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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기막힌 '연기', 우리는 어떻게 속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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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진실의 흑역사, 톰 필립스 지음

오마이뉴스

▲ 진실의 흑역사 ⓒ 윌북



수학에서 다루는 명제에서는 참과 거짓의 판별이 명징하다. 귀납적 추론을 쓰든 연역적 추론을 쓰든 공식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가 무척 어렵다. 일단 정보가 너무 많다. 하루 종일 보고 들은 모든 말들을 하나하나 따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진실은 아버지를 하나만 두었으나 거짓말은 수천 명의 사내가 낳는 사생아로서 여기저기 곳곳에서 태어난다." - 작가 토머스 데커

'탈진실 시대'라는 전문 용어가 있다. 보기만 해도 큰 위기감이 느껴진다. 진실을 벗어나다니, 이 세상에 얼마나 거짓이 많으면 저렇게 부를까. 갑자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이 의심스럽다.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어떻게 구분할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나 빼고 다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라면 나도 거짓말로 나를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무리 지금이 '탈진실 시대'라 하더라도 거짓말은 최신 발명품이 아니다. 유사 이래, 어쩌면 인류가 말을 하게 되면서부터 거짓말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실을 찾으려는 열망도 발전해온 듯하다. 오죽하면 거짓말을 인간의 원죄라고 했을까.

이 책에 따르면, 과거 인도에서는 거짓말 혐의가 있는 자의 무게를 잰 뒤 저울에게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용의자를 다시 저울에 올려 몸무게가 더 가벼워졌으면 무죄, 같거나 무거워졌으면 유죄로 판별했다.

지금 보면 황당한 판별법이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거짓말을 판별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중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거짓 정보에 질려버린 것일까.
거짓이 진실보다 전파되기 유리한 이유는 전파 속도의 차이 때문이라기보다는, (…) 거짓의 규모와 가짓수 자체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 그에 비하면 진실은 …… 뭐라 할까, 좀 지루하다.

작가는 장사꾼의 거짓말을 '일단 된다고 우기기'라고 정의하며 스티브 잡스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이며 "혁신적이고 마술 같은 제품"이라고 선언했지만 사실 그 당시엔 제대로 작동하는 아이폰을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가 관객 앞에서 당당히 시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작 순서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반대의 예도 있다. 생명공학 벤처기업 테라노스는 혁신적인 혈액 검사 기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했지만 알고 보니 검사가 잘 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작가는 '일단 우겼는데 안 되니까 계속 우기다가 사기죄로 고소당하기'의 좋은 예라고 불렀다.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할 지점이 있다. 애플이나 테라노스나 똑같이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한쪽은 결과를 만들어서 거짓말을 진실로 둔갑시켰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

이 경우에 거짓말은 발언된 순간보다 사후 처리에 따라 정체가 규명되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 거짓말을 한 사실을 알더라도 그 자를 비난할 수 없다. 시간만 준다면 그 자가 거짓말을 참말로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거짓말은 도덕적 결함보다 기업가로서의 자질로 평가된다. 그는 거짓말이 통하리란 걸 확신했다. 실제로 그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말고 다른 방식으로 아이폰을 작동해보세요"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겐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보다 아이폰이라는 혁명적 기기의 등장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거짓말은 우리의 욕망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현대의 거짓말이 위험한 이유

이 시대의 거짓말이 강력한 이유는 일 대 일로 퍼지지 않고 일 대 다수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A가 B에게 거짓말을 하고 B가 C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A가 인터넷에 거짓말을 올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A가 되어 이 정보를 무작위로 실어 나른다.

작가는 '브라질 땅돼지'라는 동물을 소개하며, 이 동물이야말로 우리가 진실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동물이길래?

거짓말은 2008년 시작되었다. 어떤 학생이 브라질에 놀러가서 긴코너구리를 보고는 땅돼지라고 착각했다. 자신의 무식이 겸연쩍었든 그는 위키피디아 긴코너구리 문서에 가서 장난으로 "브라질 땅돼지로도 불린다"라고 썼다.

이 장난을 수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BBC, <데일리 메일>, <데일리 텔레그래프>, <인디펜던트>가 '브라질 땅돼지'를 그대로 인용했다. <타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웹사이트에서도 긴코너구리의 사진 밑에 브라질 땅돼지라고 설명을 달았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아예 브라질 땅돼지가 현지에서는 긴코너구리라고도 불린다고 썼다.

이 외에 학술논문, 세계 유수의 출판사에서도 브라질 땅돼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출판사에서는 학술 논문에 실려 있으니까 썼을 것이고, 출판사는 과학 잡지가 썼으니까, 과학 잡지는 타임지가 썼으니까, 타임지는 BBC가 썼으니까 인용했을 것이다(다행히 2014년 이후 브라질 땅돼지 항목은 삭제되었다).

거짓말이 이토록 강력한 번식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이 질문에 작가는 일곱 가지 답을 내놓았다. 그 중 여기서는 노력 장벽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노력 장벽'이란 어떤 사안의 중요도에 비해 그것의 진위 확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우를 가리킨다. (…) 확인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사소한 문제라서 굳이 확인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경우일 수도 있고, 반대로 꽤 중요한 문제이지만 확인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책의 '사기꾼 열전' 목차를 보면 웃지 못할 사례가 하나 등장한다. 그레거 맥그레거는 두둑한 사례를 받고 스코틀랜드 사람 수백 명이 재산을 처분하고 이민을 가도록 도왔다. 이민자들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나라 포야이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대에 부풀어 망망대해를 건넜다. 문제는 포야이스가 그레거 맥그레거가 만들어낸 허구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민자들 대부분은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1년 안에 죽었다.

죽은 이들이 어리석어 보이는가? 나는 이들의 처참한 결말이 그들이 유독 어리석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그레거 맥그레거의 말을 그대로 다 믿었을까? 그 당시에는 1820년대였다. 사기꾼의 말고는 진위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노력만 하면 수많은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지만 막상 하나하나 진위 여부를 파고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한 선택 중에 포야이스 이민자들 못지않게 중대한 실수가 왜 없었겠는가.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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