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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서초포럼] 상위 2%만 내면 좋은 세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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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논란에 대처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는 어처구니가 없다. 종부세에 대한 이의나 비판이 있다면 세금 자체의 정당성을 설명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런 반응 대신 "상위 2%만 내는 세금"이라느니 "50여만원밖에 안된다"는 강변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올해 종부세 부과 대상자인 약 95만명이 국민의 2%라는 말은 극소수만 내는 세금이니 대다수 국민은 안심하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택 보유자만이 종부세 대상이 되는 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주택 소유자로 따지면 전국 가구의 8.1%, 수도권의 경우 유주택 가구 중 10.6%가 종부세 대상자다. 어린아이, 무주택자 등을 포함한 모든 인구 대비 일부 부유층만 내는 세금이라는 듯 국민을 혼동하게 하는 거짓에 가까운 해명이다. "공시가 17억원인 아파트 종부세가 50여만원으로 중형차 세금보다 적다"는 여당 대표의 국민에 대한 질책도 마찬가지다. 집 값이 같아도 소유자 나이와 보유 기간 등에 따라 종부세가 5배까지 차이 나지만 금액이 가장 적은 사례만 언급한 것이다. 이런 대응은 사실 놀랍지 않다. 현 정부의 특징인 국민 편 가르기 전술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종부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적은 부담도 지기 싫어하는 소수 기득권층으로 낙인 찍음으로써 다수 국민은 이들을 조롱해도 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집값 올랐는데 세금 많이 내는 건 당연하다"거나 "나도 종부세 내 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식의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기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정부·여당 스스로도 국민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어려울 만큼 종부세가 좋은 세금이 아님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 몇 %인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당한 세금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내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일이 아니다. 종부세는 '국가의 재정조달 목적'이라는 세금 고유의 속성을 벗어나 투기 방지 목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조차 달성하지 못하고 주택 보유자에 대한 징벌적 목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사실도 지적해야 한다. 이미 주택분 보유세를 납부한 국민에게 동일한 과세 물건에 관한 세금을 또 내도록 하는 이중과세라는 점도 문제다. 부동산 보유세 자체를 인상하는 것은 나도 찬성하고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점진적으로 충격이 적은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박근혜정부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세금을 더 거두려면 "거위 깃털을 살짝 뽑는 식으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실은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서 세금정책에 관한 한 만고불변의 진리에 가깝다. 그에 비추면 국민인 거위를 혼내주려고 일부러 고통을 주겠다는 세금정책은 하지하책이다. 심지어 "주택 보유 자체가 고통이 되게 하겠다"는 여당 의원들도 있었다. 이런 태도로 '정권 재창출'을 외치는 걸 보면 용감한 건지 무지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세금은 나라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스스로 납부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한다. 기꺼이 내게 하지는 못할망정 원망과 증오를 부추기는 세금은 어떤 명목을 붙여도 결코 좋은 세금이 아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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