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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왕십리 노점 못 떠나는 '열사 어머니' 김종분씨···"귀정이가 '엄마'하고 부르던 모습 눈에 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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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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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귀정 열사의 모친인 김종분 할머니가 지난달 29일 서울 왕십리 오거리 노점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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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이가 길 건너에서 ‘엄마’하고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11번 출구를 나와 2·3분 걸으면 30여년째 행당동 상점가 입구에 자리잡은 노점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노점들은 어느새 왕십리 오거리 풍경 속에 녹아들어있다. 채소와 꽃, 옷가지 등을 파는 이들 노점에는 33년째 이 곳을 지켜온 터줏대감이 있다. 김종분 할머니(83)다.

지난달 29일 만난 김종분 할머니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왕십리에서 한 자리를 지키며 노점을 하는 이유로 “정이 들어서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다. 이 곳은 먼저 떠나보낸 둘째딸 고 김귀정 열사(사망 당시 26세)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딸이 과외 갔다 오면서 저쪽 길 건너에서 ‘엄마, 엄마’ 하고 부르곤 했어. 과외가 늦게 끝나면 택시를 타고 와서는 차비 좀 달라고 하는 거야. 내가 택시비 내주면서 ‘엄마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무턱대고 왔어’라고 물으면 귀정이가 ‘엄마는 항상 여기에 있잖아. 엄마는 결근을 안 하니까’라고 말했어.”

딸이 택시비가 없어 엄마를 부르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할머니가 택시비를 못 내는 취객들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사람들 택시비 많이 내줬어. 술 취해가지고 그냥 내리려다 (택시기사랑) 싸우는 사람들 택시비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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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12일 노태우 정권 타도 구호를 외치며 가두 행진하는 김귀정의 장례 행렬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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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둘째딸 김귀정 열사는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충무로 골목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며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던 열사는 당시 시위 도중 쓰러진 뒤 숨을 거뒀다. 열사가 세상을 떠난 그해 봄은 학생·노동자 시위에 대한 노태우 정권의 폭력진압과 공안통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다. 1991년 4월26일 경찰에 맞아죽은 강경대 열사를 시작으로 5월 25일 김귀정 열사까지 한달간 11명이 경찰의 폭력에 희생되거나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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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12일 고 김귀정 열사의 얼굴이 새겨진 옷을 입고 김귀정의 운구 행렬이 지나는 길에 인간띠를 만든 학생들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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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정 열사의 죽음은 평범한 노점상이었던 할머니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할머니는 1991년 다른 노동자와 학생들의 장례식을 포함해 여러 시위 현장에 참석하며 딸의 뒤를 이은 민주화운동가로 살아왔다.

“내가 원래 노태우 찍었던 사람이야. 그런데 우리 딸이 그렇게 민주화운동을 했잖아. 딸 죽었을 때 내가 ‘니가 하다 못한 거를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할게’라고 했어. 그러다보니까 전국 대학교를 안 가본 데가 없어. 귀정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대학생,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들 만났겠어. 다 귀정이가 만나게 해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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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29일 고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인 김종분씨(왼쪽에서 세번째) 등 유족들의 기자회견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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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왕십리 오거리 노점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딸에 얽힌 추억이 깃든 곳이자 집 같은 곳이다. 딸이 세상을 떠난 후로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노점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졌다. 할머니는 “30년 중에 20년은 노점에서 잔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이 만나게 해준 인연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귀정 열사가 다녔던 성균관대 동문들을 포함해 할머니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만났던 이들이 지금도 노점을 찾아오곤 한다. 가끔 찾아오는 반가운 얼굴들은 할머니뿐 아니라 다른 노점 할머니들에게도 왕십리 노점을 계속 하는 이유가 됐다. 할머니들은 오랜 시간 함께 장사를 하며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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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십리 김종분>의 포스터.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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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개봉한 김진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왕십리 김종분>은 할머니의 노점에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왕십리 김종분>은 김귀정 열사와 어머니인 김종분 할머니, 그 가족들과 인근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9일 밤에도 왕십리 오거리 근처에 산다는 한 20대 청년이 노점을 찾아와 ‘이런 사연이 있으신 줄은 몰랐다’면서 삶은 옥수수를 사갔다. 이 청년이 아직 영화를 못 봤다고 하자, 마침 할머니를 찾아왔던 김 감독이 다음날 대한극장에서 단체관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영화 <왕십리 김종분>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는 대부분 막을 내렸지만, 최근 곳곳에서 단체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성균관대 동문들이 기부해 진행하는 무료관람 릴레이 캠페인 ‘쏜다’와 시민사회단체의 단체관람 등 주로 김귀정 열사를 추모하는 이들 덕분이다. 김귀정 열사의 조카이자 김종분 할머니의 손녀인 국가대표 수영선수 정유인씨도 단체관람을 주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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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고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 김종분 할머니(왼쪽 첫번째)가 나물을 다듬으면서 영화 <왕십리 김종분>을 연출한 김진열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기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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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면서도 장사를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33년을 견뎌낸 덕분에 할머니의 노점은 인근 토박이들의 ‘사랑방’이자 집에 가는 길에 간단하게 저녁 찬거리를 사갈 수 있는 ‘거리의 슈퍼마켓’으로 자리잡았다. 각종 채소와 나물부터 간식거리인 삶은 옥수수, 가래떡, 엿 등 팔고 있는 품목만 수십가지에 달한다.

이 곳에서는 1000원, 2000원어치만 살 수도 있다. 할머니는 잔돈이 없다는 이들에게는 선뜻 외상을 주기도 한다. 길 가다 들른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할머니는 “외상하고 안 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려니 해. 또 몇 년 지나서 외상값 갚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말했다.

30년 넘는 노점상 생활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구청의 노점 단속으로 천막이 철거당한 것만 다섯번에 이른다. 10여년 전에는 자식들이 미국 여행을 보내주면서 출국을 위해 공항에 가야하는 날 구청 직원들이 천막을 철거하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칠까봐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다. 할머니는 “구청 직원들이 다시 노점 안 한다고 하면 천막이랑 물건들 돌려주겠다고 해서 안 한다고 하고는 또 장사를 나가곤 했어. 왜 안 한다고 해놓고 또 장사하냐고 하면 ‘안 하면 뭐 해먹고 사냐, 배운 게 장사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오늘까지 장사를 해 온거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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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고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안 김종분 할머니(가운데)가 서울 왕십리 노점에 앉아 손님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김기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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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노점을 못하도록 막았던 성동구청과의 관계는 영화 <왕십리 김종분>을 구청 직원들이 단체관람할 정도로 달라졌다. 성동구청 직원 160여명은 지난달 19일 김종분 할머니와 함께 이 영화를 단체 관람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날 행사에서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건네기도 했다. 할머니는 구청 직원들과 만나게 된 것도 딸이 이어준 인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장사를 시작한 지 33년, 왕십리로 이사를 온 지 50여년 동안 할머니에게 왕십리는 제2의 고향이 됐다. 할머니의 큰 딸도 왕십리 오거리 인근에 살면서 도시락 가게를 하고 있다. 인근 산동네가 재개발로 아파트촌으로 바뀌면서 원주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할머니는 “30년 장사 하니까 이 동네 사람이 다 내 식구 같아. 앞으로도 건강한 동안은 계속 장사해야지”라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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