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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극단선택 예방 1위 서울 성북구, 고시원 ‘희망 우편함’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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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성북구자살예방센터의 '슬기로운 중년생활'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목공을 배우고 있다. 사진 성북구자살예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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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OO 고시원에 사는 OOO입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드네요. 몹쓸 생각만 납니다.”

지난 10월초 서울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 설치된 ‘희망메시지’ 우편함에 이런 내용의 편지가 담겼다. 성북구자살예방센터에 소속된 지역방문활동가가 사연을 확인해보니, 발신인은 A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는 50대 초반의 B씨였다. B씨는 생활고에 건강마저 악화한 상태였다. 센터가 긴급하게 나섰다. 우선 우울감을 낮출 전문 상담·심리 치료 등을 제공했다.

B씨는 성한 이가 없을 정도로 치아 상태가 나빴다. 이가 아파 식사를 못하니 몸은 점점 말라갔다. 최근 한 달 사이 체중이 7㎏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센터는 성북구보건소 등과 긴급 사례관리 회의를 열고 B씨에게 150만원의 치과 치료비 지원을 결정했다. B씨는 현재 치료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일자리·생필품 지원도 추가로 이어질 예정이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던 B씨는 다시 웃음을 찾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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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자살예방센터가 제작한 생명존중 포스터. 투신 자살을 막으려 아파트 옥상 출입문 등에 게시돼 있다. 김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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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센터의 자살예방·상담사업 ‘희망메시지’ 덕분이다. 말 못할 고민을 우체통에 풀어내면, 즉시 사회 안전망을 작동시키는 개념이다. 고시원·원룸에 홀로 사는 중장년층이 대상이다. 성북구가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 도입했다. 현재 성북구 20개동 40여개 고시원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센터는 ‘슬기로운 중년생활’ 프로그램을 통해 외부와 단절한 고시원 거주자들이 커뮤니티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해 목공 교실 등에 이어 올해엔 수제비누 만들기, 영화감상, 캘리그래피 액자만들기 등을 진행했다. 고시원에 따뜻한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밥상모임도 인기다.

서울 성북구는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펴온 공로를 인정받아 2일 2021년 자살예방 정책을 가장 잘 한 지자체 1위로 선정됐다. 국회 자살예방포럼·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 전국 229개 지자체의 자살률·조직·예산·사업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다. 성북구는 희망메시지 외 투신을 막으려 입주민을 설득해 아파트 옥상 출입문에 생명사랑 포스터를 게시하고 있는가 하면, 마음돌봄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독거노인 등 154명의 생일, 명절, 안부를 가족처럼 챙긴다. 올해 11월말 기준 안부전화 횟수만 9052건에 달한다.

김용주 성북구자살예방센터 팀장은 “188명 마음돌봄사들이 10년 이상 인연을 맺고 친자녀 이상으로 어르신을 보살피고 있다”며 “(효과가 커) 극단 선택으로 사망하신 분들이 없을 정도다. 위기 상황에 놓인 어르신을 지속적으로 찾아 손을 붙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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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시 곰솔누리숲에 설치된 로고젝터 모습. 자살예방상담전화가 안내돼 있다. 사진 시흥시자살예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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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탄 포장하는 시흥시



경기 시흥시는 자살 예방 정책 종합 평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시흥시는 인구 30만명 이상 지자체 64곳 중 지난해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가 2017~2019년 평균 대비 가장 많이 줄었다. 안실련에 따르면 5.1명이다. 전국 평균 감소률(0.2명)을 훨씬 웃돈다. 시흥시는 번개탄(착화탄)이 극단 선택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 판매개선 사업에 적극적이다. 낱개 포장지까지 만들 정도다. 겉면엔 ‘무슨 얘기든 괜찮아요.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라는 문구와 24시간 자살상담전화(1393)가 인쇄돼 있다. 생명사랑지킴이단과 경찰이 ‘생명사랑실천가게’를 찾아 하나 하나 포장한다.

시흥시는 지난해 9월 ‘로고젝터(로고+프로젝터)’ 사업도 벌였다. 시흥시 곰솔누리숲 내 4㎞ 길 중간중간을 ‘괜찮을 거야’ ‘다음에 또 보자’ 등 문구로 환히 비춘다. 물론 자살상담전화도 안내된다. 시흥시내 극단 선택 특성을 반영한 사업이다. 자살 사망자를 조사해봤더니 외지인이 많았던 것이다. 24개의 로고젝터, 현수막, 푯말 등이 극단 선택을 시도하려는 마음을 돌리고 있단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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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충남 서산·경기 연천군도 1위



인구 5만 이상 30만 미만 지자체 중에선 충남 서산시가, 인구 5만 이하 지자체 중에선 경기 연천군의 자살예방정책이 높게 평가됐다. 각각 비슷한 규모의 인구 수를 지닌 지자체 중 1위다. 특히 연천은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가 확 줄었다. 2019년 45.8명에서 지난해 21.29명으로 무려 24.51명 감소했다. 연천군 관계자는 “극단 선택을 시도한 고위험군 등에 맞춘 자살예방 사업을 중점적으로 벌인 결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거꾸로 자살률이 늘어난 곳도 있다. 지난해 부산 C구, 경북 D군 경우 2017~2019년 대비 각각 14.7명, 13.2명이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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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사업 우수 지자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직격탄 맞은 지난해 자살예방 사업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자살예방 사업이 줄줄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실련 등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예방교육 사업은 예년에 비해 훨씬 못미쳤다. 지난해 전국의 자살예방 사업 대상자 평균은 인구 10만명당 779명으로 나타났는데, 2019년 평균(1925명)의 반토막 이하다. 더욱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노인 대상지원 사업은 심각하다. 인구 10만명당 평균 1653명에서, 2020년 2명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손 놨단 의미다.

지자체 내 자살예방정책을 맡아 뛸 조직 구성은 여전히 취약하다. 지자체장 아래 조직을 갖춘 시·군·구는 229개 중 57곳(24.9%) 뿐이다. 이런 현실에 직원 수도 줄었다. 인구 10만명당 정규직 지자체 공무원은 1.48명 수준이다. 자살예방에 대한 지자체장의 의지가 의심되는 부분이다. 대전과 울산, 세종은 아예 한 명이 안된다. 또 자살예방센터를 따로 운영 중인 지자체는 41곳(17.9%)에 그친 게 현실이다. 센터 직원의 평균 근속기간도 줄었다. 자살예방 사업 관련 예산은 표도 안난다. 229개 지자체 전체 살림살이(242조원)의 0.017%(415억원) 정도다. 지자체 한 곳당 1억8000만원 꼴이다.

양두석 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 교수)는 “자살예방은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일이다. 지자체장들이 ‘자살을 줄이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갖고 예산과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며 “자살 유가족 등 고위험군을 발굴하고 촘촘히 지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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