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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술꾼도시여자들’ 위소영 작가 “척박한 인생 조금은 느슨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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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생도 드라마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연이 반복돼 사랑하게 된 열정적인 단 한 명의 연인과, 내가 무슨 짓을 하든 항상 따뜻한 위로만을 건네는 친구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내 영웅적인 활약에 박수를 보내는 일터가 존재한다면. 그뿐인가. 한 시즌 마무리할 때마다 만사가 착착 정리되고, 눈 깜짝하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가 무한한 가능성의 새 일상이 펼쳐진다면. 불행히도 드라마처럼 매끄럽고 깔끔한 인생은 없다. 인생은 때로 구질구질하고, 주로 너저분하다. 티빙(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술도녀)은 이런 ‘현실 인생’을 다뤘다. 연인은 나를 떠나고, 친구는 내게 쌍욕을 하며, 직장은 나를 소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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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은 강지구(정은지, 왼쪽부터), 안소희(이선빈), 한지연(한선화) 세 명이 서로 삐지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는 현실적인 우정을 그렸다.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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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녀>은 ‘솔직함’으로 승부를 본다. 지난 1일 화상을 통해 만난 위소영 작가(38)는 작품 속 주인공들만큼이나 꾸밈이 없었다. 그는 <술도녀>가 “아르바이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했던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오죽하면 한지연 역을 맡은 배우 한선화가 배역 수락을 망설이자 “하기 싫으면 안 하셔도 된다. 저도 하고 싶어서 한 작품 아니다. 하고 싶은 작품이 있는데 ‘드럽게’ 안 풀려서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 작품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했다. 위 작가의 말에 한선화는 답했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이랑 똑같지? 작가님, 이 작품 꼭 성공시켜 드릴게요.”

‘말술’ 여성 세 명의 우정을 다룬 <술도녀>는 그렇게 진짜 성공해 버렸다. 매주 두 회차를 공개할 때마다 시청률이 2배, 3배로 치솟았다. 결국 역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주간 유료 가입 기여 1위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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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작가로 일하는 안소희는 출판사를 관두고 개그맨 시험을 보러갔다가 작가로 섭외된다. 감도 없으면서 ‘감 놔라 배 놔라’하는 PD와 일한다. 주특기는 맥주병 따기.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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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세 명의 서른 살 동갑내기 여성이다. 예능 작가 안소희(이선빈), 요가 강사 한지연(한선화), 종이접기 유튜버 강지구(정은지)는 대학 시절 술 잘 먹기로 유명했다. 당시 ‘평생 술값 공짜’가 포상으로 걸린 댄스 경연에서 우승해 10년째 함께 술을 마시고 있다. 원작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에서 ‘술 잘 먹는 여성 세 명의 우정’이라는 콘셉트만 따와 새롭게 인물과 스토리를 구성했다.

주인공들의 진한 우정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상황이 다르다. 전교 수석을 다투던 이들이 자라 직업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성공을 거두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달리, <술도녀> 주인공들은 여러 면에서 처참히 실패한다. 소희, 지구, 지연은 아등바등 안착한 첫 직장에서 쫓겨나듯 나온다. 새로 구한 직장도 변변찮다. 첫 사랑은 물론 두 번째 사랑도 이뤄지지 않는다. 성격도 모났다. 욕을 입에 달고 산다. 너무 우악스럽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 기분이 계속 오락가락한다. 어딘가 많이 부족한 세 여성이 각자의 너저분한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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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한선화)은 대기업에서 영양사로 일하다가 그만 두고 요가 강사가 됐다. 단순함으로 주변을 당황시키기도 하지만, 심플해서 더 현명할 때가 있다.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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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힘든데 심각한 사건이 거듭 일어난다. 주변인의 자살, 가족의 사고사, 귀갓길 괴한의 습격, 암 진단까지. 위 작가는 “제 주변에서 있는 일이라서 썼다. 실직, 이직은 흔한 일이고 저 역시도 겪었다. 암 역시도 주변에 1, 2기 정도 진단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 가족의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 주인공이 겪는 ‘설상가상의 일상’은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살고 있는 현실의 압축판이다.

주인공들은 흘린 눈물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술을 들이켠다. 잔뜩 취한 뒤에는 온갖 추태를 부린다. 옆 자리 남성들을 들이받아 경찰서에 간다. 주인공들끼리 치고 받고 욕을 한 뒤 서먹해지는가 하면 직장 동료에게 ‘작업’을 걸어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좀처럼 술을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만 송출된 것이 음주, 흡연, 욕설, 성관계 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위 작가는 있는 그대로 썼을 뿐 OTT 드라마라서 더 야하게, 더 거칠게 쓰지는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욕설 장면이 유튜브 등에서 주목받았을 때는 우려했다. 위 작가는 “(배우 이선빈이) 욕하는 장면이 주목을 받았을 때 ‘왜 이것만 화제가 되지? 나는 그것보다는 더 많은 걸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시청자들은 그것만 보지 않고 드라마 서사에 몰입해주셨다”며 “‘막 만든 줄 알았는데 웰메이드였네’라는 반응을 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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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관두고 종이접기 유튜버가 된 강지구(정은지)는 붙임성이 없다. 한 마디 할 때마다 정곡을 찌른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간다.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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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녀>에는 작가가 겪은 사랑과 우정의 경험이 녹아있다. 위 작가는 “매번 열심히 사랑하는 편인데 매번 실패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랑은 끝나면 원점, 도루묵이 됐다”며 “반면 우정은 보험처럼 축적이 되더라. 그렇다고 사랑을 등한시 하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결말도 열려있다. 그는 “술 되게 좋아하는 세 여자 아이들이 ‘한잔 적시는’ 이야기인데 딱 어떤 결말이 있는 거야 말로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사가 그렇다. 대단한 매듭을 짓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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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소영 작가. 티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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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음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위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술을 마시면 알딸딸해지면서 시야가 서서히 뭉개지고 마음이 뭔가 느슨해지잖아요. 저는 그런 순간을 너무 좋아해서 술을 먹거든요. … 그런 인간적인 면을 담고 싶었어요. 척박한 세상에서 술을 먹었을 때나마 느슨하고 허술해지면 어떨까 하고요. … 지나친 음주는 몸에 해롭지만, 인생을 살면서 술 앞에서 한 번쯤 지나쳐(과도해져)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을 완벽하게 살 수는 없으니까요.”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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