그가 빚어낸 일상의 사유들은 때때로 “바람 부는 강기슭에 매인 빈 배 한 척”처럼 적막하고, “엄마 둥근 얼굴 웃음”처럼 “좋기는 한데” 아득함에 이른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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