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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기후 대응과 성평등 실현, 지금 말해야 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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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22]⑤기후·젠더

[경향신문]

내년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기후위기와 젠더 의제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종전에는 막연히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미래 과제로만 여겨져왔지만 지금은 당장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현안으로 재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전환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실천해 나갈 유능하고 창의적인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번 대선이 치열한 토론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후위기는 그 위협이 이미 현실화했다. 세계 과학자들은 지난 8월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를 통해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040년 이전에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2050년으로 전망됐던 기후재앙의 마지노선 도달 시점이 10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즉각적이고 급격한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며,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적색 경보다.

탄소중립은 한치도 미룰 수 없는 생존 문제

경향신문

청소년기후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국회 앞에서 국회의 기후위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도 지난해 국가비전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데 이어 지난달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상향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공표했다. 2030년대까지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국제 탈석탄 선언’과 2030년까지 산림 파괴를 멈추고 메탄 배출량을 30% 줄인다는 국제 서약에도 서명했다.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다. 약속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 방안 수립이 차기 정부의 과제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탄소중립은 말처럼 쉽지 않은 길이다. 산업계는 비용·기술 등을 이유로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기후환경단체들은 이대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며 목표치 상향을 요구한다.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리는 다양한 요구를 조정해 하루빨리 실행에 옮기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 만큼 이번 대선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확고하게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대통령을 뽑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대외적으로 공표한 탄소중립 목표를 후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관련 논의가 탈원전 공방에만 집중되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탈석탄·탄소중립 목표와 연계해 폭넓고 유연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첫걸음을 이번 대선을 통해 반드시 떼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선 젠더 이슈도 주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문제는 과거 대선과 양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역대 대선에선 여야,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방향성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뒤처진 성평등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에 공감하며 ‘어떻게’라는 해결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때문에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 공보육 강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젠더 이슈가 ‘성평등’ 강화 대신 ‘갈등’의 소재로 소모되는 양상이 뚜렷하다. 최악의 뒷걸음질이다.

최적의 성평등 답 찾아서 미래사회 바꿔야

경향신문

지난 19일 38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성평등 외면하는 퇴행적 대선정국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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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은 20대 남성들의 표쏠림 현상에 주목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이대남·이대녀 현상’이라 명명하며 그럴듯한 외피까지 입혔다. 페미니즘 확산으로 역차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2030 남성들이 분노한다는 논리는 청년 문제와 결합해 폭발력을 발휘했다. 정치권은 사회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할 청년 문제에 책임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대신, 남녀 갈등으로 몰아갔다. ‘안티 페미니즘’ 세력을 등에 업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 선출된 후보들의 행보에 이르기까지 젠더 문제는 득표의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적 셈법’ 차원에서 다뤄졌다. 제1야당 후보는 ‘건강한 페미니즘’론을 설파하고,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질세라 집권여당 후보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야 한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했다. ‘하늘의 절반’인 여성은 주권자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젠더가 사회 갈등의 불쏘시개로 소모되어선 안 된다. 이젠 차분히 현실을 직시하고 최적의 답을 찾아가야 한다. 저출생과 고령화, 돌봄 문제, 교육, 복지, 노동, 경제, 산업 등 주요 현안 모두와 얽혀 있는 성평등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미 각종 불평등에 소진된 여성들은 ‘평등해질 수 없다면 혼자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며 비혼을 선택하고 있다. 청년남성 또한 과도한 생계 부양의무에 좌절하고 있다. 저출생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는 성평등 없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움을 말해준다.

대선 후보들은 정파적 이해를 위해 젠더 이슈를 활용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첫 시험대는 성평등을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다. 후보들은 차별과 혐오의 날선 말들을 거두고, 한국 사회가 보다 ‘성평등’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 비전과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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