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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구조 뒤의 불편한 진실…코로나로 ‘응급입원’ 불가, 인력도 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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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찰이 병원에 요청한 응급입원의 거부 비율이 2.8배 높아졌다. 연합뉴스


#. 지난 3월 서울의 한 파출소로 자살예방센터의 지원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의 목을 흉기로 찔러 목숨을 끊겠다는 사람의 신고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곧장 신고자를 위치를 추적해 출동했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진 후였다. 환자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겨졌다. 경찰은 이 환자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자살 고위험군으로 판단했으나 응급입원을 시키지 못했다. 병원에서 ‘병상이 부족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면서다.

#. 지난해 인천 중부경찰서에서도 부부싸움을 하다 자살시도를 한 남성의 신병을 확보하고 응급입원에 나섰다. 인천의료원 등 16개 병원에 의뢰했지만, 모두 병실이 부족하다며 응급입원을 거부했다. 결국 경찰은 16개 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가족 인계 아래 남성을 귀가 조처해야 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을 구조해도 응급입원 조치가 쉽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서 자살예방 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정신병원의 응급실과 인력 등이 부족해지면서 응급입원 제도에 공백이 생긴 탓이다.

경찰은 정신질환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자·타해를 할 위험이 크고 급박한 상황인 경우 의사의 동의를 받아 대상자를 최대 72시간 동안 정신의료기관에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일선 경찰들은 “응급입원이 눈에 띄게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경찰이 신청한 응급입원 중 정신병원이 거부한 비율은 7.9%였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8%)보다 2.8배 높아진 수치다.



‘병상과 인력 부족’…환자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



병원은 병상 부족을 이유로 든다. 정신응급병상을 코로나19 병상으로 돌리거나 병동이 폐쇄됐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자살시도자 전담 정신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 온 서울 보라매병원의 경우 지난 8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센터를 코로나19 병동으로 100% 전환했다. 현재 일반 병동 일부에서 응급입원 환자를 받긴 하지만, 이전보다 병상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경기도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정신과 병동 전체가 코호트 격리되며 응급입원 환자를 아예 받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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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한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응급실)가 임시운영을 중단하면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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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입원 절차도 까다로워졌다. 입원 전 코로나19 진단 검사가 필수인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 시간이 소요된다. 최근까지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A씨는 "병원 입원을 위해선 코로나19 음성 결과가 기본이라 환자 입장에서 치료장벽이 더 높아졌다"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체류 시간 동안 입원 결정을 철회하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음성 판정 나올 때까지 업무 중단”… ‘치안 공백’ 우려도



경찰청 관계자는 “서울 시내에서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18곳인데 ‘병상이 부족하다’ ‘당직 의사가 없다’ 등의 이유로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응급입원 시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나오는 시간 동안 지역 경찰이 입원 대상자를 데리고 있는 것도 부담”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지구대 팀장은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에 경찰 몇 명이 붙어서 다른 신고·민원을 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응급입원에 실패해 특별한 조치 없이 귀가시킬 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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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지역경찰들은 "코로나19 이후 응급입원을 거부하는 병원이 많아졌다. 입원 시에도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역 경찰이 데리고 있어야 하는 등 응급입원 절차가 까다로워졌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부족한 정신응급병상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정신과 분야에서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할 것을 제언한다. 이상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 응급 상황 발생 시 이송 주체, 방법 등 세부적인 내용이 법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현장에서 혼선을 빚고 있다”며 "급성기 정신 응급병상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 마디로 시스템도 없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급성기 정신응급병상 확충을 지원한다지만, 사립병원 입장에서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며 "공공 차원의 정신과 시스템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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