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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호남, 이중차별의 굴레를 벗어던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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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매커니즘 ‘전라도’

산업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수도권 체제에서 소외돼

자생적 정치·발전역량 갖춰야


한겨레

전라디언의 굴레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호남의 이야기

조귀동 지음 l 생각의힘 l 1만7000원

<전라디언의 굴레>. 제목은 도발적이나 의미는 역설적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어져온 ‘호남 차별’을 날것 그대로 직시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13년차 회사원’이라 밝힌 저자는, 경제 영역에서 기사를 써온 기자다. “광주 풍향동, 산수동, 두암동에서 살았고 전남대 후문, 충장로에서 자”란 저자는 그 스스로 ‘전라디언’이라 지목되었을 터다. 자신의 뿌리를 탐색하고, 정치경제적 연원을 파헤쳐 가려는 것이 저작 의도라 할 수도 있겠다.

저자의 말마따나 “전라도는 단순히 출신 지역이 아니다.” 차별의 매커니즘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영호남 남녀의 사랑이 금기시 되던 한두세대 전 이야기가 아니다. 2018년 경기도 한 편의점에서 주민등록번호가 호남 번호이면 채용하지 않겠다는 일까지 있었다. 저자는 노동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호남차별은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같은 한국인에게 무슨 인종 차별이냐고? ‘백인종의 나라’ 미국에서 아일랜드인과 이탈리아인이 받아온 차별을 떠올려 보라. ‘전라디언’은 수많은 멸칭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라디언’의 연원을 저자는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찾는다. 호남 출신 엘리트들은 정치권력에서 배제된다. 박정희 세력이 대표하는 티케이(대구경북) 네트워크가 국가를 장악하고 피케이(부산경남)는 티케이의 하위 파트너 구실을 했다. 전남 연고인 대창석유 계열로 에스케이텔레콤(SKT) 최대 휴대폰 대리점인 이앤티(E&T) 사례가 흥미롭다. 호남 토착 기업은 휴대전화 판매밖에 못하는데, 제조사들은 삼성 등 경남 출신들이 만들었다. 1950년대 이래로 상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데 호남 자본가들은 배제된 결과다. 한편 산업화 과정에서 호남 출신들은 도시 하층 노동자로 재편된다. 도시 빈민의 등장이었다.

한겨레

광주 광산구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내부 모습. 광주글로벌모터스는 독일 ‘아우토 5000’ 모델을 본떠 만들어진 경차급 스포츠실용차 캐스퍼를 생산하는 위탁조립공장이인데 사실상 현대차의 ‘호의’에 의존하는 사업이라는 한계가 뚜렷하다. 광주나 전남이 최근 내놓는 지역개발 공약은 대부분 ‘중앙’의 시혜성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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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호남인들은 ‘정체성의 각인’에 이른다. 차별과 소외, 가난과 핍박에 시달려온 이들에게 5·18은 자신들이 ‘비국민’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 이후 민주당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정치적 정체성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민주당이 일종의 지역패권정당으로 자리잡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흐름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호남인들 내부의 계급 분화로 이어진다. 영남 엘리트가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을 호남 엘리트들이 그대로 이어받는다. 그러나 호남 출신 도시 이주민 중 여전한 중하층 계급과 호남에 남은 대다수는 지역차별에 더해 열등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까지 이중 차별에 놓이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울러 고립된 지역은 내부에서부터 부패하고 무능의 고리는 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저자는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호남 내부의 정치-경제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본다. 호남 지역 20대 남성들의 지지 정당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은 정치다. 저자는 풀뿌리 정당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자생적 발전역량을 갖추고 중앙-지방의 분업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종의 지체현상으로서의 ‘전라디언의 굴레’를 벗으려면 외부에서 덧씌운 굴레뿐 아니라 스스로 쌓아와 익숙해진 굴레마저 벗어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호남이 안고 있는 중층적 모순을 제대로 드러내는 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이 저작이 그 마중물 중 하나인 것은 명백하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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